경찰 추적 1년, 결투 현장 정밀 검증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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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목천 대결→평택 결투→태화산 혈투→도주’ 현장 검증… 추적 경찰·목격자 ‘탈옥수의 신출귀몰’ 증언
신창원은 동료 2명과 함께 서울 돈암동에 있는 정 아무개씨 집을 침입해 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89년 3월 체포되었다. 강도치사죄로 무기수가 된 그는 복역 중이던 97년 1월 몰래 반입한 줄톱으로 한 달간 감방내 화장실 쇠창살을 절단한 뒤 부산교도소를 탈출한 희대의 탈옥수이다. 탈옥한 후 신창원은 경찰과 네 번 맞닥뜨렸으나 가공할 힘과 스피드로 이들을 따돌렸다. 이 과정에서 신은 두 번이나 가스총을 맞고, 손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등 크게 다친 것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최초로 밝혀졌다. 경찰의 검거를 돕고자 탈옥 이후 신창원과 경찰 간의 쫓고 쫓긴 과정을 재구성한다.<편집자>

지난해 10월16일 새벽 5시30분쯤 충남 천안시 목천면 1번 국도변의 ㅎ빌라 1층 분양사무실. 건장한 청년 3∼4명은 곤히 자고, 3∼4명은 화투패를 돌리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자, 평택경찰서 조사과 원종렬 경장(38)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전화벨은 마을 입구의 봉고차 안에 있던 동료가 핸드폰으로 신창원(31)이 돌아왔다고 보낸 신호였다.

신창원, 산에 숨은 채 이틀 동안 원경장 감시

원경장이 “애들 깨워! 빨리 신발 신고 나와!”라고 고함치고 먼저 뛰쳐나가자 곧 청년 2명이 따라나섰다. 그 순간 신창원의 차 엔진 소리가 전조등 불빛과 함께 ㅎ빌라를 향해 뻗어 왔다. 신창원이 너무 빨리 나타난 것에 당황한 원경장은 빌라 입구와 분양사무실 전등을 모두 껐다. 그리고 미처 분양사무실에서 나오지 못한 청년들에게 “조용히 해”라고 나지막히 외쳤다.

원경장 등 세 사람이 어둠 속에서 1∼2층 사이 계단이 꺾이는 곳으로 올라가자, 신창원이 빌라 현관에 들어섰다. 신은 입구 전등이 꺼져 있는 것이 이상한 듯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원경장은 ‘뭔가에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뒷걸음으로 한두 계단 올라갔다. 신은 라이터 불을 켜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다가, 분양사무실 문에 귀를 갖다 대었다. 분양사무실 안에서는 어둠 속에서 신발을 찾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안되겠다고 판단한 원경장이 가스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딸칵.” 하필이면 가스탄환이 들어 있지 않은 곳이 격발되었다. 신이 고개를 쳐드는 순간 다시 방아쇠를 당기자 “탕”하며 가스탄알이 발사되었다. 이어 신이 몸을 돌리는 순간 또 한 발을 발사했다.
원경장과 분양사무실 안에 있던 청년들이 동시에 현관 밖으로 쏟아져 나왔으나, 신창원은 보이지 않고 그랜저 승용차만 눈에 들어왔다. 동네를 몇 바퀴 헤집고 다녀도 신을 찾을 수 없었다.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만이 코끝을 자극할 때쯤 원경장은 빌라 2층에 있는 신창원의 집 문을 두드렸다. 신의 동거녀인 전혜숙(가명·31)이 문을 열었다. 원경장이 “당신 남편 이름이 뭐요?”라고 언성을 높이자, 전혜숙은 “김동수(가명)인데…”라고 대답했다. “나이는?” “서른 넷…” “팔에 문신 있지?” “없는데요.”

며칠 뒤 이 마을 주민이 최루가스 냄새를 풍기는, 피범벅이 된 신의 웃옷을 찾아냈다. 나중에 전혜숙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신은 처음 발사된 가스탄알이 왼쪽 눈밑을 가격해 피를 철철 흘리며 도망쳤다(지금도 신창원의 왼쪽 눈밑에는 흉터가 남아 있다). 두 번째 탄알은 뒷머리에 맞았다. 신은 1번 국도 건너편 군부대 쪽으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다시 도로를 건너 ㅎ빌라 옆 동산 위로 숨어들었다. 그때는 가을이어서 동산에 갈대가 무성했다. 신창원은 이틀 동안 이 갈대숲에 숨어서 지켜 보다가 내려와 그랜저를 몰고 사라졌다. 극히 일부의 경찰 관계자만 알고 있을 뿐 언론에는 전혀 공개된 적이 없는 경찰과 신창원 간의 첫 충돌인 ‘목천 대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대부분 교도소 탈주 사건은 호송 중이거나 노역 도중에 일어난다(탈주 사건). 반면 감옥에서 도망친 사건(탈옥 사건)은 90년 12월 전주교도소 3인조 탈옥 사건과 97년 1월 신창원 탈옥 사건밖에 없다. 전주교도소 탈옥 사건은, 30시간 만에 탈옥수들이 충남 대청호변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2명이 자살하고 1명이 검거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러나 신은 탈옥·탈주 부문을 통틀어 연일 한국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야기는 97년 1월20일 신창원이 부산교도소 감방내 화장실 쇠창살을 절단하고 탈옥한 직후로 거슬러올라간다. 언론이 ‘강도 치사죄로 수감 중인 무기수 탈옥’이라는 제목으로 신의 사진을 실은 사회면 머리 기사를 막 내보내고 난 뒤인 1월 말쯤, 신창원이 충남 천안시의 한 다방에 나타났다. 신은 현란한 화술과 헤픈 돈 씀씀이로 이 다방 종업원 전혜숙을 유혹해, 3월 초쯤 여관방을 빌려 동거에 들어갔다.

2월19일 천안에 사는 김동수씨(가명)가 엑셀 승용차와 함께 주민등록증·면허증을 도난당했다. 닷새 뒤 김씨의 엑셀 승용차는 번호판이 없어진 채 대전에서 발견되었다. 그 날 이후 신창원은 김동수로 행세했다.

신창원은 도둑질에 관한 한 달인이다. 신의 고향 사람들은 “담장에 손이 닿았다 하면 창원이는 훌쩍 뛰어넘었다”라고 말한다. 신창원은 서울 강남과 분당의 고급 아파트를 주로 털었다. 몰래 아파트로 들어간 그는 옥상에서부터 가스관을 타고 내려가 베란다 창으로 빈 집임을 확인하고 침입했다. 8월 말쯤 신은 이런 식으로 모은 패물을 전혜숙을 시켜 한 금은방에 팔아치웠다.

4월 중순 신창원은 충남 아산시 배방면 ㅎ대학 뒤편 ㅊ빌라(원룸식)로 옮겨갔다. 이 시절 그는 옆 방에 사는 대학생들로부터 ‘향어 아저씨’로 불렸다. 낚시를 갔다 오면 잡아온 향어와 메기를 학생과 빌라 주민 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 주민들은 신이 낮시간을 빈둥거리거나 낚시하면서 보내면서도 고급 승용차를 모는 데 주목해 ‘저 사람 수상쩍다’라고 수군거렸으나,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신을 최초로 경찰에 제보한 이는 천안시에서 세차장을 하는 권태수(가명)씨였다. 7월 어느날 권씨는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ㅊ빌라로 갔다. 충전이 끝나 출장비를 포함해 2만원을 청구하자, 신은 수고했다며 3만원을 주었다. 이후 신은 자청해서 권씨 세차장의 단골이 되었다. 8월 어느날 신의 차를 세차하던 권씨는 신의 옷소매가 올라간 사이로, 신의 팔뚝에 그려진 문신을 발견했다. 강인한 인상, 음험한 눈빛, 헤픈 씀씀이. 권씨는 이 사람이 폭력배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권씨의 고향 친구가 바로 원종렬 경장이다. 9월16일 추석날 저녁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이자, 권씨는 원경장에게 수상한 자가 자기 세차장에 온다고 말했다. 원경장은 태권도 5단으로 무도 경찰 출신이다. 원경장은 귀가 솔깃했다. 93년 그는 기소 중지자 검거 실적 전국 1위를 해 경장으로 특진했다. 이때 그는 형사과를 원했으나, 조사과에 배치되었다. 조사과는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내근 부서다. 때문에 원경장은 ‘큼직한 놈’을 잡아서 특진과 동시에 ‘앉은뱅이 형사’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9월28일 신창원은 충남 천안시 목천면 ㅎ빌라로 이사했다. 10월 초 원경장은 신창원의 행적을 살피기 위해 두 번째로 ㅊ빌라를 찾아갔다. 그러나 신창원은 다른 데로 이사하고 없었다.

신창원이 옮겨간 은신처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원경장은 친구 권씨에게 “혹시 그 자가 세차하러 오면 어디에 사는지 추적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권씨는 몇번 승용차로 신을 추적했으나, 그가 워낙 차를 빨리 몰아 놓치고 말았다. 이런 소식을 들은 원경장은 어느 날 권씨 세차장에서 기다리다 직접 신을 추적했으나 역시 놓치고 말았다. 며칠 뒤 신의 차를 놓친 한 아파트 부근에 잠복해 있던 원경장은 아파트 상가를 나서는 신창원을 발견했다. 그 즉시 상가를 탐문한 원경장은, 신이 한 사진가게에서 사진을 찾아간 사실을 밝혀냈다. 사진가게 주인은 그 손님이 필름까지 가져갔다고 했으나, 원경장은 쓰레기통을 뒤져 잘못 현상해서 버린 신창원의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

경찰서로 돌아온 원경장은 이 사진을 기소 중지자(수배자) 사진과 하나하나 비교했는데, 탈옥수 신창원과 흡사했다. 친구 권씨를 불러 수배자 사진을 보여주자, 권씨도 “틀림없이 이 놈이야”라고 했다(이때 원경장은 상대가 신창원인 줄 처음 알았다). 무기 탈옥수…. 신창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원경장은 상대가 너무 강하다고 느꼈으나 붙어 보기로 작심했다. 다행히도 원경장은 신창원의 집들이에 갔다 온 ㅎ빌라 주민의 도움으로 신의 새 은신처를 찾아냈다. 10월15일을 D데이로 잡고, 그는 무술 후배 8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목천 대결’은 신이 가스총을 맞고 도주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원경장은 여러 차례 ㅎ빌라를 찾아 갔으나, 전혜숙은 “우리 남편은 김동수인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라고 우겼다. 10월 말 원경장은 가스총의 위력이 약해서 신창원을 놓쳤다고 생각하고 한 총포사에 들러 ‘멧돼지도 30분간 기절시킬 수 있다’는 단발식 가스총을 샀다. 수사에 진전이 없자 원경장은 유명 점쟁이인 ‘평택 할머니’와 안성의 ‘연보살’을 찾아가, 자신과 신창원의 생년월일을 내밀었다. 두 사람 모두 신의 사주를 가리키며 “어려서부터 관재(官災)수가 있네. 쇠사슬을 많이 찼겠구만. 그런데 당신은 이 사람과 안 맞아. 이 사람이 한 수 위야. 그러나 동짓달 첫눈 오는 날 이 사람은 잡혀. 이 사람 멀리 가지 않았어. 광덕산 줄기에서 놀고 있네”라고 말했다.

며칠 후 경기경찰청 형사기동대 김구연 경장이 “조직 폭력배를 단속하라는데 정보를 달라”며 찾아왔다. 김경장은 180㎝에 85㎏의 거구로 무도 경찰 출신이다. 원경장이 신창원 검거에 실패한 경위를 이야기하고 같이 잡자고 하자 김경장은 그 자리에서 동의했다. 모든 열쇠를 전혜숙이 쥐고 있다고 판단한 원경장은 외근 형사여서 행동이 자유로운 김경장에게 “어떻게 해서든 전혜숙을 우리 편으로 만들라”고 부탁했다.

이 시기 신창원은 새 여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10월26일 평택시 한 다방에 들어간 신창원은 현란한 말솜씨로 종업원 강순희(가명·21)를 유혹해, 11월1일 평택시 신장동 ㄴ빌라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11월7일 전혜숙이 이 사실을 알고 ㄴ빌라를 찾아가 강순희와 크게 다투고 돌아왔으나, 원경장과 김경장에게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신창원이 강순희와 함께 장애자 수용 시설인 ‘요한의 집’을 찾아가 백만원을 기증한 12월20일 전혜숙은 신에게서 받은 돈으로 라노스 승용차를 샀다. 12월28일 신창원의 변심에 마음이 상한 전혜숙이 음주 운전을 하다 교통 사고를 냈다. 12월29일 밤 사고 수습에 도움을 받고자 김경장을 불러낸 전혜숙은 작심한 듯 신창원이 ㄴ빌라에 숨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를 죽일 수 있었으나 칼을 거두었다”

12월30일 오전 10시30분쯤 원경장과 김경장은 쇠파이프와 목검으로 무장한 무술 후배들을 ㄴ빌라 주변에 잠복시키고, 신문 보급소 직원을 가장해 3층의 신창원 은신처를 두드렸다. 강순희가 문을 여는 순간 원경장은 단발 가스총을 뽑아들고 “경찰이다. 무릎 꿇어”라고 외쳤다. 어느 틈엔가 신창원은 부엌칼을 들고 “맘대로 해봐”라고 대꾸했다. 2m도 안되는 거리였다. 원경장이 방아쇠를 당기자 멧돼지도 기절시킨다는 최루액이 신의 얼굴에 명중했다. 그러나 신은 기절하기는커녕, 왼손으로 얼굴을 쓱 닦고 시퍼렇게 독기 오른 표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당황한 원경장이 가스총을 던지자 신은 가볍게 피했다. 그 서슬에 원경장은 뒤로 물러서다 넘어졌다.

이때의 상황을 원경장은 “칼끝이 흐리게 보일 정도로 신창원의 손놀림이 빨랐다. 그는 나를 죽일 수 있었으나 칼을 거두었다”라고 말했다. 신이 물러선 순간 원경장은 굴러떨어지다시피 계단을 내려와 112로 신고했다(뒤에 있던 김경장과 후배는 신의 서슬에 놀라 벌써 밀려 내려온 다음이었다). 이때가 신창원의 행적이 처음 보고된 순간이었다. 잠시 후 송탄파출소 소속 경찰관이 총을 들고 달려왔다. 공포 2발을 쏘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갔으나 문이 잠겨 있다. 문을 따고 들어가자 최루액 냄새 속에서 강순희 혼자 울고 있었다.

위급한 순간 일단 추적자의 시야를 벗어나 전망 좋은 곳에서 상대를 살피다 조용히 내빼는 것이 신창원의 습성이다. 신창원의 아버지는 한 형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창원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하도 나쁜 짓을 해서 매를 든 적이 있었다. 매타작을 시작하는데 창원이가 번개같이 마당으로 내빼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루종일 모습을 감춘 창원이는 그 날 저녁 돌아왔다. 어디에 가 있었느냐고 묻자 ‘집 뒤에 있는 소나무 위에 올라가 하루종일 아버지를 지켜 봤다’고 대답했다.”

원경장이 후퇴한 후 신창원은 얼굴을 씻고 목욕 가방에 돈을 넣은 다음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주변 상황을 살피던 그는, 경찰이 문을 따는 동안 조용히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원경장의 후배인 이종무(가명)씨가 지키고 있었다. 목욕탕을 가는 것처럼 꾸민 신창원이 흘끗 이씨를 쳐다보며 “여기 살인 사건이 난 모양이지요?”라고 말을 걸었다. 이씨는 신창원의 사진에서 귀가 크다는 점을 눈여겨 보았던 터라, 큰 귀를 보고 “신창원이다”라고 소리쳤다. 순간 신은 쏜살같이 달렸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 이씨는 “저것이 사람인가 싶었다. 캥거루처럼 한두 발 뛰더니 훌쩍 담을 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신은 담을 넘어 지붕을 타고 이리저리 뛰며 외진 곳에 세워 둔 다이너스티 승용차로 향했다.

황망중에도 이씨는 승용차에 올라타는 신창원을 다시 발견하고 붉은 벽돌을 집어들고 달려갔다. 운전석 옆에 다다른 이씨가 벽돌을 집어던지자, 벽돌은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신창원의 왼쪽 손목을 때렸다(이로 인해 신의 왼쪽 손목 뼈가 부러졌다). 그런데도 신은 자동차를 몰고 달아났다. 이 날 전주로 내뺀 신창원은 오후 4시쯤 ㄱ병원을 찾아가 ‘신승남’이라는 이름으로 깁스 치료를 받았다.

‘평택 대결’에서 또 신창원을 놓친 후 원경장은 경찰청 감찰계의 피조사자로 전락했다. 원경장이 특진 욕심 때문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혼자 신창원을 잡으려 한 사실이 밝혀지자 모든 언론이 경찰을 비난했다. 98년 1월7일 경찰 수뇌부는 원경장과 김구연 경장을 면직시키고, 경기도경 형사기동대 김병록 경사(39)에게 수사를 맡겼다.
머리 깨고 낭심 걷어차도 비명 한번 안 질러

김경사는 스물네 번이나 포상을 받은 강력범 검거의 달인이다. 공식으로는 유도 3단이지만, 경기도 경찰관 중에서 최고수 무도 경찰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김경사가 두 여인을 조사하던 1월10일 밤 10시 신창원이 전혜숙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이어 10시55분 또 전화를 걸어와 “오늘 밤 12시까지 산천장 앞 냇가 주차장으로 오라”고 한 후 끊었다. 평택에서 산천장이 있는 광덕산 부근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거리이다(이 날 오전 신창원은 대전 ㅇ병원에서 나무 깁스를 석고 깁스로 교체해 손이 자유로웠다).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김경사는 “지원 병력을 산천장 냇가 주차장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최갑철 경장(45)과 함께 전혜숙의 라노스 승용차에 올라탔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뒷자석 밑에 누웠다. 얼마 뒤 운전하던 전혜숙이 “신의 다이너스티 승용차가 곁에 붙었다. 신은 내 차에 사람이 타고 있는지 건너다보았다”라고 말했다. 이 날은 음력 섣달 12일로 전국에 눈이 내렸다.

전혜숙이 산천장 앞 냇가 주차장을 지나 차를 세우자 신창원은 그 옆을 지나 앞쪽에 주차했다. 차에서 내린 신창원이 라노스의 문을 여는 순간 김경사가 공포를 쏘며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신창원이 다이너스티 승용차로 달려가 문도 닫지 못한 채 액셀러레이터부터 밟았다. 그러나 주차 브레이크를 풀지 않아 차는 ‘털털’ 거리며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공포 한 발을 더 쏜 김경사가 달려가 신을 끌어내렸다. 김경사는 타고난 장사이다. 그가 신창원을 껴안자 최경장이 가세해 신을 일방적으로 두들겨팼다.

몸을 빼내려는 신의 힘이 강하다고 느낀 김경사는, 최경장에게 신창원의 다리를 쏘라고 했다. 그러나 최경장의 권총은 격발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김경사는 신의 허리를 감고 있던 자신의 손끝에 걸린 권총을 아래로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3발 모두 발사했으나 1발도 맞지 않았다. 김경사는 실탄이 없는 권총을 던져 버리고, 최경장에게 권총으로 신의 머리를 때리라고 주문했다. 최경장이 권총 손잡이로 내려치자 신의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김경사도 무릎으로 신의 낭심을 내질렀다. 그러나 신은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다. 독이 오른 최경장이 목덜미를 물었을 때도 신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광덕산 지류인 태화산 자락에서 이렇게 격투가 벌어지는 동안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들은 술 취한 사람들이 싸우는 줄 알고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고 있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나이가 많은 최경장이 지쳐 주저앉았다. 그러자 신창원이 거꾸로 김경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신창원의 옷이 반쯤 벗겨지며 김경사의 손이 따라 올라가자, 신창원이 김경사의 왼손 검지를 깨물었다. 그 바람에 김경사는 손을 풀었다. 신은 독기 서린 얼굴로 권총을 주워 김경사를 겨냥했다. “쏴 봐! 새끼야.” 독이 오른 김경사가 대들자 ‘딸칵’하고 빈총이 격발되었다. 그 순간 몸을 돌려 라노스 승용차에 올라탄 신창원이 마을회관 옆에 설치된 쇠사슬을 끊고 매당1구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이런 소동이 일어나는 동안 지원 병력은 ‘냇가 주차장’을 ‘레커(차) 주차장’으로 알아듣고, 광덕산 인근에 레커차를 주차한 곳이 어디인지 헤매고 있었다. 또 그곳은 핸드폰 불통 지역이었다. ‘레커 주차장’을 찾지 못한 지원 병력이 겨우 유선 전화를 찾아 산천장 전화번호를 눌렀으나, 이 날 따라 산천장 주인 박옥순씨(여)는 1층 전화를 5층 살림집으로 돌려 놓지 않고 잠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교도관·경찰관 죽이겠다”

이 날 밤 광덕산 일대에는 밤안개가 자욱했다. 김경사가 권총을 5발이나 발사했는데도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 신중철씨가 단 1발만 들었다고 증언했을 만큼, 안개가 소리를 차단해, 지원 병력이 더더욱 격투 현장을 찾지 못했다. 마을 끝까지 도망친 신창원은 차를 버리고 안개를 은신 도구 삼아 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 왔다. 마을회관 근처에서 빈 탄창을 버린 그는 마을회관을 우회해 섣달 첫눈이 내린 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언론은 경찰이 총까지 빼앗겼다며 두 형사와 경찰을 두들겼다. 두 경찰관은 3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원경장과의 대결보다 더 치열했던 것이 ‘태화산 혈투’이다. 다이너스티 승용차에서 신창원의 일기가 발견되었다. 신은 원경장에게 두 번이나 가스총을 맞고 왼손 손목이 부러진 것이 분했던지 ‘교도관도 경찰관도 죽여야 할 상황이 온다면 망설이지 않겠다’는 기록을 남겼다. 신창원은 여기서도 도주에 성공했지만, 육체적·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고 1년여 동안 벌어둔 것을 모두 잃었다.

3월6일 전북 김제경찰서는 금구면 신선휴게소(가게)에 신창원이 나타날 것이라는 신고를 접수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수사대는 젊은 의경 4명을 손님으로 가장시켜 신선휴게소 안에 배치했다. 오후 7시5분쯤 수사과장이 도착해 두 겹으로 배치된 포위망을 확인하고, 검거 예행 연습을 했다. 7시40분쯤 신창원이 짐칸에 낚싯대를 붙들어맨 자전거를 끌고와, 신선휴게소에 들어와 빵을 사려고 했다. 그 순간 수사과장을 비롯한 형사들이 가게 안에 들어가 신창원을 붙잡았다.

공교롭게도 김제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가끔씩 자전거를 메고 다니는 미친 사람이 있다. 그 지역에서 ‘이 사람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 날 신의 복색은 그 미친 사람과 흡사했다. ㄱ형사가 신창원의 모자를 벗기며 무심결에 “그 미친 놈이네요”라고 하자, 긴장했던 형사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동의했다. 그러나 강영환 형사는 인적 사항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 날 밤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호남선 지역’만 옮겨다니며 도피

신창원은 배낭을 벗는 척하다 내동댕이치고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한 형사의 표현대로 ‘겁나게’ 빨랐다. 그제서야 가게 안팎에 있던 형사들이 총을 쏘며 뒤쫓았으나 신창원은 실개천을 건너는 “첨벙” 소리만 남긴 채 밤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버리고 간 배낭 안에서 김경사의 빈 권총이 나오자 수사대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그 후 한 형사는 “인근 절 주지에게 신창원의 운세를 물었는데 ‘아직 신창원의 운은 빳빳해’ 하더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신은 2단 줄넘기를 3시간 동안 할 만큼 몸이 날래고 강한 데다, 술을 즐기지 않고 냉정한 성격이어서 감정 변화가 적다. 그가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신은 또 평택-천안-아산-공주-대전-정읍-김제 등 ‘호남선’으로만 옮겨다니는 특징이 있다.

신이 검거되면 어떤 형량을 선고받을 것인가. 탈옥범에게는 최고 7년형이 언도된다. 절도죄에 특가법을 적용하면 최고 무기형이 언도된다. ‘무기(탈옥 당시)+7년+무기=무기형’이 그에게 부과될 형량이다. 신창원은 범죄자를 쫓고 심판하는 검사와 판사까지도 부정 부패로 조사받는 시대에 공권력을 희롱하는 ‘일그러진 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말로는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신창원은 지난해 4월 전혜숙에게 탈옥수 신창원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또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한 스님이 나를 보고 ‘네가 나를 따라오면 장차 장관이 될 것이고, 따라오지 않으면 평생 쫓기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인생은 평생 쫓기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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