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올해의 인물' 박찬욱, 영화사 다시 쓴 '미다스의 손'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1.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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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작품성 뛰어난 <공동경비구역 JSA>연출

박찬욱 감독이 첫손에 꼽힌 것은 연말쯤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쉬리>의 흥행 기록을 깰 것이라는 기대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은 한국 영화계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쾌거일 뿐 아니라 반가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비주류 영화의 신봉자로 회자되던 박찬욱 감독이 장사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영화와 자웅을 겨루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개봉 석달째를 넘어선 최근까지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51회 베를린영화제 본선 경쟁 부문에 초대되었으며, 일본에는 2백만 달러에수출되었다(<쉬리>는 1백50만 달러). 청룡영화상에서는 작품상을 비롯해 다섯 부문을휩쓸었다. 현재 <공동경비구역JSA>는 관객 동원 수에서<쉬리>에 3만여명(서울 기준) 뒤졌을 뿐이다.

박찬욱 감독은 '상업 영화로 전향했다. 그것의 미덕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작품은 기왕의 숱한 블록버스터와 명확히 구별된다. 이 차이는 그가 인문적인 전통에 젖줄을 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본인이 실토한 바에 따르면,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광으로 알려진 박감독은 실제로는 소설광이다. 영국 소설을 좋아하며, 그밖에 애독하는 작가는 발자크와 보르헤스다. 희곡을 써서 직접 무대를 꾸미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박감독은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강제규 감독이 만들었다면 어땠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고 "총격전을 많이 넣고, 남녀 주인공 사이의 로맨스도 설정했겠지요"라고 답한 적이 있다. 흥행 요소로 불리는 액션과 로맨스에 기대는 것은 안전한 길임에 틀림없지만, 박감독은 뻔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남북 화해 무드라는 외부 요인과 함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주된 동력은, 그가 장사를 위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으로 보인다.

<공동경비구역JSA>는 창작과 시장 사이의 간극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즉 그간 존재하던 베스트셀러에 대한 불신을 걷어냈다는 점에서도 공이 작지 않다. 그동안 흥행작에 대한 태도는 어떤 분열을 내장하고 있었다. '한국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한다'는 긍정론이 대세였지만, 한켠에서는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단지 상품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우려도 엄존했던 것이다.

조수미·서태지, 음악계 큰 별

음악 분야에서는 컴백한 서태지와, 조수미가 수위를 차지했다. 과거 문화·예술 분야에서 백남준·정명훈 등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조수미씨는 올해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국내 활동이 부쩍 늘었기 때
문으로 보인다. 올해 초팝 크로스오버 음반인 <온리 러브>를 녹음해 대중에 바짝 다가선 데이어, 드라마 <허준>의 주제가와 영화<광시곡>의 주제가를 불러 성악가답지 않은 활동 폭을 과시했다. 얼마전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는<아리랑>을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강렬한 하드 록 계열의 음반인<울트라맨이야>를 들고 활동을 재개한 서태지는, 단순히 스타의 귀환이 아닌 신화의 재현으로 불릴 만하다. 음반 판매량과는 별개의 상징성과 지명도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대중 음
악 가수로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게다가 스타와 팬은 닮게 마련인지, 그의 영향력은 '팬덤'이라는 용어를 다시 보게 만들고 있다. 서태지의 팬은, 단순한 열성 팬이 아니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따라붙던 대기업 광고를 취소시킨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일방통행이기 십상인 대중 문화계의 의사 소통 구조와 '맞장'을 뜰 수 있는 힘과 논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팬들이 또 하나의 문화 권력이 되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나 음반사를 상대로 한 그들의 활동은 귀를 기울일 만한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

문학·스포츠 분야, 황석영·박찬호 1위

오랜만에 장편 소설 <오래된정원>을 펴낸 소설가 황석영씨는, 동인문학상 후보에 거명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더욱 화제가 되었다. 황씨의 발언은, 소설가와 사회의 관계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환기했으며, 2년째 지속되어온 '안티 조선 운동'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예민하고 과격한 논의인 만큼 많이 회자되기는 했지만 주류 사회에서 제대로 된 논장을 갖지 못했던 안티 조선 운동은, 공중파 텔레비전의 토론 프로그램 논제로 채택되면서 한층 다양한 반응을 얻고 있다.

스포츠 부문에서 박찬호는 몇 년째 부동의 1위다. 1997년 메이저 리거가 된 후 거의 매년 수위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18승을 달성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채로운 것은 올림픽 은메달에 그친 사격 선수 강초현의 이름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금메달을 놓친 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올림픽 메달에 온갖 불순물을 덧칠해 온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뒤흔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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