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 음료, 알고 마시자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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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음료=건강 유익' 맹신 금물…
과잉 섭취하면 비만·충치 불러


가뭄이 계속되자 농촌과 공단에서는 농업 용수와 공업 용수를, 일부 지역에서는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다. 하지만 가뭄에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 속에서 이미 확보한 '물'을 내보내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있는 곳이 있다. 청량 음료 시장이다. 땡볕 속에서 치열하게 펼쳐지는 '음료 전쟁'의 내막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최근 강력한 무기로 인정받고 있는 기능성 음료에 대한 '신체 검사'를 실시했다.




80% 이상이 물이면서도 자신을 '물로 보지 말라'고 하는 각종 청량 음료들. 최근에는 이런 저런 효능을 담고 있다는 기능성 음료들이 슈퍼마켓 냉장고 맨 앞줄에 도열해 있다. 쌀·보리는 물론 녹차나 매실·포도 식이 섬유가 함유된 음료들이 막강한 광고 지원을 받으며 여름철 음료 전쟁의 최전선에 투입되어 있다.


광고를 믿지 않는 '냉정한' 소비자라고 하자. 그래서 슈퍼 진열대 앞에서, 광고 카피나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대신 상품에 표시된 제품 설명을 꼼꼼하게 읽고 판단한다고 치자. '원재료명:매실과즙 5.94%(6Brix 이상:수입산), 액상과당, 정백당, 사과농축액(국산)…'. 전문학자나 음료 회사 관계자가 아닌 한, 이 같은 제품 정보 앞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 원료와 원산지 정도를 알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매실이 피로 회복과 소화 촉진에 도움을 준다는 상식을 알고 있다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며 매실 음료를 선택할 것이다. 게다가 용기에 '맛있고 몸에 좋은 매실 음료'라는 문구가 박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광고의 지배를 받지 않고, 제품 자체를 보고 판단한 당신의 선택은 과연 현명했을까.


우선 과즙이 10% 정도 함유된 저과즙 음료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매실 음료는 매실 과즙 10% 내외를 함유하고 있다. 매실은 피로 회복과 소화 촉진을 돕는다. 또 해독과 살균 효능이 있다. 이런 효능을 가진 매실이 들어간 음료라면 몸에 좋은 것이 아니냐고 믿기 쉽다.


매실 음료, 하루 6병 마셔야 '피로 회복'




현재 시판되는 매실 음료 가운데, 임상실험을 거쳐 효능이 입증된 것은 없다. 의약품이 아닌 이상 효능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00ml들이 한 병에 들어가는 매실은 1개 반 정도이고 매실 1개로 만들 수 있는 즙은 약 1g이다. 소화 촉진이나 피로 회복을 위해 한의학계에서는 매실즙을 1회 3g씩 하루 세 번씩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매실 음료로 피로 회복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하루에 6병 가량을 마셔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과나 오렌지·포도 과즙이 10% 정도 들어간 음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과나 오렌지 과즙 음료는 사과·오렌지가 각각 5분의 1쪽, 포도즙은 포도가 서너 알이 들어간다. 1일 권장량이 70mg인 비타민 C만 놓고 보면, 오렌지 반쪽에 42mg, 포도 반 송이에 51mg 정도가 함유되어 있고, 사과는 이보다 훨씬 적다. 결국 과즙 음료로는 1일 권장량의 약 5분의 1도 섭취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100% 천연 과일 주스나 식이 섬유를 주원료로 한 음료는 다르지 않을까. 100% 무가당 오렌지 주스 200ml 한 병에는 오렌지 2개가 들어간다. 또 식이 음료에는 대개 식이 섬유인 덱스트린 5g이 포함되어 있다. 이 양은 딸기 22개나 토마토 3개와 맞먹는다. 이 정도 함량이라면 그 효능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정용진 교수(계명대·식품가공학)에 따르면, 과일이나 야채를 가공할 때에는 가공 방법에 따라 성분의 효능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가공 식품에 포함된 성분은 절반 가량이 비활성화한 것, 즉 죽은 성분이나 마찬가지이다. 정교수는 "오렌지 2개 또는 식이 섬유 5g을 함유했다고 해서 음료에서 실제 그만큼의 성분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말했다. 정교수가 직접 복분자 가공법을 연구한 결과, 복분자의 성숙도와 가공 방법, 가공 형태에 따라 본래의 효능이 매우 달라졌다.


기능성 유산균 음료나 약국에서 판매되는 드링크제는 좀 나은 편이다. 유산균에 막을 씌워 장까지 살아가게 한다는 캡슐 요구르트나 위장병 원인균인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를 공격한다는 유산균 음료는 실험에서 그 기능이 일부 입증되었다. 보통 유산균은 위산에 약해 위에서 상당량이 죽는다. 그러나 캡슐을 쓴 유산균은 위를 무사히 지나 장까지 도착해, 장의 활동을 촉진한다.


"치료 목적이라면 약 먹는 것이 훨씬 이득"




지난 3월 대한보건협회 주최 국제 학술대회에서 서울대병원 내과 정현채 교수 팀은 시판 중인 기능성 요구르트를 헬리코박터에 감염된 환자 21명에게 4주간 매일 400ml씩 투여한 결과 18명에게서 균이 감소했고 3명은 완치되었다고 밝혔다. 또 연대 의대팀은 최근 하루 1병(180ml) 복용만으로 한 달 뒤 콜레스테롤 수치를 10∼20% 떨어뜨린다는 콜레스테롤 저하 음료의 효능을 임상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박카스를 비롯한 드링크제들도 임상 실험을 거쳐 일정한 효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의학 전문가들은 특정한 효과를 기대하고 일부러 이런 음료를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임상 실험을 거친 제품이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식품이기 때문에 약리 효과보다는 심리 효과(플래시보 효과)에 기대는 부분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조비룡 교수(서울의대·가정의학)는 "기능성 음료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면 약이 음료보다 효능뿐 아니라 가격도 훨씬 싸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기능성 요구르트 10병 분량의 유산균을 함유한 약은 2백원 정도이다. 기능성 유산균 음료는 1병에 천원이다. 요구르트에 포함된 다른 영양 성분을 제외하고 유산균만 따지면, 기능성 요구르트보다 유산균 제재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설명이다.


음료의 효능에 대해 따져 물으면 음료 회사는 '음료수는 약이 아니다. 부작용이 없으니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항변한다. 음료의 특정한 효능에 대해 노골적으로 광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법상 식품은 그 기능에 대해 광고할 수 없다. 그 대신 부작용이 없는 것이라면 효능 여부와 상관없이 무엇이든 가공하여 상품화할 수 있고, 원재료의 효능을 마케팅 활동에 '교묘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음료수를 마시는 일이 밑져야 본전일까. 적어도 비만과 충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본전'만은 아니다. 음료수가 함유한 당분과 산은 비만과 충치를 부른다. 시판되는 음료 대부분은 200ml 한 캔 당 100kcal 열량을 갖고 있다. 물론 최근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일부 음료는 70kcal 정도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0kcal인 물에 비하면 적은 열량이 아니다. 의사들이 권장하는 1일 물 섭취량은 성인 남자의 경우 1.5ℓ, 이 가운데 3컵만 음료로 대신한다 해도 300kcal이다. 예컨대, 매실 음료의 경우 하루 6병은 마셔야 매실 효능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러자면 덤으로 열량 600kcal를 소화해 내야 한다.


스포츠 음료, 간·신장 나쁜 사람에게 '독약'


또한 콩팥이나 간이 나쁜 사람에게 스포츠 음료는 '독'이다. 스포츠 음료는 체내 흡수를 돕기 위해 소듐이나 나트륨을 넣는데, 이것이 콩팥이나 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약국에서 파는 드링크제의 경우 카페인을 포함하고 있어 장기간 복용할 경우 중독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치아에 미치는 영향이다. 콜라나 사이다와 같이 산도(ph)가 높은 음료를 마시면 치아산식증(화학물질에 의해 이가 삭는 증세)을 초래한다. 음료에 포함된 강산성이 치아를 보호하는 이 표면의 법랑질을 부식시키기 때문이다. 권호근 교수(연세대·치예방의학)는 "구강 내 산도가 5 ph 이하로 떨어지면 법랑질 속의 칼슘이 빠져나온다. 청량 음료 때문에 치아산식증이 발생해 병원을 찾는 환자도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대부분 청량 음료가 치아를 부식시킬 수 있다고 지적되었다. 식약청 자료에 따르면, 콜라의 평균 산도는 2.5, 사이다는 2.9, 과즙 탄산음료는 2.7, 어린이 음료는 3.3, 스포츠 음료는 3.0이다.


미국에서는 청량 음료의 폐해를 우려하여 치과의사협회가 학교 매점과 같은 곳에서 청량 음료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것을 규제한다. 권호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청량 음료 소비량이 크게 늘고 있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음료 포장에 경고문이라도 붙여서 음료 소비를 줄이게 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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