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문민화·검찰 개혁이 목표”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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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법무부장관 인터뷰/“한시적 특검제 상설화에 동의한다”
도로공사 ‘일방통행’에 울부짖는 사람들
경기도 양평 아신리 주민들의 ‘고속도로 전쟁’ 내막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주민들은 지금 ‘골리앗’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골리앗은 마을을 갈가리 찢어가면서까지 고속도로를 내겠다고 고집하는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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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향란



도로공사는 여주-양평 고속도로를 아신리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도록 설계했다. 아신리에는 1백67가구 5백여명이 살고 있다. 도로공사 설계대로라면 이 가운데 35가구는 도로에 편입되어 이사해야 하고, 나머지 가구들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네댓 개로 나뉜다. 절반 이상이 고속도로와 10m 조금 넘게 떨어져 소음 피해를 고스란히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구간은 고속도로가 집보다 더 높이 놓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들은 전경이 고속도로에 막히게 된다. 마을 입구에서 집까지 가려면 고속도로를 세 번이나 넘나들어야 하는 집들도 있다.


아신리 주민 박수정씨(55)는 “도로에 편입돼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차라리 낫겠다. 도로공사는 보상비를 줄이려고 집들만 요리조리 피해 도로를 설계했다”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실제로 전국 고속도로 주변에서는 가옥 피해가 적지 않아 도로공사 사이버 민원실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는 그들의 민원이 넘치고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아신리 주민들이 더 화가 치민 것은 도로공사의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도로공사가 ‘변경 불가’라는 방침을 고수하기 위해 궁색한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고 믿는다. 도로공사는 고속도로를 계획하던 지난해 2월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그러나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아신리 주민은 아무도 이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비교적 피해가 적은 신대마을 주민 6명만 참석했을 뿐이다. 아신리 이장 정운영씨(63)는 “이장인 나한테는 물론이거니와 면사무소에조차 주민설명회를 연다는 공문 한 장 보내오지 않았다. 주민들이 알면 반대할까 봐 설명회를 요식 행위로 치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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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4월 중순에야 고속도로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 때부터 군수와 경기도청·도로공사·건교부·감사원을 쫓아다니며 도로를 다른 곳에 내 달라고 요구했다. 마을 뒷산 너머로 도로를 이전하라는 것이었다(지도 참조). 그러나 도로공사는 산 뒤로 노선을 변경하면 공사비가 더 들 뿐 아니라 산을 허물어야 하므로 환경 피해가 크다고 주장했다. 관청이나 관련 정부기관도 국책 사업에 반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주민들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까지 이 문제를 심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노선을 바꾸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을 심의한 이이동 조사관은 “전문 기관이 확정한 노선은 변경하기 어렵다. 해마다 도로 노선을 바꿔 달라는 민원이 100여 건씩 올라오지만 민원대로 변경된 노선은 한 건도 없다”라고 말했다.


전문 지식이 없는 데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주민들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주민 몇 명이 토목학자와 도로 기술 전문가들을 찾아다닌 끝에 도로공사의 주장을 뒤엎을 증거들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토목 전문가들도 잘 협조해 주지 않았다. 그들 역시 도로 공사로 먹고 사는 터여서 도로공사에 밉보였다가는 자칫 ‘밥줄’이 끊길까 걱정한 탓이다. 그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저명한 토목공학자를 만나면서 주민들은 힘을 얻었다. 이 학자는 노선을 변경할 경우 추가 공사비가 5백50억원이나 더 든다는 도로공사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밝혀냈다. 공사비를 추정한 결과 추가 공사비가 전혀 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환경 훼손 역시 두 노선 모두 큰 차이가 없다는 환경 전문가의 의견도 나왔다. 임영환씨(49)는 “도로공사가 노선을 변경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추가 공사비를 부풀리고, 환경 훼손 어쩌고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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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주민들 반박 자료 내도 요지부동


주민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반박 자료를 만들어냈지만, ‘골리앗’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미 확정한 노선이 기술·환경·사회·경제 요인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최선의 노선이라는 것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민원이 있다고 국가 사업을 추진하지 못할 수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설계를 변경하면 도로 선형이 안 좋고, 산림 훼손이 심하고, 추가 공사비가 더 든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노선을 변경하면 반대편 마을이 민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아신리 마을이 원하는 대로 노선을 변경하면 다른 마을 30 가구가 비슷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물론 도로공사의 노선 비교 평가표를 보면, 주민들이 원하는 노선은 도로공사 노선보다 여러 모로 불리하다(표 참조). 그러나 주민들은 비교 평가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생활 환경 영향 평가에서 두 노선에 모두 똑같이 10등급을 주었고, 주민 의견 반영은 각각 9등급과 10등급을 매겨 차이를 크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 이한준씨(41)는 “주민들이 반대하는 노선이나 원하는 노선 모두 생활 환경을 해치지 않고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한 자료를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주민들은 이제부터 싸움을 본격화할 참이다. 서울대학교에 노선 비교 평가를 공식 의뢰해 도로공사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밝혀낼 계획이다. 어떤 결론이 내려질 것인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보면서 건축연구소 광장 김 원 소장이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성과 공사 편의성만 생각한 개발 위주의 사고가 지배하는 한 이런 갈등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환경운동으로 인해 환경을 훼손하는 개발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이제는 주민들이 나서서 주민의 삶의 질을 해치는 개발을 막아야 한다.”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아신리 주민들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설계한 한국도로공사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위). 아신리 마을 일부(아래).



‘체증’ 풀리지 않는
고속도로 민원

고속도로 주변 50m 안팎에서는 소음과 진동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게 발생한다. 가축들이 쓰러지고, 건물이 균열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박은미씨(경북 경주시)는 구미-포항 4차선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 박씨 집은 도로 공사 현장에서 약 12m 떨어진 곳에 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박씨네 축사에서 자라던 돼지들은 유산과 사산을 거듭했다. 또 박씨 집 지반이 가라앉고 건물 벽에 금이 갔다.


배종길씨(경남 통영군)도 도로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그는 아들이 아파서 조용한 곳을 찾아 새로 이사했다. 그런데 이사한 집 바로 위에 고가도로가 생긴다는 발표가 났다. 조용한 곳을 찾아 이사한 그는 고가도로에서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게 된 셈이다. 다시 이사하려고 집을 내놓아도 도로가 생긴다는 점 때문에 팔리지 않고 있다. 박운재씨(강원도 양양군) 역시 새로 날 도로 때문에 곤경에 빠졌다. 지난 가을 수해로 윗 집을 잃고 집 아래 터에 새로 집을 지을 예정이었는데 집 중앙으로 동서고속도로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는 이런 민원이 지난 1년 동안 8백건 이상 접수되었다. 그러나 민원인은 피해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해만 보고 보상받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한국 자동차 시장 1% 점유하겠다”
BMW그룹 뤼더 파이젠 판매담당 수석 부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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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안은주



세계 각국의 내로라 하는 자동차 기업들은 저마다 아시아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 어느 시장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BMW그룹은 일찍부터 일본·한국·중국·태국·인도네시아 등에 지사를 두고, 아시아 시장 개척에 공을 들였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BMW그룹 아시아 기자 간담회에서 뤼더 파이젠 판매담당 수석 부사장(59)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0년대 후반 BMW 일본 사장을 지냈던 그는 그룹 내에서 아시아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BMW의 아시아·라틴아메리카·중동·아프리카 시장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BMW는 아시아에서 28%나 성장했다. 성공 비결은?


BMW의 힘과 철학 가운데 하나는 선행 투자에서 나온다. 우리는 아시아 시장이 성장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1980년대 초부터 아시아에 투자해 왔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5천대 가량을 팔았지만, 딜러나 서비스센터 등 모든 인프라는 1만대 판매 수준에 맞추고 있다. BMW는 또 항상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각 시장에서 어떤 차가 잘 나갈지를 예측해서 집중 공략하는 식이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작은 ‘미니’가 잘 팔리지만 한국에서는 작지만 고급스러운 차는 경쟁력이 없다. 한국에 아직 미니를 내놓지 않은 까닭이다.


태국처럼 한국에도 BMW 공장을 세울 계획은 없는가?


한국 경제에 이바지하려면 공장을 세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BMW를 생산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 태국은 수입 관세가 높아 독일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자체 조립·생산이 경제적이어서 공장을 세운 것이다. 한국은 수입 관세가 높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공장 설립보다는 부품을 개발해 한국 경제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한국 기업 가운데 우수한 부품업체를 선정해 BMW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BMW코리아가 매우 놀라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한국에서 5천대 이상을 팔아, 수입차 시장 점유율 31%를 기록했다.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하지만 고급차 시장에서 BMW만 그렇게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다른 수입차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 또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입차가 더 많이 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한국 자동차도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다른 수입차와 경쟁하기보다는 한국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BMW의 점유율을 1%대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벤츠나 아우디가 아니라 고객을 우리의 경쟁 상대로 여긴다. 고객을 얼마나 만족시키느냐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믿는다.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는 현지인 사장이 없는데, BMW코리아만 한국인이 사장을 맡고 있다.


각 지사는 현지인 사장을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BMW의 기업 이념과 철학을 잘 이해하는 현지인 사장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은 눈에 ‘BMW’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우리 그룹을 잘 이해하는 한국인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2003년에도 지난해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아시아와 한국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잘 이겨낼 것이다. 게다가 우리 차는 정치·사회적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이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경제적 위기가 와도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한국에서 BMW를 생산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 우리는 한국 업체가 BMW에 부품을 공급하도록 해 한국 경제에 이바지할 계획이다.”



지금은 ‘환테크’ 시대

최근 이라크 사태 및 북한 핵 등으로 인한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환율 상승). 글로벌 경제에서 환율 변화는 모든 이의 큰 관심사다. 국경이 무너진 시대에는 재테크에서도 국제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유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나 무역업을 하는 사람은 물론 일반 개인도 환율 변동에 대비한 ‘환테크’가 필요하다. 환율이 급등락할 때의 환테크 요령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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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안은영



일부 재산은 외화로 보유하라:자신의 전체 자산 중 10% 정도는 다른 나라 통화로 갖고 있는 것이 좋다.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 어떤 투자처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 환투자다. 그러나 항상 정확하게 환율을 예측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따라서 통화를 국내 통화(원화)와 달러 등의 해외 통화로 나누어 분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금융기관에는 외화 관련 상품이 많이 나와 있다. 적금식도 있고 목돈을 예치하는 방식도 있으며, 심지어 해외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도 있다. 주로 적금식·목돈운용식은 은행이, 해외 주식 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은 증권사와 투신사가 취급한다. 환율이 오른 시점에서 갑자기 해외에 송금하려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평소에 외화 관련 상품에 가입해 일정 금액을 따로 넣어 두는 것이 좋다.


환테크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반대로 환율이 내리면(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외화 송금 및 환전(換錢) 시점을 최대한 늦추고, 해외 여행에서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신용카드가 현금보다 더 유리한 이유는 신용카드 사용분에 대한 환율 적용 기준일이 상품을 매입했을 때가 아니라 결제할 때이기 때문이다. 즉, 물건을 산 후 환율이 내리면 카드 사용자는 그만큼 결제 대금을 적게 낼 수 있다. 또 환율 하락기에는 가급적 갖고 있는 외화를 원화로 바꾸는 것이 좋다. 외화 예금 가입자의 경우 예금을 원화로 찾아 놓거나, 환 리스크 회피형 예금으로 갈아타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전은 주거래 은행에서:여행자들은 별 생각 없이 가까운 은행 창구나 공항의 환전소에서 돈을 바꾸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출발에 임박해 공항에서 부랴부랴 환전하면 부가 서비스는 고사하고 환전 수수료도 거의 할인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공항 환전소는 한 번 거래하고 끝나는 고객들을 상대하므로 환전과 관련된 서비스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거래 은행의 환전 이벤트 서비스를 이용하면 환전 수수료 할인 혜택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환전 금액이 크거나 자신이 거래하는 은행에서 우수 고객으로 인정받으면 환전 수수료를 영업점장과 협의해 결정할 수 있으므로 수수료를 더 아낄 수 있다. 일부 은행이 실시하는 사이버 환전 시장의 수수료는 은행 창구보다 훨씬 싸다. 또한 현금이 필요한 경우에는 외화 현금보다는 여행자 수표로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 그리고 환전할 때에는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므로 필요한 만큼만 환전하는 것이 좋다.



환율이 급등락할 때 외국에서 사용하고 남은 돈은 당시의 상황에 따라 원화로 바꾸는 것이 유리하거나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외국 돈을 사용할 일이 있다면 굳이 원화로 바꿀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달러에서 원화로, 원화에서 달러로 바꾸는 데 드는 환전 수수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재테크 문의·상담 pjil@kfb.co.kr

박정일 (제일은행 수신상품팀 팀장)



<정보통신>

“아날로그 TV, 나가 있어!”
PDP·프로젝션·LCD 등 ‘디지털 세대’가 주류 형성…화질·음질 ‘일취월장’

'화면이 큰 만큼 감동도 크다’는 광고 문구를 기억하는가. 14인치가 가정용 텔레비전의 표준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 20인치 텔레비전이 대형급으로 분류되던 10년 전만 하더라도 29인치·33인치 등의 대화면 텔레비전은 일반인으로서는 사기 힘든 고가 사치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03년 현재,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화면 비율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 새로운 텔레비전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매장을 둘러보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색다른 텔레비전이 즐비하다. 벽걸이 텔레비전이라는 PDP,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프로젝션에서 컴퓨터 모니터 같은 LCD 텔레비전까지 준비 없이 찾은 고객이라면 한바탕 공부라도 하고 돌아와야 할 형편이다.


TV에 나온 소품, 머지 않아 즉석에서 살 수도


텔레비전의 변신은 디지털 방송 시작과 함께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던 텔레비전 방송은 아날로그였다. 텔레비전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내기도 하고 전반적인 화질 역시 많이 향상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화질은 제한되어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은 가로 6백40개, 세로 4백80개의 선을 사용해 화면을 표시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모니터처럼 선명한 화질을 나타내지 못했다. 고화질 영상을 송출하기 위해 세계 각국 연구진들은 화질은 물론 음질을 향상시킬 방법을 연구했고, 그 결과 디지털 텔레비전이 만들어졌다.


일단 디지털 텔레비전은 기존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화질이 5~7배 이상 좋아졌다. 최대 가로 1천9백20개, 세로 1천80개 선의 해상도를 지원하기 때문에 거의 DVD와 유사한 화질을 약속한다. 그런가 하면 스테레오의 음질 역시 돌비 시스템과 CD에 버금갈 정도로 나아져서 눈은 물론 귀까지 즐거워졌다. 그렇지만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가장 큰 변화는 부가 정보를 실어 나르는 데이터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음성 통화와 문자 송수신만 가능하던 아날로그 핸드폰이 벨 소리를 내려받고, 무선 인터넷으로 게임도 즐기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한 것과 유사한 변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미 디지털 위성 방송을 즐기는 스카이라이프의 시청자라면 키 하나만으로 수백여 개 방송국의 방송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고, 지금 시청하는 채널은 무엇이며 어떤 프로그램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KBS·MBC 같은 공중파 채널이 디지털 방송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면 부가 서비스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현재 인기 드라마의 특정 소품을 눈여겨본 시청자가 그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방송사의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해 정보를 살펴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구매할 수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머지 않아 이런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모두 사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디지털 방송 수신할 수 있어야 ‘최신’


그렇다면 어떤 텔레비전을 구입해야 할까. 아날로그 방식의 구형 텔레비전으로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케이블 혹은 위성 방송 수신기와 같은 수신기를 따로 달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디지털 텔레비전의 장점인 화질과 음질을 예전 아날로그 수준으로 낮추어 보아야 하기 때문에 답답할 것이다. 때문에 새로 텔레비전을 산다면 반드시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제품으로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는 화면 비율을 결정하면 된다. 기존 텔레비전의 4 대 3 해상도와 달리 디지털 텔레비전은 극장 화면과 비슷한 16 대 9로 가로가 긴 형태이다. 디지털 방송의 표준이 이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화면 크기는 대각선 길이를 인치 단위로 표시하는데, 같은 PDP라고 하더라도 4 대 3 과 16 대 9 제품이 함께 출시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디지털 방송 수신이 가능한 종류는 HD와 SD 두 가지가 있다. 기존 해상도에 디지털 방식으로 화질을 높인 것이 SD급이고, 최고 해상도를 자랑하는 것이 HD급인데, 당연히 HD급이 비싸다.


가격을 빼고 고려한다면 얇고 가벼우면서 원하는 곳 어디든 설치가 가능한 PDP 텔레비전이 가장 매력적이다. 브라운관과 달리 화면의 모서리 쪽까지 선명한 PDP는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의 약자로서 42인치와 50인치가 주력 판매 기종이며 시중에는 1천5백만원대인 60인치 제품도 출시되어 있다. PDP는 다른 제품에 비해 절대 가격도 높지만 수명이 짧아 몇 년이 지나면 제품 가격의 60%에 이르는 패널을 교체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기도 하다.


프로젝션 텔레비전은 화면 뒤쪽에서 프로젝터 방식을 통해 초록·파랑·빨강 3색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만들어 낸다. PDP의 45% 정도 값이면 살 수 있지만 구형은 브라운관에 비해 다소 화면이 어둡다는 평가를 받았고 정면에서가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화질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한 제품이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초대형 화면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를 위한 디지털 LCD 텔레비전에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디지털 텔레비전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로도 사용할 수 있는 이들 제품은 18.1인치와 20인치짜리가 주종인데, 최대 크기가 30인치 정도라는 한계가 있지만, 값이 싸 관심을 모은다.


현재 일부 프로그램이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방송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와이드 텔레비전의 장점을 살린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4 대 3으로 제작된 방송을 16 대 9 화면으로 보면 사람과 사물이 가로로 확대되어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 해결하려고 화면의 모드를 조정하면 화면 양옆을 검정색으로 처리해야 하고, 이렇게 할 경우 화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와이드 텔레비전을 구매한 사용자들은 본의 아니게 최상의 화면 대신 아래 위를 좀 자르고 보는 파노라마 모드를 선호하는데, 이는 디지털로 보정한 화면이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는 아날로그 텔레비전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니, 반드시 확인해 보고 구입할 일이다.

곽동수 (한국싸이버대학교 정보통신학부 교수)

새로운 텔레비전이 속속 등장하면서 텔레비전 시장이 ‘춘추 전국 시대’를 맞았다.

일반 텔레비전:가격이 저렴한 대신 아날로그 방식이다.프로젝션 텔레비전: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인데, 화면이 다소 어둡다.

PDP 텔레비전:최상의 화면과 뛰어난 음질을 자랑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LCD 텔레비전:모니터 겸용으로 쓸 수 있는 대신 최대 크기가 30인치이다.





'검찰 제자리 찾아주기와 법무부 문민화’. 강금실 법무부장관은 <시사저널>과 가진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자기의 목표를 이렇게 말했다.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의 저항과 향후 우려에 대해서는 ‘두고 보면 알 것’이라는 말로 신뢰받는 장관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오히려 그는 검찰을 향해, 그동안 막연히 가졌던 서열 파괴 공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검찰 개혁은 반드시 하되, 검사들이 스스로 주도하도록 만들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강장관과의 단독 인터뷰는 장관 임명장을 받기 직전인 2월26일 밤, 그녀가 대표로 있었던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2시간 가량 이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인연이 있었는가?



보름 전쯤 노대통령을 처음 면담했다. 그 전에는 만난 일도 없고, 특별히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아마 민변 쪽에서 나를 장관 후보로 추천했던 것 같다. 법무부장관 하마평에 오르기에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 했지만, 노대통령을 만나 그 분이 가진 사법 개혁의 방향과 필요성에 공감해 적극 돕기로 결심했다. 대통령이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맥이나 신세 진 곳 등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자신감이 넘쳤고, 그 모습을 보면서 신뢰가 갔다.



40대 여성 법무부장관 출현을 ‘파격’으로 보는 풍토에서 임명장을 받기까지 큰 홍역을 치렀는데….



마흔여섯이라는 여자 나이가 이렇게 젊게 받아들여지는구나 생각하면서 젊은 여성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기도 했다(웃음). 우리 사회 전체가 글로벌화하는 과정에서 이미 변화의 큰 흐름을 탔는데, 다만 그 변화에서 느릴 수밖에 없는 법무부 쪽에서 이런 인사가 있었기에 파격으로 비쳤다고 본다. 세대 교체라기보다는 나이·성별·학력 등에 의한 장벽이 제거되어 가는 시대적 추세로 보았으면 한다.



노대통령이 너무 파격적이라는 주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강장관을 기용한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마디로 법무부 문민화와 검찰 개혁의 방향 때문이라고 본다. 종전에는 검찰총장의 상사 격인 검찰 출신 법무부장관이 임명되는 게 관행이었다. 검사 출신이 법무부를 장악하다 보니까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고 완충막도 없었던 것이다. 그걸 분리해서 법무부는 행정 중심으로 가면서 검찰을 지원하고, 수사권은 분리해 검찰총장 이하가 소신 있게 하게끔 바꿔보자는 것이 현정부의 기본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선후배 기수 개념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곤란하다는 점에서 검찰총장보다 기수가 훨씬 아래인 사람을 기용해야 검찰 중립을 보장하는 데 훨씬 자유롭다고 판단한 것이다. 옛날 틀로만 보면 충격적이겠지만 검사들도 곧 수용할 것이라 믿는다.



일각에서는 대법관이 사시 11회이고, 검사장급도 12~16회가 포진한 현실에서 23회 출신 강장관이 부임해 그 아래 기수는 대부분 내보내지 않겠는가 하고 불안해 하던데….



그건 장관 권한 밖의 일이다. 나가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워낙 서열이 완고한 조직이라 갑자기 아래 기수가 장관으로 오니까 심리적으로 과민 반응하는 것을 충분히 공감은 한다. 그러나 장관은 검찰 내부 구성원이 아니라 밖에서 정책을 이끌고 지원하는 정무직이므로 불안해 할 게 없다. 대통령이 일부러 검찰 조직의 기수를 내리기 위해 나를 기용한 게 아니고 여러 후보들이 경합하는 가운데 검찰 출신이 아닌 법률가를 찾다 보니까 차선책으로 내 기수까지 내려오게 되었다고 본다.



준비해둔 검찰 개혁 방안이 있는가?



개혁의 출발점은 검찰의 정치 개입 차단이다. 사법시험 기수에서 자유롭고 검사 출신이 아닌 나에게 장관 직을 맡긴 것도 그 과제를 분명하게 알리겠다는 의미였다. 나는 수사와 기소권을 가진 검사들에게 수사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맡기고, 법무부는 인사권으로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출 생각이다. 법무부장관의 인사권이 검찰의 또 다른 정치 개입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심의기구로 만들 계획이다. 여기에는 검사들도 참여시키고, 외부 민간 전문가들도 포함해 장관의 인사권에 대한 견제 장치가 되도록 하겠다.



개혁을 둘러싸고 검찰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큰 틀에서 개혁 프로그램이 검찰 내부와 대통령 비서실에서 이미 나와 있는 상태라서 내가 취임 초기에 할 일은 기본 방향을 정하고 단계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부터 수행하는 것이다. 장관 직속 기구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자 한다. 검사가 참여해 법무부와 검찰 조직을 개혁하는 비상설 협의기구이다. 나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검찰과 법무부가 같이 개혁 과정에 참여해 대화를 나누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 가자는 것이다. 개혁은 하되 천천히 단계적으로 해갈 것이다.



역대 법무부장관과 검찰은 특검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강장관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한시적인 특검제 상설화에 대해서는 검찰에서도 동의하는 방향이다. 나도 특검제가 종래 정치적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검찰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가시적 장치였기 때문에 상설화에 동의한다. 얼마나 활성화될 것인가가 문제인데, 가능하면 상설화는 하되 특검이 가동하지 않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는 점에서 검찰이 하루빨리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큰 정치적 비리 의혹 사건이 없어지면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내 재임 기간에 특검제는 받아들이되 검사들이 어떤 의혹도 받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나도 적극 돕겠다. 또 평검사회의에서 나온 의견 가운데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도 특검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제안에 동의한다. 법관으로 따지면 회피제도와 비슷한 것으로, 검찰이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건은 적극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사법 개혁 중추가 `‘강금실 법무부장관-박범계 청와대 민정보좌관’ 투톱 체제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부르는 것도 일리는 있다. 민정비서실과 법무부는 서로 도와주는 관계이다. 민정에서는 사법 제도 개혁의 큰 그림을 그리고, 법무부에서는 검찰 개혁을 비롯해 대국민 법률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많은 실천을 해야 한다. 박보좌관과는 판사 시절부터 선후배 사이로 잘 알고 지내는데, 사법 개혁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고 성품이 시원해 잘 통한다.



보수적인 법무부 업무를 맡게 되어 제대로 개혁을 수행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장은 검찰 개혁이 가장 큰 이슈이지만 그 외에도 법무 행정의 전문화와 문민화도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고 한다. 인권·여성·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출입국 관리, 이주노동자 정책, 교정 업무 등에서 국민과 가까워지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검사들이 소신껏 수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예우와 수사비 지원 등도 대폭 현실화하고자 한다. 이런 포부와 방향에 대해 합의하고 같이 노력한다면 국민에게 더욱 자랑스럽고 당당한 검찰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군림하는 장관이 아니라 같이 일하고 헌신하는 장관이 되고자 한다.



평검사들이 최근 검찰 내부 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



평검사 모임에서 나온 주장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기본 방향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고 보는 부분이 많다. 의견들이 대개 창의적이라서 ‘아, 이들과 같이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도 소장 판사 시절에 평판사회의를 만들자고 앞장선 적이 있다.





공인으로서 도덕성 검증은 당연하지만 뒤에 숨어서 투서를 던지거나 음해하는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1984년에 결혼해서 16년 동안 살다가 2000년 8월에 이혼했다. 사랑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도 마음 아픈데 내 공직 취임 과정에 그 문제가 위장 이혼이라는 음해로 퍼지는 것을 보고 전 남편의 명예와 프라이버시를 해친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이혼 배경은 무엇이었는가?



1995년에 남편의 사업(출판사)이 부도 났는데 나는 1996년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남편의 부채를 내가 떠안고 지원하면서, 이후 새로 생기는 부채도 내가 전부 끌어안았다. 두 사람 다 빚더미에 올라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다. 나에게 책임이 없는 남편의 빚을 계속 끌어안고 허덕이며 극복해 가는 상황이 어려웠고, 남편 역시 재기하는 데 힘들었다. 1999년에야 서로 대화를 통해 각자가 자유롭게 재기하는 게 현명하다는 합의를 본 끝에 각자 가진 부채를 짊어지고 헤어졌다. 부끄럽지만 아직도 부채가 좀 있고, 재산은 내 앞으로 된 제주도 선산 땅 천평이 전부이다.



전통 춤을 좋아해서 ‘춤추는 변호사’로 알려졌는데….



대학 다닐 때부터 전통 춤에 관심을 가지고 동아리 활동으로 탈춤반에 들었다. 그중에서도 승무가 매우 매력 있었다. 너무 아름답고, 누군가를 포용하는 듯한 매력이 있다고 느끼며 감상하다가 실제 배우기 시작한 것은 5년 전부터였다. 운동을 하지 않는 편이어서 그나마 춤이라도 조금 추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승무가 명상의 세계와도 비슷해서 정신 건강에도 좋다. 요즘도 틈틈이 집에서 혼자 춤을 춘다.



밀린 검찰 인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법무부와 검찰은 다르게 갈 것이다. 법무부는 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문민화 기조 아래서 당장 능력 위주로 인사를 하려고 한다. 검찰은 기수와 경력을 존중하는 인사가 필요하다. 3월 안에 당장 검사장급 이상 인사를 해야 하는데 직제에 관한 대통령령 개정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걱정이다. 가능하면 첫 인사부터 심의기구화된 인사위원회를 통해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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