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아시아식 해법’에 달렸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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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권 2기에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은 급속하게 가까워진 북·중 관계와 일본·러시아의 이해 등이 맞물려 아시아 국가로 옮겨올 가능성이 크다.
고이즈미 준이치 일본 총리가 미국 대선에서 부시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한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는 일본의 여론 따위는 무시하고 항상 부시 행정부를 편들어 왔으니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케리 후보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부시 지지를 ‘커밍아웃’했다는 말도 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미국 역대 정권 중 부시 정권만큼 중국을 위해 ‘봉사’한 정권이 또 있을까. 중국은 북핵 문제와 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의 ‘이상한 정책’ 덕분에, 미국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케리 후보가 당선하지 않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일 위원장은?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리처드 부시 부르킹스 연구소 연구원은 김위원장이 케리 후보가 당선되기를 기다렸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에 찬물을 끼얹었다. 부시의 재선을 가장 반긴 나라에 속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논거는 단순 명쾌하다. 부시 정권은 북핵 해결에서 중국의 협조를 중시하고, 중국은 북한의 우방 아니냐는 것이다.

이토록 간단한 3단 논법을 왜 많은 사람들이 외면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의 견해 역시 보완될 필요가 있다. 즉 지난 9월을 전후해 북한이 지지 후보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9월 이전에는 케리 후보를 지지하다가 그 이후 부시 지지로 돌아섰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로 그 9월에 후진타오 주석이 명실상부한 중국의 1인자로 등극하면서 ‘대미 협조 대북 압박’ 노선을 버리고 북한 끌어안기로 표변한 것이다. 따라서 리처드 부시 연구원의 3단 논법은 9월 이후부터 설득력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시 2기 정권은 북·중 관계 변화가 몰고 온 동북아의 지정학적 국가 관계 변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기 정권 때처럼 북핵 문제와 한반도 운명을 미국 혼자 키잡이해 끌고 가기는 이제 힘겨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이보다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지역 강국들이 합종연횡해 전혀 다른 해법의 구도를 만들 수도 있다.

부시 2기 정권이 1기 때의 매너리즘을 반복할 경우 미국을 대신해 아시아 국가들이 북핵 문제 해결의 전면에 등장하는 이른바 ‘아시아식 해법’이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이란 핵 문제에서 보듯 부시 정권은 제3 세계 국가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대해 ‘악의 축’ 어쩌고 하며 큰소리만 쳐왔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정권 교체(regime chang)’라는 엉뚱한 목표를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이란 핵 협상’이 타산지석

이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실기하는 동안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연합 국가들은 재빠르게 이란과의 협상에 착수해 지난 11월7일 잠정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보리 회부 여부를 논의할 11월25일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 회의에 앞서, 양측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할 경우 유럽연합측이 이란에 핵 기술을 제공하고 무역을 늘리며 안전을 보장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아시아식 해법이란 바로 이란 핵 문제에서 유럽연합이 했던 역할을 아시아 지역 강국들이 맡는 것을 말한다. 물론 아시아의 경우 주요국인 중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갈등하고, 여기에 패권 경쟁까지 겹쳐 실제 협력이 가능할까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중 관계 회복을 계기로 지역 국가들의 북한 접근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타이완 문제라는 또 하나의 지역 현안이 가시화할 경우 북핵 문제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 차이점은 그대로 놔두고 공통의 이해관계에 합의하는 것)’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핵 문제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것을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안전 보장과 경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미국을 제외한 지역 국가들의 공통 견해였다. 어차피 미국은 단 한푼도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돈이 나올 구멍은 중국(대북 지원), 일본(수교 배상금), 러시아(에너지 협력), 한국(남북 경협) 등이다. 실제로 북한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이 모든 부담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6자 회담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중국과 한국이 알선 중재 노력을 해왔으나 때로는 북한에 의해, 그리고 대부분은 미국에 의해 폐기당했을 뿐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선 핵포기 선언과 북한이 주장하는 동시행동 원칙은 서로 불상용의 관계라 할 것이다.

그러나 발상을 바꾸면 간단한 문제이다. 즉 협상을 두 단계로 나누어서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1단계는 그동안 유럽연합이 이란과 해왔듯이 중국이나 일본 등 거금을 낼 준비가 되어 있는 어느 한 나라가, 아니면 여기에 한국·러시아까지 합쳐 공동으로 북한과 먼저 협상한다. 북한의 핵 포기와 아시아 국가의 경제 지원 및 안전 보장을 맞바꾸는 빅딜을 전개하는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핵을 포기한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1단계 협상이 성공하면 다시 2단계로 이들 국가들이 미국과 협상한다.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한 셈이니 미국은 약속대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미국 역시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북한의 핵 포기가 이루어졌으므로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1, 2 단계 협상이 이루어지면 마지막으로 북·미 양국이 다른 국가들의 입회 하에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면 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6자 회담이라는 다자 틀로 끌고 갈 당시 미국은 이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국가 모두의 공통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아시아 국가들 역시 북핵 문제의 방관자가 아닌 해결자로서 적극 움직일 권한과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그동안 미국 눈치만 보며 스스로 ‘알선 중재역’에 자족하는 소극적 행태를 보여 왔다. 그러나 부시 정권 1기에서 느꼈던 좌절감과 2005년 동북아에서 전개될 정세가 맞물릴 경우 더 이상 꽁무니만 빼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내년 상반기 이후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방북이 이미 예정되어 있고, 이에 따라 고이즈미 총리가 은근히 3차 방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으며,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극동 방문과 이를 통한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 그리고 여기에 남북 정상 간의 접촉 움직임 등 ‘아시아식 해법’을 시도할 만한 계기들은 이미 충분히 성숙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부시 정권 2기 북핵 문제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과 예상 진로 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2기 부시 정권의 첫 관문은 단연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문제이다. 현재 부시 정권은 내년 1월 말의 이라크 총선을 겨냥해 팔루자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전에 돌입했다. 이 소탕전 이후 이라크 정국을 안정시킨 후 1월 말 총선으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나면, 3, 4월께 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키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해 부시의 발목을 계속 붙잡아 둘 수도 있다. 당장은 팔루자 소탕전의 성공 여부가 관건이다. 여기에 최근 아라파트 독살설을 둘러싸고 민심이 흉흉해진 팔레스타인 정세 역시 변수 중 하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건은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 등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대규모 테러 가능성이다. 미국 대선 직전 빈 라덴이 이미 공언한 대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날 경우 부시는 중동에 발이 묶일 뿐 아니라 더욱 몰입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부시와의 ‘적대적 공존’을 통해 세력을 키워가고자 하는 이슬람 과격파의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이처럼 중동 문제의 엇갈리는 전망에 따라 북핵 문제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부시 정권이 중동에서 발을 빼지 못할 경우, 북핵 문제 역시 더 방치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협상 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중동에서 쉽게 빠져나올 경우 그 다음 타깃인 북핵과 이란 핵에 전력 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강온 배합 전술로 인한 복잡한 국면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 타이완 문제 풀려면 북핵 먼저 해결해야

북핵 문제 자체에서는 4차 6자 회담이 일단 관건이다. 그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미국 대선 직후인 11월 중 회담을 개최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왔으나, 부시 정권 2기 외교안보팀의 집무가 시작되는 내년 초 이후로 미루어지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어찌되었든 4차 6자 회담에서 해결책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것도 대체적인 견해이다. 즉 강한 미국을 열망하는 미국민의 보수 성향과 얕잡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북한의 빡빡한 태도가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 할 것이고, 경제 제재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대체로 내년 봄 한반도 위기 가능성을 점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의 북한 전문가는 “한반도 위기는 늘 봄에 찾아왔다”라며 ‘3, 4월 위기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진짜 문제이다. 위기 국면이 왔을 때 미국이 과연 북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상정할 수는 있으나 중국이나 러시아·한국 등이 어떻게 나올지 불분명하다. 설령 안보리 결의를 통과한다 해도 경제 제재가 현실화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북한이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는 마당에 한국이나 일본이 동참하기도 쉽지 않고, 더구나 지난 9월 이후 북·중 혈맹 관계를 회복해온 중국이 이에 동참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또 다른 방안으로 북한에 대한 정밀 폭격 가능성이다. 최근의 추세는 지난해 4월 정밀폭격론이 거론될 때보다도 고개를 가로젓는 전문가가 훨씬 늘었다는 점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 대학 교수는 “지난 1994년에는 영변의 핵시설만 공격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플루토늄이 이미 추출되어 어디 보관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국측의 한 인사는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9·11 때문이고, 이라크 공격은 사담 후세인이 아버지 부시를 과거에 암살하려 했기 때문에 아들로서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북한이나 이란을 공격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북한의 ‘제2격 능력’이 과연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의 대북 정보 소식통은 “미국은 유사시 김정일 위원장의 거처와 잠수함 기지, 핵 관련 시설 등 여섯 군데를 전술 핵으로 공격한다는 계획을 가지고는 있다. 문제는 제1격에서 김위원장을 제거하지 못할 경우 미국도 치명적 보복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결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제2격 계획은 김정일 위원장만이 아는 극비 사항이다. 미국 본토에 대한 핵 미사일 공격과 일본에 대한 화생방 미사일 공격 등이 어렴풋이 짐작될 뿐 그 이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미국도 커다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과의 대치 국면을 유지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려고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1백10억 달러어치의 첨단 무기를 통한 주한미군 재배치와 재무장 사업, 일본 자위대 재무장과 미사일 방어(MD) 체제 편입, 타이완에 대한 1백80억 달러어치의 무기 판매 등을 통해 동북아 국가들을 중국에 대한 군사 포위망 대열에 합류시키는 한편 무기 장사를 통해 신냉전의 단물을 뽑으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이같은 ‘본심’이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에 이미 대부분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가 올해 말 이후 타이완 문제가 또 하나의 변수로 떠오르게 되면 미국의 시간 끌기 작전 역시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타이완 문제는 올해 12월의 입법원 선거를 시작으로 천수이볜 총통이 독립헌법 제정 시기로 밝힌 2006년까지 지속적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중국의 인내심에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중국은 2005년에 천 총통의 독립 의지를 꺾지 못하면 2006년의 대회전에 말려들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천 총통의 계산대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라는 부담 때문에 운신 폭이 크게 제한될 수도 있다.

결국 중국으로서는 타이완 문제에 몰두하기 위해서라도 북핵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선가 그동안의 알선 중재역에서 벗어나 실질적 해결자로 팔을 걷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중국과 정반대 편에서 역시 타이완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타이완 해협이 중국 해군에게 봉쇄될 경우 일본은 중동산 석유 수송이라는 생명선에 위협을 받게 된다. 따라서 미국·타이완과 함께 중국에 맞서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상존하고 있을 경우 일본은 머리는 타이완에 가 있고 몸뚱아리는 북한의 노동 미사일에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시 말해 현재 중국과 일본은 타이완 문제에서는 적으로서 대립하지만 북핵 문제 조기 해결에는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 있는 ‘구동존이’ 형국인 것이다. 결국 타이완과 한반도라는 두 전선으로 중국을 압박하고자 하는 미국의 시도는 중국에 이어 일본으로부터도 도전받을 가능성이 있다.

논의의 수준을 좀더 구체화해 보자. 이미 중국은 미국이 대선에 몰두해 있는 동안 2005년 이후의 상황에 대한 만반의 준비에 착수했다. 즉 지난 9월 이후 후진타오 주석은 북한 러시아 일본을 상대로 차례차례 포석을 두어왔다. 이미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리창춘 방북과 김영남 방중을 통해 북핵을 둘러싼 ‘빅딜’의 기본 틀이 마련된 상황이다. 즉 9월의 리창춘 방북에서는 북한측으로부터, 미국 대선 이후 핵문제에서 ‘또 한번 대담한 양보’를 할 수 있다는 언질을 받아 두었고(<시사저널> 779·780호 합병호), 10월의 김영남 방중에서는 원자바오 총리가 ‘대담한 경제 지원’ 얘기로 이에 화답했다(<시사저널> 784호). 따라서 내년 상반기 후진타오 주석이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주목된다.

중국의 두 번째 포석은 바로 중·러 정상회담이다. 지난 10월 푸틴 대통령의 방중과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가 핵심 이슈로 다루어질 것으로 알려져 워싱턴이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양국 정상의 1시간 40여 분에 걸친 밀담은 완전 비밀에 부쳐졌다. 분명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극동 방문 카드가 아직 살아 있고,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 역시 내년의 동북아 판도 변화에서 숨겨진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세 번째 포석은, 바로 일본에 대해서이다. 베이징 6자 회담의 주역이었던 왕이 외교부 부부장이 지난 9월 슬그머니 주일대사로 부임했다. 왕이의 부임을 전후해 베이징에서는 ‘중국 외교의 기조가 타이완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재편되고 있는 중’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따라 한국·싱가포르·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북핵 전문가인 왕이가 바로 이 시기에 대일 관계 개선의 책무를 맡았다는 점은 타이완과 한반도라는 두 전선을 놓고 중국·일본 간에 구동존이를 모색하는 것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과연 언제 어떤 방식으로 3차 방북을 단행할 것인가 하는 점 역시 단연 관심의 초점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미 임기 내 북·일 수교를 단행하고 싶다는 열망을 표시한 바 있다. 일본측 전문가들은 그가 현재 심혈을 기울이는 우체국 민영화 사업 등 국내 개혁이 벽에 부딪힐 경우, 그리고 시기적으로는 레임 덕에 빠지기 시작하는 내년 6월 이전을 주목하는 견해들이 있다.

한반도 긴장 상황 계속되면 미국도 실익 없어

일본 외부적으로는 현재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행을 재촉하는 변수가 여러 개로 늘어났다. 하나가 이미 살펴본 북·중 관계 정상화이고 또 하나가 김위원장의 러시아 극동 방문 가능성이다. 언제쯤일지는 알 수 없으나 러시아의 남하는 일본의 21세기 생존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이기 때문에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을 들 수 있다.

미국도 북핵 문제 해결을 미루고 마냥 시간만 끌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우선 일본에 대한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 그리고 1백10억 달러에 이르는 주한미군 첨단무기화 사업, 타이완에 대한 1백80억 달러어치 무기 판매 등 군산복합체의 이권 사업 향방이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미국 군산복합체들 사이에서 한국의 경우 앞으로 남북관계 진전과 평화운동 세력의 저항 때문에 더 이상 무기 시장으로 기능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는 견해가 늘고 있다고 한다. 반면 동북아의 유망한 무기 시장으로 단연 타이완이 손꼽히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남북관계 진전으로 남북간 평화 분위기가 정착하고 여기에 북핵 빅딜을 향한 중국의 움직임이 가시화할 경우 미국 역시 한반도에서 더 이상 긴장 상황을 끌고 갈 명분과 실익을 상실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이 직접 북한과 협상에 나설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허용하고 북·일 수교 카드를 북핵 문제 해결의 고리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반대로 미국이 전혀 요지부동이고 한반도가 전쟁 위기로 치달아 일본이 북한 미사일의 공격 위협에 직면할 경우, 고이즈미 총리가 국면 돌파를 위한 방북을 결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시 2기 정권의 한반도는 지난 1기 정권을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이 그동안의 경험을 거울 삼아 어떤 방식의 해법을 강구할 것인가에 의해 운명이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북 정상회담 또는 최소한 남북 정상이 평화의 메시지라도 교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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