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는 이념 투쟁에서 패했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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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리더·좌파 활동가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김정강씨 인터뷰
김정강씨(63)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1960년대 학생운동의 리더였다. 서울대 정치학과 1학년 2학기 때 <공산당 선언 designtimesp=12867>을 번역해 학내에 뿌리기도 했다. 1965년 6·3 시위 배후 조종과 ‘불꽃회’ 사건으로 구속된 것을 비롯해 세 번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다. 위장 취업해 14년간 노동운동도 했다.

그러다가 1980년 이후 ‘전향’했다. “북한 김일성 체제에 실망했고, 마르크스주의보다 자유주의 사상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후 정치권에 뛰어들어 김영삼씨 특별보좌역과 통일민주당 지구당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월간 조선 designtimesp=12870> 등에 글을 기고한다. 그는 태권도 사범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 5년 전 태권도 수련 도중 눈을 다쳤다. 선글라스를 낀 것도 그 때문이다. 8월30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우익 단체의 시위 현장에 가보면 주최측은 청년들인데 참가자는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우리 사회에서 좌파 이데올로기가 우위를 확보했고 우파는 패배했다는 증거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우익 매체들은 인터넷 때문에 졌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서 조·중·동보다 더 우세한 세력이 어디 있나. 문제는 젊은이들이 <조선일보 designtimesp=12875>에서는 정보만 얻고 <오마이뉴스 designtimesp=12876> 같은 데서 가치관을 흡수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파가 논리와 설득력에서 뒤졌다는 말이다. 우파 지도자들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성해야 한다.

우익 단체의 행동이 과격해지고 있는데.
좌파가 승리한 것은 한총련의 과격 투쟁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물밑에서 사회 저변의 이데올로기를 바꿔냈기 때문이다. 우파 청년들의 최근 시위를 보면 과거의 극단적인 모습만 답습할 뿐 대중적인 설득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태권도 사범 교육장에 가서 놀랐다. 대개 우익 성향인 그들이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다. 여중생 사건을 거론하며 미군을 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이렇게 현재 일반 국민의 머리 속은 분열적이다. 좌·우파는 이념 시장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은 양쪽을 비교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쪽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현재 우파의 주장과 논리로는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현재 국내 우파 세력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나?
빨리 이성적인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지금의 좌파는 해방 전후의 좌파와 다르다. 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이론적으로 성숙해졌다. 하지만 우파는 변변한 이론적 학습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 완전히 패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이론적 무장이 절실하다.

한국의 우파는 민족주의를 포기하면서 대중적인 토대를 상실했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 우파는 민족주의 과잉 상태에 빠져 있다. 북한과 남한 내 좌파 세력의 협공으로부터 자유주의를 지키려면 국제 협력이 필수이다. 한·미·일이 공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도 일본과 빨리 악수해야 한다. 그런데 우파는 자신들이 더 반일 세력인 양 처신한다. 이는 과거 친일파였다는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한 허영심일 뿐이다. 한국 우파의 또 다른 약점은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만 의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무책임하게 반일 민족주의에 편승하는 거다. 나는 우파가 과거의 친일 전력을 깨끗이 사과하고, 광복 이후 자유주의 수호에 앞장선 것에서 정통성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진실은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솔직해져야 합리적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좌파를 이길 토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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