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떨어뜨리는 대도시 과밀
  • 이주영 (포스코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
  • 승인 1996.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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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과밀이 ‘삶의 질’ 해치는 주범, 성장제일주의도 문제… 국토 균형 발전으로 풀어야
 
흔히 1인당 국민소득 만달러 선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양(量)에서 질(質)을 추구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분수령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런 경계 지점에서 포스코경영연구소와 〈시사저널〉이 ‘한국인의 삶의 질’ 측정을 시도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들은 자기 삶의 질이 비교적 낮다고 평가했다. 64점. ‘수우미양가’로 따지면, 양에 해당하는 성적표다. 95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국가 경쟁력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인 스스로 평가한 삶의 질 수준(48개국 가운데 28위)과도 엇비슷하다.

우리 ‘삶의 질’ 동남아보다 뒤진다

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삶의 질 수준은 우리가 한수 아래로 치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도 못했다. 두 조사 결과는, 한국인의 삶의 질이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게 낮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30여 년간 계속되어온 양 일변도 전략에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이해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삶의 질이 특히 낮은 분야는 환경·교통·노인 복지·교육으로 나타났다.

한 국가의 환경 오염 정도와 교통 체증 문제는 국가 경쟁력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공교육의 열악함 역시 이것과 직결된다. 이미 국민총생산(GNP)의 6%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사교육비로 쏟아넣는 실정이다. 2000년이면 한국도 고령화 사회(노동인구비율 6%)가 된다는 점에서 이 부담 또한 한국 사회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다.

한국인들은 이밖에도 치안 문제, 공공 시설물의 낮은 안전도, 주택난, 높은 산업 재해율, 근린 생활 시설과 문화 시설 빈곤 등과 고통스럽게 맞부닥치고 있다.

한국인의 삶의 질이 열악함을 면치 못하는 것에는 두 가지 공통 원인이 발견된다. 그 첫째 원인으로 성장제일주의를 들 수 있다. 한국은 지난 30여 년간 고도 성장 전략을 택해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궈냄으로써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조선(세계 2위), 반도체(3위), 철강(5위) 등 세계 시장에서 수위를 다투는 간판 산업을 키워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성장과 개발 논리라는 ‘빛’은 필연적으로 삶의 질 저하라는 ‘그늘’을 만들었다. 단기간에 고도 성장을 한 만큼 한국은 교통사고 사상자 비율, 과로사 비율, 노동 시간, 산업재해율 등에서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다. 결국 여가 시간을 최소화하고, 근검 절약하며, 조악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일했기 때문에 초단기간에 높은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삶의 질을 낮추는 원인을 제공한 또 한 가지 원인으로 지역간 불균형 전략이 초래한 지나친 수도권 집중 현상을 들 수 있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많이 몰려 살아야 하는 현실이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를 낳았고, 이것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 것이다.

우선 도시 집중화는 교통 체증을 일으킨다. 서울시 산하 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의 연간 혼잡 비용은 1조5천9백억원에 달한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은 교통 체증의 대가로 매달 월평균 급여의 5.8%에 해당하는 6만2천원을 길에 버리고 있다. 게다가 정체 상태에서 배출되는 각종 대기 오염 물질로 서울의 하늘은 이미 뿌옇다. 올해 들어 처음 발효된 오존주의보는 심각한 공해 상황을 경고하는 작은 예일 뿐이다.

또 한정된 지역 내에서 최대한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려다 보니 주거 수준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고, 지친 심신을 달래줄 녹지 공간은 갈수록 줄어든다. ‘좁은 지역·많은 사람’이 낳는 문제는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생활 오수와 쓰레기 문제까지 일으켜 삶의 질을 극도로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서울의 1인당 도시 면적은 57㎡에 불과하다. 뮌헨(2백39㎡), 싱가포르(2백34㎡), 뉴욕(1백9㎡)에 비해 한 사람이 차지하는 땅이 매우 좁다. 주거의 질이 형편없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도쿄(76㎡) 수준에도 못미친다. 정부는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5개 신도시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이것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신도시의 자족 기반 시설을 예정대로 확보하지 못해 수도권에 또 다른 베드타운을 보탠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린 곳의 주민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대도시로 떠나가버린 바람에 또 다른 지역 사람들의 생활마저도 피폐해지고 있다. 고령자만 남은 농촌 지역은 마을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중소 도시, 읍·면 소재지에 사는 사람들 역시 이렇다 할 근린 생활 시설이나 문화 시설 하나 없이 질 낮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도시 부럽지 않은 유럽의 지방 생활


이러한 상황이 더 방치된다면 우리는 사회 통합의 단서마저 잃게 될 것이며 결국 국가 전체적으로 비효율과 사회악을 양산하는 길로 치달을 것이다. 이것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삶의 질 저하를 더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서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의식과 사회 기반 시설이라는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60∼70년대에 한국은 절대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새마을운동이라는 의식 개혁 운동을 벌여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은 현재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갖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비인간화한 경쟁 양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생활 태도, 공공의 이익에 무관심한 낮은 시민 정신 등이 우리 스스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저급한 의식 수준은 공동체가 해체되는 위기를 부를 조짐까지 보이며, 가뜩이나 미흡한 사회 기반 시설과 뒤엉켜 삶의 질을 더욱 조악하게 만들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려면 그 질을 낮춘 원인의 근본을 제거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성장제일주의를 떨쳐 버리고 만달러 시대에 걸맞는 시민 의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또 하나의 해답은 탈중심화이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대부분의 문제가 과밀 환경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간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요체로 보인다.

탈중심화의 성공적 사례는 유럽에서 발견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도로망이 잘 짜여 있고 지방 하부 단위까지 사회 기반 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 굳이 대도시로 이주할 유인이 없다. 오히려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서 안분 자족하고 문화 생활을 즐기며 산다.

유럽의 소국들이 지정학적으로 한국보다 특별히 나은 것은 없어 보인다. 한국의 경우 이들 나라보다 인구 밀도가 높아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한층 더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 절실히 요청된다.

지방 자치 시대는 지역간 균형 발전에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 우선 지방마다 지역 특성을 염두에 둔 자립 경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방 대도시를 지역 거점화하여 개발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간 교통망을 확충하고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전국적인 정보망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또 다양한 사회 문화 기반 시설을 지방자치단체와 중앙 정부간 상호 연계된 지원 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탈중심 구조가 뿌리를 내릴 때 국가 전체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뿐더러,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는 유인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95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이 ‘삶의 질의 세계화’를 선언한 이후 국민복지기획단을 발족하는 등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기본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부는 삶의 질 향상에 가장 책임을 많이 져야 하는 주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모든 문제를 떠맡는 북유럽의 복지 모형이 우리에게 반드시 유용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미 그들은 ‘복지병’을 앓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구상한 성장과 복지의 조화라는 ‘한국형’복지는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지금까지 성장에만 집착한 결과가 낳은 폐해도 만만치 않았지만, 지나친 복지 추구가 야기할 병리 현상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삶의 질이라는 유기체를 키워내는 데는 속성 재배도 왕도도 없다. 일본이 좋은 예이다. 일본은 국부민빈(國富民貧)의 대표적 나라이다. 이 나라를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안팎에서 불만과 조롱이 쌓이자 일본 정부는 92년 ‘생활대국 5개년 계획’을 짜고 경제력과 삶의 질 사이의 괴리를 줄이려고 고군 분투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지지부진하다고 평가된다. 일본의 사례는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는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결국 한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책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되, 삶의 질이 경제 성장처럼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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