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이 전국민 위협하고 있다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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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원인 1위, 스트레스·고혈압·나쁜 식생활 등이 주원인…발병 6시간내 병원 가야
‘아홉 목숨을 가진 고양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야세르 아라파트 대통령의 별명이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테러를 시도했지만 매번 귀신처럼 살아났다. 그가 탄 비행기가 추락해 기체가 세 동강이 났고 조종사를 포함해 3명이 죽었으나 그는 타박상만 입고 살아나기도 했다.

그런 그를 쓰러뜨린 것은 뇌졸중이었다. 그는 지난해 5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가진 합동 기자회견 직후 뇌혈관이 터져 졸도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해 활동하는 데 큰 지장은 없으나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씨도 지난해 4월 뉴욕 소호 거리에 있는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 불수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한라그룹 정인영 명예회장이 89년에 뇌졸중으로 무너져 좌반신이 마비되었다. 정회장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입원 치료를 받고 중국에 건너가 한방을 써보았으나 끝내 휠체어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에는 정치인 가운데 건강하다고 소문난 신한국당 최형우 고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한국, 뇌졸중 발병률 세계 최고 수준

흔히 ‘중풍’이라고 부르는 뇌졸중이 유명 인사에게만 찾아오는 병은 물론 아니다. 지난 3월7일 통계청이 발표한 ‘95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사망 원인 1위가 뇌졸중이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한국인은 뇌졸중으로 가장 많이 죽는다. 95년에 뇌졸중으로 죽은 사람은 3만6천61명이나 되었다. 또 뇌졸중·심장 질환·고혈압 질환을 포함하는 순환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26.3%)가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21.3%)보다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세 가지 순환기 계통 질환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고혈압 질환은 동맥을 비롯해 혈관을 굳게 하고 피가 흐르는 통로를 좁게 해 뇌졸중이나 심장 질환의 원인이 된다. 또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도 뇌졸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국내 뇌졸중 발병 환자의 평균 연령은 59.3세이다. 대략 47세에서 72세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30대 사망 요인 가운데 다섯번째가 뇌졸중이다. 특히 흡연율이 높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30대 남성이 같은 연배 여성보다 뇌졸중으로 죽는 경우가 훨씬 많다. 40대부터는 뇌졸중이 단연 사망 원인 1위로 올라선다. 세계에서 40대 돌연사가 가장 많은 나라로 한국이 꼽힌다. 그 주범이 바로 뇌졸중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의과대학 루스 보니타 교수는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대양주 신경학회에서 ‘한국은 아시아·대양주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뇌졸중 발병률을 보이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또 일부 동유럽 국가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뇌졸중 발병률을 보이고 있다.
스트레스→심장 질환 →뇌졸중

한국인은 왜 유달리 뇌졸중에 많이 걸릴까. 김진수 교수(연세대 의대·신경과)는, 한국인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데다 흡연이나 육류 섭취가 늘어 뇌졸중에 많이 걸린다고 말한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뇌졸중도 잘못된 생활 습관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한다. 스트레스가 뇌졸중을 일으키는 과정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스트레스가 심장에 부담을 주어 심장 질환이 생기고, 심장 질환이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흡연과 육류 위주의 식생활이 뇌졸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인의 흡연율은 세계 여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흡연은 혈관 벽을 손상시키고 혈관을 수축시켜 혈액이 흐를 공간을 줄인다. 혈관이 좁아지면 고혈압과 뇌졸중을 비롯해 각종 혈관 질환을 일으킨다. 또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부터 한국인은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은 육류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콜레스테롤과 지방은 혈관 벽에 달라붙어 혈액의 흐름을 방해해 뇌졸중을 비롯해 각종 혈관 질환의 원인이 된다.

국내에서 뇌출혈 환자가 줄고 뇌경색 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아도 육류 과다 섭취가 뇌졸중 발병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뇌졸중은 보통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 뇌혈관이 터져서 생기는 뇌출혈은 보통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많이 발생한다. 반면 뇌혈관이 핏덩이(혈전)나 지방에 막혀 일어나는 뇌경색은 선진국에서 많이 나타난다. 미국 뇌졸중 환자 가운데 80%가 뇌경색 환자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뇌졸중의 60%가 뇌경색이다. 강남삼성의료원 신경과 이광오 과장은 “식생활이 개선될수록 뇌출혈 환자는 줄고 뇌경색 환자가 늘어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민간 요법으로 응급 조처하면 위험

뇌졸중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노재규 과장은, 임상 실험 단계에 있는 치료제는 있지만 실용화한 것은 아직 없다고 말한다. 뇌졸중이 일어나면 막힌 뇌혈관을 재빨리 유로키나제 같은 혈전용해제로 뚫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혈전용해제는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핏덩이)만 녹이는 것이 아니라 혈관까지 녹여버려 뇌출혈을 일으키는 일이 잦다. 뇌출혈이 일어나면 환자는 즉사하고 만다. 따라서 혈전용해제를 사용하기가 만만치 않다. 또 뇌졸중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회복하기 힘들다. 회복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장애로 고생한다. 따라서 뇌졸중은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뇌졸중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인 고혈압을 조심해야 한다. 고혈압을 예방하는 데는 식생활과 생활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일단 고혈압이 생기면 철저하게 혈압을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의사의 검진과 처방을 받아야 한다. 미국에서 50년대부터 눈에 띄게 뇌졸중 발병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도 미국인들이 혈압을 꾸준히 검진하고 의사 처방에 따라 혈액응고방지제를 계속 복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뇌졸중 발병률은 10년 전보다 50%나 떨어졌다.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도 뇌졸중 발병률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의 뇌졸중 발병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루스 보니타 교수는 “한국은 이제 겨우 일본의 70년대 후반 수준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만큼 일본 국민이 고혈압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뇌졸중으로 죽는 한국인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가는 이유도 있지만, 뇌졸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독일에서 20년 동안 의사로 근무한 김진수 교수는 “독일인과 비교해 한국인은 도대체 의사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고혈압 환자에게 혈액 응고를 막는 약을 처방해도 얼마간 먹다가 투약을 중단한다”라고 말했다. 뇌졸중은 대부분 혈압이 높아서 발생하기 때문에 혈압만 잘 통제하면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뇌졸중은 증세가 나타나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급성 뇌졸중 환자는 증세가 발생한 뒤 늦어도 6시간 안에 종합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제때 병원을 찾는 환자가 드물다. 연세대 의과대학 뇌연구소가 지난해 9월 아시아·태평양 신경학회에 제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국내 뇌졸중 환자 가운데 23.1%만 6시간 이내에 종합병원을 찾았다. 나머지는 치료 기회를 잃고 사망하거나 회복되어도 영구 장애로 죽을 때까지 고생한다. 뇌경색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74시간이나 되었다. 뇌졸중은 급성을 제외하고는 가벼운 초기 증상이 나타난다. 뇌졸중 환자의 20% 가량은 뇌졸중이 발생하기 전에 뚜렷하게 신경 장애를 겪는다. 그런데 이를 가볍게 여겨 말을 못한다든지 신체 일부가 마비되는 영구 장애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방심하다 때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환자 상태가 심각한 상황에서 환자 자신이나 친지들이 취하는 응급 조처도 뇌졸중 치료를 어렵게 한다. 응급 조처를 하느라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만큼 지체되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대 뇌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 가운데 42.3%가 집에서 응급 조처를 한다고 꾸물대다 병원에 늦게 도착한다고 한다. 응급 조처는 대부분 민간 요법이다. 우황청심환을 환자에게 먹이거나 바늘로 손가락을 따고 마비 부위에 찜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요법들은 뇌졸중 증세를 완화하는 데 거의 효과가 없고 아까운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또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우황청심환을 먹여 약이 식도가 아니라 기관지를 통해 폐에 들어가 폐렴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정부는 암보다 뇌졸중에 더 관심 가져라”

같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급성 뇌졸중 환자가 병원에 갈 때 자가용(43.3%)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 택시도 18%나 되었다. 결국 과반수가 훨씬 넘는 뇌졸중 환자가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해 병원에 가는 셈이다. 반면 가장 빠르게 병원까지 환자를 옮길 수 있는 119나 129를 이용하는 사람은 겨우 20%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서 일 교수(연세대 의대·예방의학교실)는,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다 교통 체증에 걸려 치료 기회를 놓치는 일이 잦다고 지적했다. 뇌졸중이 발생하면 지체없이 119나 129로 전화해야 한다.

뇌졸중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만 알면 이를 예방할 수 있고 후유증도 줄일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질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뇌졸중 예방과 치료에 가장 큰 적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암 정복 10개년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이 83년에 세운 ‘암 대책 10개년 총합전략’을 본딴 것이다. 하지만 일본 후생성은 암 대책보다 먼저 뇌졸중 예방 대책을 세워 법률을 정비하고 세부 시책을 시행했다. 서 일 교수는 “(보건 당국이) 일본 흉내를 내려면 똑바로 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서교수는 언제 정복하게 될지 모르는 암 연구에만 치중하지 말고 조금만 잘 관리하면 예방·치료할 수 있는 뇌졸중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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