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법투’가 시작된다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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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철폐·주5일제· 최저 임금 인상·산별 교섭 등 노동 관련 법 규정과 제도를 개선하는 투쟁에 총력을 쏟겠다고 선언했다. 뜨거운 ‘법투’가 될 ‘하투’의 쟁점을 분석했다.
2004년 6월은 참여정부 2기의 노·사·정 관계를 가늠할 시금석이다. 5월31일에는 대통령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토론회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17대 국회 개원과 맞물려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사저널>은 (사)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함께 비정규직의 실태와 난마처럼 얽혀 있는 쟁점들을 점검해보았다.

지난 5월21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동 기자회견은 마치 6월 총력 투쟁을 알리는 출정식 같았다. 이 날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6월 집중 투쟁의 서막을 알리는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를 6월 투쟁의 주요 과제로 삼는 동시에 법 규정 등 제도 개선 투쟁에 총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법 규정과 제도를 개선하는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기자회견문은 하투(夏鬪)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2004년, 하투는 법투(法鬪)인 것이다.

지난 2~3년 동안 한국에서 ‘춘투’는 잠잠했다. 2002년에는 월드컵 때문에 온 국민의 관심이 축구에 쏠려 있었고, 노동계도 비교적 분규를 자제했다. 2003년에는 두산중공업과 철도 등 대규모 분규가 해결되고, 민주노총이 정부와 대화 채널을 구축하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춘투를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2003년 6월, 참여정부 들어 처음으로 철도노조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하면서 노·정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또한 하반기에 주5일근무제 등 제도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하투에서 추투(秋鬪)로 이어졌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노동계의 시기 집중 투쟁이 6월 이후로 맞추어져 있다. 4·15 총선 때문에 시기가 미루어졌다. 민주노총은 6월16일 대규모 총력투쟁결의대회, 30일 전국 중앙 집중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노동계의 쟁점은 비정규직 차별 철폐, 주5일제, 최저 임금 인상, 사회공헌기금(노동연대기금), 산별교섭 등 법과 제도와 관련한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노동계가 법과 제도 개선에 진력하는 것은 6월에 개원하는 17대 국회에 파견법 개정안·공무원노조법 등 노동 관련 법안이 상정되기 때문이다. 향후 노·사·정 관계를 좌우할 수 있는 폭발성이 강한 법안들이어서 기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의 약진도 6월 투쟁과 관련해 예년과 다른 중요한 변수다.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해 국회에서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게 되면서 노동계의 투쟁 전략도 변했다. 민주노총은 현장에서 임단협 투쟁을 벌이고 동시에 민주노동당을 통한 입법 투쟁을 벌이는 것을 6월 총력 투쟁의 양대 축으로 삼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6월 초 입법 관련 토론회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생색 내기에 불과”

노·사·정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쟁점은 비정규직 문제다.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정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였다.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노·사가 판이하다. 최근 정부의 공공 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서 노동계와 재계가 내린 평가에서 그 입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5월19일 정부는 환경미화원·도로보수원 등 2만7천여 명을 상용직으로 고용하고, 학교영양사와 사서 등 4천6백여 명을 공무원화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이 생색 내기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지난해 정부가 공공 부문 실태 조사를 마친 후 연말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가 미루어졌고, 부처간 갈등으로 인해 정규직화 인원도 애초 10만명에서 3만여 명으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확대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이 기업 부문에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상의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부문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시장 경제 원리에 역행하는 대책이 나와 아쉽다. 이번 조처가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우리 노동 시장의 경직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신호로 작용할 것이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비정규직과 관련해 특히 노·사·정 관계를 뒤흔들 태풍의 핵은 17대 국회에서 정부가 내놓을 파견법 개정안이다. 현재 공식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정부가 준비하는 파견법 개정안은 파견 대상 직종을 크게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28~30쪽 딸린 기사 참조).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지금도 불법 파견이 성행하는데, 파견 직종까지 늘리면 고용-노동 시장의 질서가 근본부터 무너지게 된다. 노동계가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사회공헌기금(노동연대기금)은 올해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쟁점이다. 5월19일 완성차 4사 노조가 기업의 순이익 가운데 5%를 사회공헌기금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하고,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공론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쟁점으로 떠올랐다.

애초 민주노총은 올해 이수호 체제가 출범하면서 ‘노동연대기금’을 제안한 바 있다.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 문제를 노사가 함께 풀어 가자는 취지로 기금을 조성해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 문제를 해소하는 데 쓰자는 것이다. 노동연대기금의 재원 마련 방법은 완성차 4사 노조의 제안과 차이가 있다. 노동연대기금은 정규직 임금 인상액의 일정 부분을 갹출하고, 사측도 상응하는 금액을 내서 기금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사회공헌기금을 둘러싼 논란은 벌써부터 시끄럽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회공헌기금 조성은 임단협 교섭 대상이 아니라며, 정부가 이에 호응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경총은 “준조세 성격의 사회공헌기금을 도입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면 결국 투자 감소를 유발하고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려 경제를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정부 안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추진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라면서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사·정 대토론회가 ‘하투’ 양상 좌우할 듯

주5일근무제도 법·제도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7월부터 1천명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서 주5일제 근무가 시행되면서 월차 등 근로 조건이 임단협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올해 주5일제가 쟁점으로 부각될 사업장을 최소 2백 곳 이상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주5일제 도입에 합의한 사업장 가운데에서도 ‘법 개정시 재논의’라는 단서 조항을 붙여 올해 다시 논의해야 할 곳이 많다.

이번 하투에서 한국노총이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노총은 4·15 총선에서 녹색사회당을 지지했던 이남순 위원장이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 지도부 교체기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현재 위원장 단독 후보로 나선 사람은 이용득 금융노련 위원장. 지난해 조흥은행 파업을 주도한 이후보는 이전 지도부에 비해 강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민주노총에 견주어 노·사 협조적이던 한국노총이 이용득 체제에서 한 발짝 왼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노총의 새 집행부는 5월25일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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