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대륙 ''돈 싸움'' 초읽기
  • 덴마크·박수미 (아후스 대학 교수·경영학) ()
  • 승인 1998.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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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1월 4일 '유로' 탄생··· "달러 맞먹는 화폐될 것"
유럽연합(EU)의 통합 화폐 유로가 탄생하기까지 2개월 남짓. 각 분야 경제 전문가들은 달러에 대한 유로화의 가치 설정에 대해 조심스런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실제 손에 쥘 수 있는 화폐로서의 유로화는 2002년 봄에 가서야 제조·발행되지만, 99년 1월4일부터 2002년 봄까지는 기존 유럽 화폐와 병행해 완벽한 화폐 단위로서 유로화가 사용 가능해진다. 무역 거래에서도 다른 화폐와 마찬가지로 유로화 지불이 가능하며, 모든 금융 거래에서도 유로화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로화가 출범한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로화 사용을 준비하고 있는 은행 관계자들조차 설명을 잘 못한다.

덴마크의 한 금융 관계자는 유로화 출범에 대비해 약 천여 개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존 여러 화폐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각각의 화폐를 대표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공통 화폐를 동시에 취급해야 하는 상황은 유럽의 모든 금융기관에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유로화 출범 이후 금융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로화 가치 설정 간단치 않아

실제 거래상의 문제도 문제지만 유로화의 가치 설정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유럽연합 화폐 통합권 안에 있는 각국의 이해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통합 화폐 유로는 변동이 없는 강력한 화폐 단위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러에 비해 너무 센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유럽연합 경제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로화가 달러에 비해 월등히 셀 경우 달러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연합의 수출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수출량이 많은 독일이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유럽연합의 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독일의 경제 사정이 악화할 경우, 그 영향은 다른 유럽연합 나라들에 급격히 파급될 것이 자명하다.

도이치 은행이 최근 실시한 조사는 유로화가 달러에 버금가는 경쟁력 있는 화폐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재차 확인해 주었다. 거대 금융기관에 투자한 사람 중 인터뷰에 응한 투자가의 73%가 유로화를 달러만큼 신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화에 대한 신용은 특히 지난 2∼3년 동안에 걸쳐 두터워졌다. 유럽연합 회원국 중 11개국이 약 천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 수지 흑자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병행하여 어떠한 인플레이션에도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유럽 중앙 은행(ECB)의 자세도 유로화 신용도를 두텁게 하는 데 한몫 하고 있다. 미국은 98년 약 1천3백억 달러의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견된다. 따라서 달러화가 현재의 가치를 유지할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며, 그런 만큼 내년 1월4일 첫선을 보일 유로화로 투자가 쏠릴 가능성이 크다. 덴마크의 중앙 은행을 비롯한 유럽 은행들은 유로화에 비해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유로화에 대한 높은 신용도는 화폐 통합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리처드 포터스 교수에 의해서도 재확인되었다. 지난 11월13일 코펜하겐에서 화폐 통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포터스 교수는 유로화가 강력한 화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동유럽 국가들이 가입해 유럽연합이 확대되어도 유로화는 손상되지 않을 것이며, 경제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동유럽 몇몇 나라들의 상황은 오히려 유로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고 내다보았다. 이와 함께 그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 현재 유럽 경제·화폐 통합권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영국·덴마크·스웨덴·그리스도 머지 않아 화폐 통합권 내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실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이 경제난에 휩싸이게 되면서 환율 파동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는 그리 많지 않으나, 유럽 경제·화폐 통합권 안에 들어 있는 11개국(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핀란드 룩셈부르크)은 예외이다. 스웨덴·영국·덴마크에 비해 경제 상황이 그리 양호하다고 할 수 없는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도 유럽 경제·화폐 통합권의 보호막 덕택에 리라·페세타·에스쿠도가 안정된 화폐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에서의 국민 투표에 의해 자진하여 유럽 화폐 통합권 밖으로 물러난 4개국은 환율 변동을 심각하게 경험해야만 했다.
신뢰도, 유럽 중앙 은행의 독립성 유지에 달려

특히 스웨덴 화폐 크로네는 최근 상당히 하락했고, 덴마크는 경제 상황이 양호함에도 불구하고 크로나의 하락을 막기 위해 서둘러 이자율을 높여야 했다. 이로써 현실감이 빠진 논리로서만 이해되던 화폐 통합권의 실상을 실제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으며 화폐 통합권 밖에 있으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도 명확해진 셈이다.

유럽 화폐 통합권 밖에 있는 덴마크 화폐 크로네의 취약성을 지적하면서 덴마크의 권위 있는 신문 <유트랜드 포스트> 는 다음과 같은 미래 시나리오를 보도했다.

‘2001년 7월17일, 코펜하겐. 장기간에 걸쳐 국제 투기자들의 맹렬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덴마크 화폐 크로네의 환율 하락세를 막기 위해 어제 덴마크 중앙 은행은 또다시 이자율을 2%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도 세 번이나 이자율을 높여야 했던 중앙 은행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럽 중앙 은행 관계자는 덴마크 경제 상황을 우려하면서 환율을 재조정할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유럽 중앙 은행과의 환율 재조정이 현실화되면 국제 금융계에서 덴마크 크로네의 신뢰도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다.’

덴마크나 스웨덴 등 유럽 화폐 통합권 밖에 있는 나라들이 최근에 경험한 화폐 가치 변동을 고려할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정치적인 야망도 무시할 수 없지만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가 유럽연합 경제·화폐 통합권 안에 영국을 포함시키기 위해 온갖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최근의 조사에서 유로화에 대한 영국 국민의 여론이 점점 호전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파운드가 유로화로 대체되는 것에 반대하는 국민 수가 감소하는 한편(현재 41%가 유로화 반대, 35%가 찬성) 영국민의 86%가 언젠가 영국이 유럽 화폐 통합권 안에 포함되리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유로화에 대한 각계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의 정치 상황 변동에 따라 유로화의 신뢰도가 흔들릴 소지도 없지 않다. 유로화의 신뢰도는 내년 1월부터 경제 통합권 안에 드는 11개국을 대표하여 공통 이자율을 책정할 막강한 임무를 맡게 되는 유럽 중앙 은행이 유럽연합의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유럽 중앙 은행의 기본 골격이 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짜였고, 이 조약에 서명했던 대부분의 유럽연합 정치가들이 당시 우파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유럽 중앙 은행은 실제 독립성을 확보했다. 조약 내용에는 유럽 중앙 은행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로서 화폐 통합권 내 나라들의 인플레이션이 2%를 초과하지 않도록 조처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후 유럽 각국의 정치 상황이 변해 현재 유럽연합에서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고 있다. 유럽연합의 중심 세력이라 할 독일·이탈리아·프랑스·영국에서 사회주의 정당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들 사회주의 정치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실업률 감소에 있다. 따라서 유럽 중앙 은행의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역할의 하나로 마스트리히트 조약 내용에 분명히 표현된 2% 이내의 인플레이션 유지는, 실업률 감소라는 현 사회주의 정치가들의 주요 목표와 상충한다.

이자율을 낮게 책정할 경우 경제가 활성화해 실업률이 감소할 것이고, 반대로 이자율을 높게 책정할 경우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업률은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실업률을 낮추려면 이자율을 낮게 책정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그럴 경우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고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여지가 많다.
환율 변동 없는 유로화가 되려면…

따라서 유럽 중앙 은행이 유럽연합 정치가들로부터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경제 정책을 펼 때에만 2% 이내의 인플레이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환율 변동이 없는 신용 있는 유로화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 중앙 은행의 독립성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다고 해도, 유럽 중앙 은행이 유럽연합 정치가들의 압력을 받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우선 지금껏 그 비밀이 보장되어 온 유럽 중앙은행의 모든 결정 사항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 유럽연합의 사회주의 정치가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독일의 재무장관이면서 차기 유럽연합 커미션 의장 자리를 맡을 가능성이 다분한 라퐁텐은, 유럽 중앙 은행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유럽 중앙 은행의 닫힌 문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현재의 의사 결정 과정이 공적으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91년의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명기되어 있는 유럽 중앙 은행의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은 독일 연방 은행의 모델에서 따온 것이다.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지켜질 때에만 독자적인 경제 정책을 펴갈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배경이었다.

자국민의 인기도에 의존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장기적인 경제 정책보다는, 금세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기적인 경제 정책에 관심을 기울일 소지가 많다. 그러다 보면 유로화가 정치가들의 압력을 받아 변동할 가능성이 높다.
유로화와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는 유럽 경제·화폐 통합권에 포함될 11개국에 공통으로 적용할 이자율을 책정하기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실제 독일과 아일랜드의 이자율을 비교해도 현재 3%포인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일랜드나 포르투갈이 각각 8.6%와 4.9%로 비교적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반면, 독일·프랑스의 성장률은 각각 3.0%와 3.4%이다. 또한 아일랜드나 포르투갈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아일랜드 6.2%, 포르투갈 4.5%)을 책정하고 있는 반면 독일의 이자율은 3.3%로 매우 낮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중앙 은행이 11개국 모두가 만족할 만한 이자율을 책정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금융 관계자들은 현재 독일의 이자율인 3.3%가 내년 1월 유럽 중앙 은행의 이자율로 책정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3.3%선은 지난 두 달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이자율을 낮춘 미국의 경제 상황에 의해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독일 마르크에 비해 달러 가치가 떨어지지 않았음과 동시에 세 차례나 걸쳐서 이자율을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의 이자율은 4.75%로서 유럽 경제·화폐 통합권 나라들의 이자율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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