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윈스키는 교활한 탕녀?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1998.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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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보고서에 나타난 르윈스키의 참모습
“네가 어떤 애라는 걸 알았다면, 이런 관계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스타 보고서에 나오는 이 대목은, 클린턴 대통령이 이번 성 추문이 터지기 몇 달 전 한밤에 전화로 르윈스키와 다투다가 쏘아붙인 말이다. 그가 이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둘의 불륜 관계가 르윈스키의 가벼운 입을 통해 새어나갔기 때문이다. 사실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오럴 섹스를 할 때마다 ‘아직은 널 믿을 수 없다’며 사정만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왜 자기를 못 믿느냐며 사정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그의 거듭된 성화에 못이겨 클린턴은 결국 사정을 해서 르윈스키의 남색 드레스에 증거까지 남겼다.

스타 보고서에 나타난 르윈스키는 복합적인 감정의 소유자이다. 95년 11월부터 97년 3월까지 클린턴과 열번의 오럴 섹스와 열다섯 번의 폰섹스를 갖는 동안 르윈스키는 클린턴이 자신의 연인이거나, 언젠가는 힐러리를 대신해 자신이 그의 아내가 될지도 모른다고 착각하리만큼 현실감이 부족했다. 그러나 클린턴이 결별을 선언하고 만나 주지 않자 모든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클린턴의 정액이 묻은 남색 드레스를 세탁도 않고 보관할 정도로 교활한 면이 있었다. 또 그에게는 백악관에서 근무할 때나 집에 있을 때나 클린턴과 밀회할 기회만을 엿볼 만큼 영악한 면도 있었다. 오죽하면 클린턴이 그를 자신의 ‘밀행자’라고 했을까.

르윈스키, 유혹→섹스→아내 자리 노려

백악관에서 강제 퇴출된 르윈스키를 위해 취직 자리를 알아보던 클린턴의 최측근 버논 조던이 만나 본 르윈스키의 모습은 두 가지이다. 우선 그는 클린턴에게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고, 클린턴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조던이 이런 사실을 클린턴에게 알렸을 때는 이미 물이 엎질러진 뒤였다.

르윈스키가 이렇게 된 데에는 상당 부분 클린턴의 책임이 있다. 클린턴이 그런 착각을 일으킬 만한 처신을 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를 보자. 언젠가 그가 클린턴에게 “백악관을 물러나면 함께할 시간이 지금보다 더 많을까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클린턴은 “어쩌면 3년 뒤에는 혼자 살지도 모르겠다”라고 대꾸했다. 이 말에 그가 “그럼 우린 훌륭한 팀이 될 수도 있겠네요”라고 화답하자, 클린턴이 “내가 일흔다섯 할아버지가 되어 하루에 스물다섯 번이나 오줌을 질질 싸면 어떡할래?”라며 농담조로 대답했다.

이런 농담이 르윈스키에게 예사스런 농담으로 들렸을 리 없다. 이 말에 클린턴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특히 클린턴이 르윈스키를 연인끼리나 쓰는 ‘스위티(Sweetie)’ ‘베이비(Baby)’라고 부른 것이나, 때로는 부부끼리나 쓰는 ‘Dear’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분명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스타 보고서를 보면 르윈스키는 처음부터 작심하고 클린턴을 유혹하려고 했던 것 같다. 최초 유혹 과정을 보자. 95년 7월 스물한 살이던 그는 친척의 소개로 백악관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무급인 인턴을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날 그는 이런 저런 백악관 행사에서 클린턴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해 11월 의회가 예산 통과를 거부해 정부 기능이 축소되면서 백악관 직원이 크게 줄자, 그는 백악관 비서실장실로 자리를 옮겨 잡일을 맡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 방을 자주 들락거리던 클린턴과 접촉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던 11월 어느날 오후 5시가 좀 넘어 그는 백악관 한 모임에서 클린턴과 마주쳐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자기의 옷을 살짝 걷어올려 허벅지의 속옷 끈을 내보였다. 이런 사인을 알아차렸는지 클린턴은 그 날 저녁 10시가 넘어 비서실장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 그를 불러 자신의 서재로 데려갔다. 첫 정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성관계는 97년 3월까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르윈스키는 단 한 번도 클린턴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열성적으로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르윈스키와의 불륜 소문이 자신의 귀에까지 들어오자, 클린턴은 마침내 97년 5월24일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내 관계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그 날 르윈스키는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클린턴의 태도는 무척 단호했다고 한다.

르윈스키의 불안 증세는 백악관에서 국방부로 전출된 96년 4월 이후 더욱 심해졌다. 그는 이 사실을 클린턴에게 알린 뒤 복직을 요구했고, 결국 그해 11월 대통령 선거에 재선되면 그를 다시 백악관으로 부르겠다는 약속을 클린턴에게서 받아내기도 했다. 그는 달력에 표시를 해가며 선거를 기다렸고, 클린턴이 재선한 뒤에는 자기를 불러 주기만을 고대했다.

클린턴으로부터 한동안 소식이 없자 르윈스키는 97년 2월 발렌타인데이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귀절을 인용한 문구를 <워싱턴 포스트> 개인 광고 난에 싣는 등 끈질긴 구애 공세를 폈다. 그의 이런 노력은 효과를 거두어 그해 2월과 3월 두 차례 클린턴과 성관계를 가졌고, 이때 그는 백악관에 다시 부르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이처럼 집요한 태도는 97년 5월 클린턴이 정식으로 관계 청산을 통보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대통령과 직접 통화할 수 없게 되자 울면서 비서실 직원인 커리에게 부탁하기도 했고, 그마저 뜻대로 안되자 연애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는 커리를 통해 클린턴에게 선물을 30여 개 보내기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백악관 밖에서 장대비를 맞아가며 커리를 기다렸다가 건넨 것이다.

“스타 보고서, 르윈스키 일방적으로 매도”

르윈스키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가 마치 클린턴을 유혹해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처럼 스타 보고서에 묘사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남을 잘 믿는 성격 탓에 클린턴의 환심성 발언에 넘어갔으며, 또 학창 시절의 아픈 실연 경험 때문에 클린턴의 따뜻한 말에 넘어갔으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르윈스키 어머니가 연방 대배심에서 “내 딸이 많은 남자들로부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클린턴이 내 딸에게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라고 증언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8월17일 클린턴은 대배심 증언에서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우정으로 시작된 관계가 이렇게까지 왔다”라고 말했지만, 르윈스키는 ‘핸섬(Handsome)’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클린턴과 육체 관계를 가진 뒤부터 이미 몸과 마음이 푹 빠졌던 것이 분명하다.

르윈스키는 “그와 사랑에 빠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실제로 그런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라고 증언했다. 스타 보고서는 이러한 그를 두고 ‘세속적이며, 꽤나 영리하고 교활하며, 때로는 대통령을 윽박질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줄도 아는 조작꾼(manipulator) 기질의 소유자’라고 묘사했다. 클린턴이 고백한 대로 그가 르윈스키의 됨됨이를 좀더 일찍 파악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처신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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