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이 한국에 다시 몰리는 까닭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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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달러 약세 덕분에 증시 호황 경제 회생 근본 해결책은 구조 조정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산하 딘위터 사는 지난 9월16일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는 아직 경기 저점을 벗어나지 않았고 경제 사정은 3/4분기 이후 더 나빠져 올해 경제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마이너스 4.0%)보다 훨씬 낮은 마이너스 7.0%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한 달 뒤 이 회사는 9월 전망과는 상반되는 보고서를 다시 발표했다. 지난 10월20일 딘위터 사는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한국 경제가 99년 1/4분기에 저점을 지난후 2/4분기부터 플러스 성장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지난 9월까지 국제 금융계와 언론 가운데 한국 경제의 순항을 점치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10월 중순 이후 외국 금융기관들은 특유의 변덕을 부렸다. 국제 금융계 인사들은 10월 중순 이후 발표한 보고서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지난해 10월 이후 곤두박질치던 한국 경제가 균형을 잡고 수평 비행에 들어갔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경제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국 금융산업이 안고 있는 부실 채권 2백억 달러가 갑자기 해소되었나? 재벌들이 과감한 구조 조정을 단행해 잠재 성장력이 눈에 띄게 높아졌나? 아니면 한국 기업의 수출 물량이 지난 달에 비해 크게 늘어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경제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은 이 질문들에 대해‘노(No)’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외국에 눈을 돌려야 한다. 세계 경제 환경 변화가 체질적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대한 시각을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선 일본 엔화의 강세. 한국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일본 상품과 경쟁하는 품목이 많다. 따라서 엔화 가치가 빠르게 올라가면 한국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물량이 늘어나고 무역 흑자가 커진다.

다음은 미국 달러화 약세. 미국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자 미국 금융시장에서 빠져나온 투자 자금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 그 가운데 일부가 한국 증권 시장과 채권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지난 8월까지 빠져나가기만 하던 외국인 투자 자금이 9월 한달 동안 2백52억 달러 가량 순증했는가 하면 10월에는 24일까지 6백42억 달러나 늘어나는 폭증세를 보였다. 또 한국 정부가 외국 금융 시장에서 발행하는 외국환평형채권의 가산 금리가 5%대로 떨어졌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 사가 10월26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외평채 10년물 가산 금리는 지난 8월까지 크게 늘어나다가 9∼10월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경기 예측 기관인 와튼계량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노동 시장을 개혁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앞다투어 직접 투자를 벌이고 있다. 와튼계량경제연구소는 급격한 외국 투자 자금 유입이 내년까지 지속되어 한국의 신용 경색을 완화시키고 성장률 수치도 플러스로 반전시키리라고 전망했다.

국제 경제 여건이 나아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주요 경제 지표에 주목했다. 와튼계량경제연구소는 한국 경제가 내년 3/4분기부터 플러스 성장한다고 예측한 지난 10월19일 아시아 경제 특별 보고서에서 ‘금리가 크게 떨어져 경제 활동을 부추기고 국내 투자와 성장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또 올해 마이너스 6.0%에서 내년 플러스 0.6%, 2000년에는 4.8% 성장하리라고 예상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도 10월26일자 98∼99년 아시아 경제 특집 기사에서 ‘한국이 제 2의 외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인용한 뒤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4백34억 달러나 된다고 밝히면서 제2의 외환 위기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 낙관론자들도, 몇가지 전제 조건을 단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회생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외국 투자 기관이나 신용 평가 기관이 김대중 정부를 비롯해 한국 경제 주체의 개혁 의지와 결과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JP모건 사는 지난 10월23일 한국 보고서에서‘한국의 경제 개혁 작업은 아직 전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투자 은행은 개혁 청사진에 맞추어 과감하게 개혁 작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외국 투자자의 신인도를 충분하게 얻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JP모건 사는 한국 정부가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금융산업이 여전히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부실 금융기관 94곳이 폐쇄 또는 영업 정지되고 금융산업 종사자의 20%가 정리 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실 채권과 부실 금융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업 구조 조정 작업이 늦추어지는 것을 보면 금융 부문은 오히려 나은 편이다. 경쟁력이 없어 퇴출해야 할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채권 은행의 도움을 받아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99년까지 기업 부채 비율을 200%까지 내리라고 압력을 가하지만 부채 규모는 별로 줄지 않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 계열사를 대폭 정리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통폐합하라고 추가 압력을 넣고 있지만 기업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노동 시장 개혁이 최대 난제”

JP모건 사는 한국 경제의 최대 난제가 노동 시장 개혁이라고 지적한다. 실업률이 크게 높아져 노사 분규를 부추기고 있다. 노사 분규를 일으키지 않고 정리 해고를 단행하려면 추가 비용이 많이 든다. 퇴직 위로금을 비롯해 명예 퇴직금이 늘어나면 그만큼 기업의 부담을 커진다. 한국 정부는 명예 퇴직금이나 퇴직 위로금을 줄이려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어 내놓고 간섭하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지난 30년 동안 초음속에 가까운 성장세를 구가한 한국 경제는 지난해 10월 이후 곤두박질쳤다. 이제 겨우 균형을 잡았으나 다시 제 고도에 오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최신 레이더를 보며 한국 경제를 지켜보던 외국인들은 한국이 이제 겨우 수평 비행을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정상 비행을 하려면 비행기 동체와 장비를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기업 구조 조정을 통해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부실 채권을 없애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외국인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수평 비행하면서 이 개혁 작업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개혁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재비상을 시도한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추락할 위험이 크다. 그럴 때 우리 앞에 기다리는 것은 생사가 걸린 동체 착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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