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가 화씨9/11을 외면하는 이유는?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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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소문만 무성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9/11>이 드디어 내일 개봉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려고 상영 극장 목록을 뒤져 본 사람은 뭔가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할 것이다. 전국 80여개 개봉관 가운데 국내 최대 극장 체인 <메가박스>는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화씨911 홈페이지에는 '왜 제일 큰 극장에서 개봉 안 하는 건지, 한 개의 개봉관도 내기가 힘드나? 정말 의문이네요"(love29)라며 항의하는 네티즌들이 보인다.

영화를 걸고 안 걸고는 극장 맘이겠지만, 흥미있는 것은 <메가박스>의 소유구조다. <메가박스>는 오리온그룹과 로이스씨네플렉스엔터테인먼트사가 각각 50대 50으로 합자한 회사다. 로이스 씨네플렉스는 전세계 2천2백개 스크린을 가진 있는 세계3대 극장 체인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로이스 씨네플렉스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가 바로 칼라일 그룹(Carlyle)이다.

칼리일 그룹! 시사회에서 <화씨911>을 본 사람이라면 '헉'하고 놀랄 것이다. 알다시피 화씨9/11은 부시와 빈라덴 일가의 결탁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런데 부시 일가와 빈라덴 일가가 만나는 사업상 접점이 바로 칼라일 그룹이다.

칼라일 그룹은 <시사저널>이 미국 현지에 특파원을 보내 취재했을 정도로(2003년 10월9일자 시사저널 728호) 온갖 미스테리와 음모론으로 가득찬 회사다. 조지 H.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칼라일 그룹 관계사 고문으로 일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재무장관, 아서레빗 전 미연방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등이 모두 칼라일 그룹의 역대 고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빈라덴 일가는 거액을 칼라일 그룹에 투자했다. 911 테러가 있던 날 아침 워싱턴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칼라일 그룹 회의에 빈라덴 일가가 참석하고 있었다.

칼라일 그룹은 막강한 인맥을 동원해 군수업체와 금융업체 인수에 나서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화씨911>은 칼라일 그룹이 2001년 911 사태로 어떻게 떼돈을 벌었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칼라일 그룹은 911 테러 두 달 뒤 자회사인 군수업체 유나이티드디펜스를 상장해 하루에 2억3천7백만달러(약 2천5백억원)의 투자 수익을 거뒀다.

유명 극장 체인인 <메가박스>가 칼라일 그룹 관계사라는 사실은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칼라일 그룹이 로이스씨네플렉스를 인수한 게 채 한 달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칼라일 그룹 홈페이지에 따르면 '로이스 씨네플렉스는 6월21일 칼라일그룹,베인캐피탈,스펙트럼이쿼티 등 3개사가 합자한 한 회사에 20억 캐나다달러(약 1조7천억원)에 팔렸다"라고 적혀있다. 6월21일은 미국에서 화씨911이 개봉하기 4일 전인 시점이다. 이 천문학적 액수의 거래가 미국 로이스 극장 상영목록에 영향을 줬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인터넷 게시판에는 로이스 극장에서 화씨911을 봤다는 글이 종종 보인다).

<화씨9/11> 상영을 피한 것이 모회사와의 관계 때문이라는 의혹에 대해 메가박스 측은 부인하고 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우리는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화씨9/11> 시사회도 한 적 있다. 배급사와 조건이 맞지 않아 개봉을 못했을 뿐이다. 다른 큰 극장들도 개봉 안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물론 <메가박스>측의 해명대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일 수도 있다. <화씨9/11> 국내 배급을 맡고 있는 <스튜디오 플러스> 담당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메가박스에서 상영을 원천적으로 거부했던 건 아니었다. 메가박스가 먼저 '퐁당퐁당'(동시상영, 교차상영)을 제안해왔고 우리는 그런 모양새로 개봉하는 게 옳지 않은 것 같아 프린트 제공을 거절했을 뿐이다. 딱히 상영을 막으려고 애쓰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씨9/11>이 다큐멘터리 영화고, 지금은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다. 극장쪽에서 상영에 나서지 않는다고 문제삼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다만 메가박스측의 해명 가운데 '다른 큰 극장도 개봉 안한다'라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국내 4대 체인(메가박스, CGV, 프리머스, 롯데시네마) 가운데 화씨9/11을 상영하지 않는 곳은 메가박스 뿐이다. 롯데시네마 마케팅실 관계자는 "미국에서 흥행 1위를 한 사례도 있고 관객의 문의도 많아 개봉작 상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만약 <화씨9/11>이 흥행에 성공한다고 해도 메가박스가 끝까지 상영을 외면할 지 두고 볼 일이다.

기사등록 시간 : 7월21일 0시 32분
메가박스와 배급사의 상반된 주장, 누가 옳은가?

<2신> 위 기사는 7월21일 09:32분 인터넷 시사저널 <취재후기>란에 처음 쓰여진 글입니다. 현재 이 문제가 인터넷 상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메가박스 측과 배급사 측의 공방으로 번져가고 있으므로 다시 양측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하려 합니다.

기자는 이미 7월20일 메가박스 홍보 담당자와 통화를 한 바 있습니다만, 7월22일 메가박스 프로그램 담당 실무자인 장경익 팀장이 전화를 걸어와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가 <화씨 9/11>을 외면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7월19일(월)에 배급사에 전화를 걸어 영화을 개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배급사에서 프린트가 없다며 제공을 거절했다. 왜 배급사에서 프린트를 안 주는지 모르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메가박스에 <화씨/911>이 걸리지 않은 것은 오로지 배급사 탓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배급사인 <스튜디오 플러스> 김성홍 사장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는 "7월12일 저녁 6시경, 메가박스에서 분명히 <화씨 9/11> 상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남은 프린트를 모두 CGV, 롯데 등 다른 극장에 넘겼다. 그런데 개봉 3일전에 돌연 메가박스 측에서 영화를 상영하겠다며 프린트 3벌을 요구했다. 3일만에 어떻게 프린트를 구한단 말이냐"라고 반문했습니다.

7월12일 메가박스가 <화씨 9/11> 상영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은 메가박스 측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메가박스 장경익 팀장은 "여름 시즌이라 <화씨 9/11>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는데, 마침 한 영화의 개봉이 9월로 늦춰지면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7월19일에 배급사에 프린트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개봉 3일전이라서 못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개봉 3일전이 아니라 개봉 전날에 전화해도 프린트를 마련해 주는 것이 극장가의 관례다. 개봉3일전에 프린트를 달라는 게 정말 무리한 요구인지 업계에 확인해보라. 내가 틀렸다면 나를 나쁜 사람으로 욕해도 좋다"라고 말합니다.

업계에서는 프린트 제공 상황은 국산영화냐 수입영화냐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산 영화의 경우에는 영화의 원판격에 해당하는 <네가>필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몇 시간만에 뚝딱 포지티브 프린트 복사(복제)가 가능합니다. 메가박스같은 큰 극장 체인이 전화한 통화 걸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배급사는 군말없이 프린트를 복사해 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수입 영화의 경우 <네가>필름을 갖고 있지 않으면 5~6일 이상 시간이 걸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프린트를 수입하고 다시 자막을 입히는데 걸리는 시간이죠. <화씨 9/11>의 경우 국내에 원판격인 <네가>필름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메가박스>는 <화씨9/11>을 상영하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는 사실입니다. 배급사는 필름 원판이 있는 프랑스에 추가 프린트 수입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등록시간 : 7월 23일 13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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