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무기’ 북한엔 무용지물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3.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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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봉쇄 정책, 평양의 벼랑끝 전술에 ‘봉쇄’돼…한국·중국 반대도 결정적



지난해 10월17일 미국측의 ‘고발’로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불거진 이래 북한은 매우 용의주도하게 국면을 이끌어 왔다. 미국측의 느닷없는 ‘선언’ 이후 1주일째 침묵을 지키던 북한 외무성은 10월25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불가침조약 체결이라는 ‘발명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이 꿈쩍도 안하고 12월분 중유 공급 중단, 스페인 군함을 통한 북한 화물선 나포 같은 강경 조처로 일관하자 더 이상 말싸움을 포기하고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12월1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발표를 계기로 시작된 북한의 행동 조처는 전가의 보도라고 할 수 있는 ‘카드 분할 정책’과 ‘벼랑끝 전술’을 적절하게 배합한 것이었다. 우선 제1 단계는 전력 생산을 명분으로 한 발전용 원자로 가동이었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의 한 축이었던 중유 공급을 중단했으므로 북한은 할 수 없이 전력 생산을 위해 영변의 5MW 원자로 재가동 및 건설이 중단된 50MW 원자로와 200MW 원자로 재건설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낮은 단계의 조처를 통해 상황 변화를 유도해 보았으나 여의치 않자 그 다음에는 단계 별로 위기 상황을 급진전시켰다.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 및 감시 카메라 철거, 사찰단원 추방 조처가 뒤를 이었다. 지난 12월27일에는 영변의 방사화학실험실을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전력 생산 단계에서 핵무기 개발 단계를 의미하는 2단계로 급진전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플루토늄 재처리와 직결되는 방사화학실험실을 가동한다는 것은 곧 핵무기 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북한이 NPT 탈퇴 시사하자 손 들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부시 행정부는 언론을 통해 ‘맞춤형 봉쇄 정책’이라는 신무기를 가지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신무기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의 강력한 반대와 중국측의 비웃음을 산 채 주머니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맞춤형 봉쇄 정책은 북한을 ‘루비콘 강의 나루터’까지 밀어붙이는 데에만 크게 기여했다. 미국의 정책이 <뉴욕 타임스>에 보도된 며칠 뒤인 지난 12월31일, 박의춘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와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북한이 미국의 대북 선제 핵공격 위협 앞에서 더 이상 핵확산방지조약(NPT) 상의 ‘특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특수 지위란 북한이 1993년 6월11일 북·미 고위급회담을 통해 핵확산방지조약 탈퇴를 유보해 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탈퇴하겠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탈퇴 위협은 1993년이나 지금이나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를 주눅들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는 것은 핵확산방지조약 회원국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이나 간섭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이 세계 전략의 축으로 신주 모시듯이 해온 핵확산방지조약 체제는 근본에서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미국으로서는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 삼간 태우는 격이 아닐 수 없다.


회심의 카드로 여겨온 맞춤형 봉쇄 정책이 한국·중국의 반대와 북한의 벼랑끝 전술로 무력화하면서 이미 전의를 상실하기 시작한 미국은 더 버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이 ‘크로퍼드 선언’을 통해 외교적·평화적으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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