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 암행감찰반 ''비리 적발'' 현장 중계
  • 주진우 (ace@sisapress.com)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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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암행감찰반 ‘비리 적발’ 현장 취재/ 치밀하고 집요한 추적 ‘압권’
10월22일 오후 6시30분. 서울 서초구청 도시관리국장 김 아무개씨(53)가 사무실을 나섰다. 4시부터 4층 집무실 앞을 서성이던 한 민원인의 눈이 빛났다. 구청 현관에도 김국장을 유심히 쳐다보는 민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민원인이 아니라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실의 암행감찰반원이었다.

감찰반원들은 김국장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김국장은 무의식 중에 주위를 살피고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퇴근 후 업자를 만나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 감찰반원들은 김국장 뒤를 따라붙었다. 김국장이 퇴근한 뒤 집으로 바로 갈 것 같아 감찰반원들이 발길을 돌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국장은 강남의 한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감찰반원 한 사람도 뒤따라 들어갔다. “국장님, 어디 계십니까? 예약은 누가 했습니까?” 이 감찰반원은 김국장의 운전 기사라고 일식집 주인을 안심시킨 터였다. 예약자가 ㅅ종합건설 회장 김 아무개씨라는 것과, 세 사람의 신발이 놓인 방을 확인하고 감찰반원은 일식집을 급히 빠져나왔다.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야 김국장이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감찰반원 네 사람은 김국장의 양복 웃도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양복 안주머니에 돈을 챙기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국장의 양복 저고리에서는 별다른 징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일식집을 나선 김국장은 그를 접대한 일행의 벤츠 승용차 운전석 옆에 올라탔다. 감찰반원들은 바짝 긴장해 은밀히 벤츠를 따라붙었다. 10분 후 벤츠 승용차는 반포에 있는 김국장 집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김국장에게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서류 봉투를 건넸다.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감찰반원들은 기다렸다. 봉투를 받은 김국장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돈을 건넨 일행과 약 5분간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다. 봉투를 든 채였다. 김국장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감찰반원들은 봉투에 5백만원 가량의 현금 다발이 들어 있다고 확신했다. 그제서야 김국장에게 다가갔다. “김국장님.” “봉투 좀 봅시다.” 사색이 된 김국장은 엉겁결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넘겼다. 봉투 안에는 10000원짜리 100만원 묶음 5개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봉투에 든 것이 돈인지 몰랐다고 수뢰 사실을 부인하던 김국장은 이내 업무상 품위유지비로 받았다고 말을 바꾸었다.

고위 공직자가 뇌물을 받은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적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뇌물은 은밀하게 오가는 데다, 공직자들의 몸과 책상 서랍을 함부로 뒤질 수도 없기 때문에 암행감찰반은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몇 배나 노력을 기울인다. 그만큼 고충도 많다.

김국장이 사정반의 안테나에 걸린 것은 지난해 6월. 결정적인 순간을 잡기 위해 사정반은 `1년5개월 동안 열한 번이나 김국장의 뒤를 밟으며 밤샘을 밥먹듯 했다. 룸살롱이나 일식집에서 업자들에게 향응을 받는 것을 목격하고도 감찰반은 때를 기다린 것이다. 다음 날 서초경찰서에서 기자와 만난 김국장은 감찰반원들이 그동안의 행적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황당해서 말도 안 나온다”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 조사심의관실은 이밖에도 자녀 결혼식에 제약업체 임직원 등을 초청해 억대 축의금을 챙긴 혐의로 식품의약품안전청 국장을 내사하고 있다.

암행감찰반의 맹활약에 관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건설교통부의 한 고위 공직자는 “연말까지 오해 받을 소지가 있는 직무 관련자들과는 어지간하면 약속을 잡지 않겠다. 동료들도 모두 외출을 삼가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얼굴 없이’ 움직여야 하는 업무 속성 때문에 암행감찰반원의 활동은 베일에 가려 있다. 하지만 그들의 활약은 공직 사회에서 ‘예방 주사’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들은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완벽하게 현장을 덮쳤다.

1999년 2월 어느 날, 암행감찰반은 제약회사 간부들이 방문한 식품의약품안전청 김 아무개 의약품안전국장 사무실을 주시하고 있었다. 제약회사 간부들이 나오자 감찰반원들은 그들의 저고리를 유심히 살폈다. 화장실에서 두툼한 코트 안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한 간부의 홀쭉해진 옷매무새를 확인하자, 암행감찰반은 돈을 건넸음을 확신했다. 먼저 제약회사 간부들을 추궁해 자백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김국장이 방금 전에 받은 현금 3백만원을 서랍에서 발견했다.

암행감찰반은 이 날 아침 출근길에 김국장이 한 제약회사 회장으로부터 현금 2천만원이 든 봉투를 받은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 한 암행감찰반원이 “제약회사 회장이 청심환에 천연 사향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2천만원을 주었죠?”라고 추궁하자 김국장은 순순히 자신의 혐의를 시인했다. 김국장의 캐비닛에는 현금 2천5백만원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암행감찰반이 고위 공직자들에게 ‘저승 사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 인천시 송도 해안도로에서 해양경찰청 이경우 차장(치안감)의 음주 운전 현장을 적발하면서였다. 당시 감찰반은 이차장이 인사 때마다 직원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증거를 확보한 상태였다. 이차장의 집무실에서 미화 8천 달러와 현금 천만원이 나왔다. 이차장은 검찰에서 이 돈의 일부가 인사 청탁의 대가임을 시인했다.

2000년 돈을 받은 현장을 습격당한 교육부 총무과장은 책상 서랍에 보관하고 있던 1천9백4만원을 모두 토해냈다. 이 돈다발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 자체 점검에 나섰고, 인사 제도의 틀을 다시 짜는 계기로 삼았다. 또 2002년 4월 감찰반원들은 업무 시간에 도박판을 벌이는 김해교육청 공무원들을 적발해 기강 해이를 질타했다. 당시는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로 경남 지역 관계 공무원들이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때였다.

암행감찰반은 신흥 개발 지역의 인허가가 많은 지방 자치단체에 주로 나타나며, 명절·연말·휴가철 등 취약 시기에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돈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는다. 한 감찰반원은 “공무원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면 집에 가는지, 친구 만나러 가는지, 돈을 받으러 가는지 감이 온다”라고 말했다.

베테랑 감찰반원은 민원 부서를 드나드는 사람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그가 추적 대상인지 아닌지 금세 알 수 있다고 한다. 관공서나 주변의 커피숍에서 ‘돈 냄새’가 나는 민원인을 보면 감찰반원들은 곧바로 따라붙는다.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화장실이다. 두세 시간씩 화장실에서 기다리는 일은 예사다. 가끔씩 담을 타고 옆 칸을 슬며시 엿보기도 한다. 뇌물을 건네는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봉투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감찰반원은, 현장을 포착하고 변명할 여지가 없는 증거를 들이밀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한다. 현장에서 덜미가 잡힌 경우에도 혐의를 시인하는 사람은 열에 한둘이기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는 따로 방을 가지고 있어 현장을 은폐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한 시에서는, 업자가 돈 봉투를 들고 시장실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왔지만 시장이 끝내 수뢰 사실을 부인했다. 결국 감찰반이 돈을 찾아내자 그 시장은 기부금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정부투자기관의 한 간부가 산업자원부 실·국장 방에 돈봉투를 돌렸지만 봉투를 숨겨 유야무야된 일도 있었다. 또 ‘잠시 보관하고 있다’ ‘빌린 것이다’ 등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 수뢰자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대야 한다.

9년간 조사심의관실에 근무한 강 아무개 감사관은 “고위 공직자의 확실한 비위 정보를 수집해 검찰이나 경찰에 넘겼는데 수사 과정에서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가장 가슴 아프다. 수사 기능이 보강된다면 암행감찰반 기능이 배가되어 문제가 있는 고위 공직자를 확실히 붙들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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