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거리 3000㎞ 미사일 개발 진실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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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미사일 양해 각서’ 존재 안해
한국이 사정 거리 3백㎞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는 <조선일보> 4월19일자 보도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신문은 한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가 4월 초 서해안에서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연료를 조금 주입해 50㎞만 비행했다. 미국은 위성 자료를 근거로 “이 미사일의 사정 거리가 2백96㎞이다. 한국은 사실상 이 미사일을 개발했다. 이는 한·미 미사일 양해 각서를 위반한 것이다”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정말로 사정 거리 3백㎞ 미사일을 개발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한국은 수년 전에 사정 거리 3백㎞ 미사일 시제품을 만들어 극비리에 시험 비행을 해오고 있었다. 기자는 지난해 가을 이런 사실을 확인했으나, ‘우리 전력을 노출할 필요가 없다’는 국방 최고 책임자의 당부가 있어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불분명하게 보도한 ‘4월 초’는 4월10일을 말한다. 이 날 국과연은 국산 지대지 미사일 ‘현무’를 사거리 40㎞, 고도 38㎞로 시험 비행시켰다. 목적은 현무 소재 개발과 날개 개량이었다고 한다. 시험 발사를 앞두고 국과연은 사전에 이 시험 비행 계획을 한미연합사에 알렸다. 미군이 주축인 한미연합사에 통보한 것은 한미연합사가 항공 사고 등을 막기 위해 공역(空域)별 ‘고도 통제’를 담당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북한 미사일 위협 높아지자 묵인

4월12일 한미연합사는 국과연에 애초 통보한 대로 시험 발사가 이루어졌는지 물어왔고, 국과연은 ‘그렇다’고 답변했다. 소식통은 “이때 한미연합사는 사거리가 2백96㎞였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밖의 다른 문제도 거론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4월10일 한국이 (새로운)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는 보도는 맞지만, 한·미 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신문이 보도한 한·미 미사일 양해 각서는 실재하지 않는다. 90년 8월 미국은 현무 미사일 부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조건으로 ‘한국은 최대 사거리 1백80㎞, 탄두 중량 5백㎏을 넘는 어떠한 로켓 체제(any rocket system)도 갖지 않는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90년 10월 외무부는 안보정책과장 명의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대미(對美) 보장 서한’을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달했다. 80년대 후반 한국은 사거리 4백㎞인 ‘천룡(天龍)’ 미사일 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천룡은 ‘대미 보장 서한’에 가로막혀 탁상 공론으로 끝났다. 이 일을 계기로 ‘대미 보장 서한’이 ‘양해 각서’로 잘못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사일의 핵심 부품은 관성 유도 장치와 자이로·추진제, 무장 및 격발 장치 등이다. 북한같이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해 온 나라들은 엄청난 국력을 쏟아부어 이러한 부품을 개발했으나, 한국·영국·일본 등 자유 세계는 그러지 않았다.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부으면 못 만들 것도 없지만 이미 미국이 핵심 부품을 싸게 판매하므로 만들어 보았자 경제적으로 손해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미국은 자유 세계에 대한 미사일 핵심 부품 공급을 독점할 수 있었다.

‘양해 각서’는 어느 정도 구속력이 있지만, ‘보장 서한’은 법적으로 전혀 구속력이 없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 서한을 충실히 지켜 천룡 사업을 포기했다. 이러한 노력이 미국 정부에 ‘신뢰’를 주었다.

그런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높아지자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3백㎞를 비행할 수 있는 핵심 부품을 한국에 판매하는 사실’을 묵인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 덕분에 한국은 수년 전에 3백㎞를 비행하는 미사일 시제품을 완성해 시험 비행시켜 오고 있었다.

사정 거리 3백㎞ 미사일이 있으면 휴전선에서 신의주를 가격할 수 있다. 결국 북한의 섣부른 위협이 한·미간 미사일 공조를 강화한 셈이다. 한국의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과 관련된 한·미 갈등은 딱 하나이다. 미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 가입 뒤 민간의 로켓 개발 정보도 미국 정부에 알려 주기를 요구하고 있으나, 한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가 군사용 로켓만 통제하므로 군사용 로켓 정보만 통보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의 미사일기술통제체제 가입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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