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망월동의 핏빛 통곡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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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돌 맞은 광주 5·18, 항쟁 정신 계승 다짐
5·18 광주민중항쟁 유족회의 정수만 회장은 지난 81년 망월동에서 추모제를 지내다 국가보안법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영령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면서 추모사 가운데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문안이 들어 있었다는 게 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정씨가 죽은 동생의 추모제를 지낸 것은 집시법 위반이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해마다 5월만 되면 정씨를 비롯한 유족회원들은 경찰과 정보기관원에 붙잡혀 강제로 버스에 실린 채 광주를 떠나야 했다. 그들은 ‘폭동’을 일으킨 죄인을 아버지나 아들, 혹은 딸로 둔 죄 아닌 죄 때문에 마음놓고 울어보지도 못한 채 서슬퍼런 군사독재 치하에서 고통과 시련의 세월을 보냈다.

5·18 16주기를 맞은 올해 정씨는 기념행사를 총괄하는 민관 합동의 행사 기획단장을 맡아 광주시장·전남도지사와 나란히 유족회 대표로서 추모사를 낭독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다.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힌 것 뿐이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5월14일부터 시작된 추모기간 동안 하루 평균 1천여 명의 참배객이 망월동을 찾고 있다. 참배객들은 계엄군이 총을 들고 싸운 ‘시민군’만 죽인 게 아니라 남편을 기다리던 임산부도 무참하게 살해했고, 저수지에서 멱감던 어린 아이도 총을 쏴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광주 학살’의 끔찍함에 몸서리를 쳤다. 총상 후유증에 시달리는 부상자들도 이날은 진통제 주사를 맞아가며 참배객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설명하고 5·18 정신 계승을 호소했다.

역사는 이렇게 이어지는 것일까. 몇해 전만 해도 음습한 골방에서 숨죽여 돌려보던 <5·18항쟁 비디오>가 이제는 금남로 지하상가 ‘만남의 광장’과 망월동에서 공개적으로 상영되고 있다. 영·호남 종교인들은 광주의 아픔을 공유하고 지역주의를 넘어서자며 합동 진혼제를 지내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을 달랬다.

망월동 5·18 묘역에서 거행된 5·18 제 16주기 추념식에서 송언종 광주시장은 추모사를 낭독하며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아울러 5·18 정신이 광주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폭도’의 도시였던 광주는 1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독재정권에 저항한 인권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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