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공개로 되살아난 대선 자금 불씨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7.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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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92년 민자당 선거 자료 공개…“한 지구당에서 하루 1억원 써”
한동안 잠잠했던 92년 대선 자금 문제가 정가에서 또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국민회의 오길록 종합민원실장은 7월 임시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지난 6월30일, 92년 여당의 대선 자금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는 92년 대선 기간인 12월11일 하루 동안 당시 민자당 강동갑지구당(위원장 김동규 현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사용한 선거 자금 내역을 담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강동 갑구는 그 날 하루 각동 협의회 운영비 1천2백만원, 각동 지역장(투표구책) 1일 활동비 1천5백20만원, 각동 관리장(통책) 1일 활동비 4천4백20만원, 사랑방 좌담회 연사 27명 사례비 1천4백50만원 등 총 1억1백79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 갑구에 속해 있는 12개 동에 지급된 자금의 세부 내역까지 담고 있는 이 자료에는, 지구당위원장 직인은 없지만 김위원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인이 있다(오실장은 이 사인이 김동규 위원장의 ‘동’자 라고 주장하는 반면, 김씨는 평소 자신이 쓰는 사인과 다르다며 즉각 반박했다).

오실장은 지구당 한 곳에서 1억원 이상을 사용했다면, 선거 운동 기간 23일 동안 여당의 2백37개 지구당이 쓴 돈만 계산해도 5천5백억원이 넘는다면서, 이밖의 공·사 조직이 쓴 돈까지 합하면 92년에 민자당이 사용한 대선 자금은 총 1조3천억~1조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임시국회에서 파상적 공세 준비

국민회의는 이 자료가 공개된 것을 신호탄으로 삼아 7월 임시국회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신한국당에 대한 대선 자금 공세를 치열하게 벌일 방침이다. 7월2일 김근태 부총재의 당대표 연설은 물론이고, 본회의 대정부 질문과 각 상임위에서 대선 자금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작정이다. 김대중 총재의 한 핵심 측근은 “이번 임시국회의 핵심 과제는 92년 대선 자금을 규명하고 정치개혁법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12월 대선을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사실 국민회의로서는 이번 공개 자료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 같다. 꺼져가던 대선 자금 공세의 불씨를 다시 살릴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지난 4월 여야 영수회담 이후 김총재가 공세를 늦추어 대선 자금 논쟁이 사그라들자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앞으로 국민회의가 얼마나 집요하게 김대통령의 대선 자금을 물고늘어질지는, 이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들인 열성과 여러 번 조정한 공개 시점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오실장이 이 자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3월. 신한국당 강동갑지구당의 한 고위 간부가 술자리에서 “우리 지역구에도 대선 자금을 얼마나 썼는지 자료가 다 있는데 (대통령과 이회창 대표, 중앙당에서는) 없다고 한다”라고 무심결에 흘린 얘기를 그 자리에 있던 국민회의 한 당직자가 오실장에게 전했다. 그때부터 국민회의측은 석달에 걸친 끈질긴 설득 작업에 들어갔고, 마침내 지난 6월 중순 국민회의 현역 의원과 국장급 간부의 확인을 거친 이 자료가 오실장 손에 전달되었다. 오실장의 보고를 받은 고위 간부들은 발표 시점을 놓고 고민하다 임시국회 공고가 나온 직후로 결정했다. 미리 발표했다가는 개원 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뿐 아니라, 자칫 민생은 뒷전인 채 정치 공세에만 열을 올린다고 역공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7·21 경선을 앞두고 가뜩이나 심각한 내분에 휩싸인 신한국당은 뜻밖에 불거진 야당의 대선 자금 공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만약 국민회의가 폭로한 자료가 진품이라면 ‘자료가 없어 공개 못한다’던 김대통령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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