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명예 퇴직은 레에디 퍼스트?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11.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 노동자들, ‘불법 우선 해고’ 거리 투쟁
김대중 정부 들어 새로운 시위 명소로 떠오른 서울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 앞. 10월30일 이곳에 집결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등 4개 단체의 여성 노동자들은 피를 토했다. “왜 여자들만 퇴출되나요?”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그칠 줄 모르고 진행되는 여성 노동자들의 ‘불법 우선 해고’에 대해 이들은 올 들어 네 번째 길거리 투쟁에 나섰다. 이들로서는 10월이 ‘남녀 고용 평등의 달’인 것에 더욱 설움이 복받치는 듯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제 여성은 ‘일자리가 줄어들면 빨리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하는 2군 노동자’이다. 남성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일자리를 잃거나 비정규직 또는 주변부로 밀려나 수십 년간 공들여 쌓아 온 노동자로서의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실업률 통계마저 믿을 수 없다. 취업을 포기해 ‘주부’로 눌러앉은 ‘실망 실업자’가 엄청나게 많은 탓이다.

지금 기업에서는 온갖 성차별이 난무한다. 남자 직원을 우선 배치한 후 여성들을 기존 업무와 너무나 동떨어진 분야에 발령 내어 ‘자발적으로’ 나가게 하거나 여직원만을 상대로 결코 희망하지 않는 ‘희망 퇴직’을 받은 뒤 비정규직으로 다시 채용하는 ‘온정’을 베푸는 것은 그나마 점잖은 경우에 속한다. 아예 맨몸으로 내쫓기는 여성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이들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모는 것은‘여성은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라. 가장을 퇴출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사회 통념. 그러나 과연 여성들은 내쫓겨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것일까. 당장 8만5천여 명의 여성 실직 가장들은 겨울 나기가 어려우며, 2백만명에 달하는 여성 가장이 실직 공포에 떨고 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대량 학살은 왜 구조 조정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여자니까 밀어낸다는 불합리한 풍토야말로 우리가 조정해야 할 구조가 아닐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