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가엾은 해군의 명예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6.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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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환 대령, 고미술상에 가짜 별황자 총통 제작 책임 떠넘겨
92년 8월18일 충무공 해전 유물 발굴단이 경남 통영군 한산도 문어포 서북방 4백60m 수역 해저에서 인양한 별황자 총통(別黃字 銃筒)은 역사학계와 해군 모두를 만족시키는 역사적인 유물이었다. 역사학계는 총통 포신에 제조 일자(萬曆丙申六月日 造上:임진왜란 중인 1596년 음력 6월 제조)와 거북선이 실존했음을 증명하는 ‘龜艦’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주목했다. 해군은 ‘거북선의 황자 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을 쏘아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라는 구호성 글귀가 새겨진 사실 때문에 더욱 흥분했다. 이후 해군 주요 부대마다 ‘一射敵船 必水葬’이라는 구호가 자랑스럽게 나붙었다.

 
그해 9월4일 별황자 총통은 전례 없이 빠르게 국보 247호로 지정되었다. 38t급 소형 탐사정 한 척과 운영 요원 30명인 초미니 발굴단으로서는 믿기 어려우리만큼 큰 업적을 올린 것이기에, 발굴단장 황동환 대령(해사 22기)에게는 보국훈장 삼일장이 수여되었다. 황대령은 93년 10월 서해 위도 페리호 침몰 사건 때 사망자를 인양했던 해난구조대(SSU) 전대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바다와 싸워온 항해 병과 장교였다. 유물 발굴과는 거리가 먼 경력이었지만 총통을 인양함으로써 그는 제독으로 진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별을 달지 못해, 내년 3월 계급 정년으로 퇴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검찰에 소환될 때까지 그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별황자 총통 인양을 전후해 발굴단은 총통을 여러 개 인양했다. 그러나 인양한 수역이 하나같이 수십 년 전부터 잠수부가 들어가 조개를 채취하던 곳이라, 발굴단이 인양할 때까지 어떻게 총통들이 남아 있었을까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더구나 10여년 전 인양되어 시중에서 유통되던 총통이 사라진 시기와, 발굴단이 새로운 총통을 인양한 시기가 묘하게 겹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육지에서 거래되던 총통을 바다에 빠뜨려 다시 인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러나 해군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별황자 총통 모조품을 대량 제작해 해군 순양분대가 외국을 방문할 때나 외국에서 해군 고위 관계자가 왔을 때 이를 선물해왔기 때문이다.

자살한 미국 해군참모총장 부다와 대비

순천지청 지익상 검사(32)가 총통 인양에 얽힌 소문을 들은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지검사는 문화재 보호 구역 안의 피조개 채취 허가를 받아준다며 어민들로부터 4천4백여만원을 받아 각 기관에 뿌린 혐의로 수산업자 홍무웅씨를 붙잡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황대령에게 9백만원을, 그밖의 관계 기관에도 돈을 뿌렸다”라는 진술과 함께 “언젠가 황대령으로부터 별황자 총통을 가짜로 만들어 바다 속에 빠뜨린 후 이를 인양해 국보로 지정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지검사는 임관 4년차인 초임 검사지만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건 직후 신순범 의원과 여천군수 등이 호유해운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을 밝혀내는 등 감각이 있는 수사 검사였다. 지검사는 즉시 황대령을 불러 진위 여부를 물었으나 그는 강하게 부정했다. 둘만이 마주한 자리에서 지검사가 해군 장교의 명예를 걸고 사실을 밝혀달라고 하자, 황대령은 아주 괴로워하다 “해사 박물관장 조성도 대령(사망)과 신휴철이라는 고미술상이 함께 관여했다”라고 실토했다.

마약 검사로 유명한 유창종 순천지청장은 와당에 관해 많이 공부해 고미술계에 아는 사람이 많았다. 보고를 받은 유지청장이 고미술협회 등에 신휴철씨에 대해 문의하자 “신씨는 쇠붙이 유물 분야 전문가다. 그가 손을 댔으면 거의 틀림없이 가짜일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씨를 검거해 조사하자 신씨는 “조성도 대령이 써준 한문 글귀를 총통에 새겨넣었다”라고 진술했다. 황대령은 신씨에게, 신씨는 조대령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별황자 총통 국보 조작 사건은 해군사관학교에 초점을 두고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충무공의 후예를 배출하는 해사의 교훈은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해사 출신 장교의 자세는 ‘허위를 구하자, 진리를 버리자, 핑계를 대자’였다. 지난 5월 월남전에서 지원단으로 근무했던 부다 미국 해군 참모총장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베트남전 ‘참전 기장’을 달고 다닌 것이 문제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연 한국 해군 장교는 명예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이 해군에 던진 진정한 질문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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