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일본 방문 성과와 한계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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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층·국민의 역사 인식 ‘한·일 공동 선언’과 거리… 독도 문제 등 갈등 불씨 잔존
김대중 대통령은 10일 귀국 보고 기자회견에서 과거사 문제 결착(決着)과, 양국간 협력 문제 진전을 이번 방일의 최대 성과라고 자평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8일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 협력에 입각한 미래 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화답했다.

한·일 양국은 이같은 사죄 표명과 수용을 8일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에 명기하는 것으로 과거사 문제를 일단락하기로 합의했다.

지한파는 공동 선언 높이 평가

오부치 총리의 이번 사죄 발언을 뜯어보면 과거의 일본 총리 담화 내용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지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93년 11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가 방한해 일본어 사용 강제, 창씨 개명, 군대 위안부와 노동자 강제 연행 등 구체적 가해 사실을 열거하며 진사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사죄 내용이 크게 후퇴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담화에 비해 오부치 총리의 이번 사죄 표명이 가해 사실을 ‘식민지 지배’라고 명기하고, 사죄 대상을 ‘한국 국민’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해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여론도 일본을 속속들이 잘아는 김대통령의 역사적 방일과 사죄 표명 문서화로 일단 과거사 문제에 결착이 났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자민당 보수 우파의 대부 격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9일 낮 역대 총리와 야당 지도자들이 참석한 김대통령 환영 오찬회에서 “공동 선언은 획기적인 역사적 문서라고 생각한다.(20세기에 일어난 일은 20세기 중에 마감하고,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함께 열어 가자고 호소한) 김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한반도 문제 귄위자인 게이오 대학의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교수도 <마이니치 신분(每日新聞)>과 인터뷰에서 “공동 선언은 65년의 한·일 기본조약을 실질적으로 수정하는 의미를 갖고 있는 역사적 문서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최근의 한국 대학생 여론 조사에서 일본의 금융 지원과 투자 확대를 기대하는 학생이 과반수를 넘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공동 선언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현실이 과거의 역사를 추월하고 있는 현상을 이번에 추인한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나 오코노기 교수는 한국을 잘아는 지한파이다. 따라서 그들의 논평에는 의례적인 용어가 삽입되어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골수 반한파 인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본의 식민지 통치 시절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는 망언으로 총무처 장관 직을 사임했던 에토 가쓰미(江藤絳美) 전 총무처 장관. 그는 공동 선언이 발표된 이튿날 열린 자민당 총무회에서 한·일 기본조약으로 역사 문제는 이미 결착이 났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만 “이번을 기회로 두 번 다시 사죄가 한·일 양국의 의제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공동 선언을) 평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종군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격렬하게 한국을 비판해 온 여류 작가 가미사카 후유코(上板冬子)씨는 <아사히 신분(朝日新聞)>과 인터뷰에서 “아직도 일본은 사죄를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심정으로 수뇌 회담을 지켜 보았으나, 일본이 또 한 번 사죄하는 방식으로 공동 선언에 역사적인 결착이 명기되었다는 것에 호감을 느낀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그는 “오부치 총리의 사죄 문안에 ‘다대한’‘통절’‘마음 속으로부터’와 같은 불필요한 형용사가 많았는데 ‘유감’정도면 좋았겠다”라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일본의 국내 여론이 과거사 문제 일단락을 환영하는 분위기로 돌아선 것은 일본 언론들의 표현을 빌리면 ‘선비 같은 논리와 상인 같은 현실 감각을 갖춘’ 김대통령의 대일 접근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국회 연설 등에서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 역사와 패전 후 일본의 역사를 구분해서 평가하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김대통령은 8일 국회 연설에서 “일본 스스로 과거를 바르게 인식하고 겸허하게 반성하는 결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은 아직도 일본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 뒤 달성한 의회제 민주주의 정착, 경제 고도 성장, 피폭 체험에 의거한 비핵 정책과 평화헌법, 개발 도상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들어 “아시아 각국의 국민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라며 패전 뒤의 역사를 평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또 한국의 외환 위기 때 일본이 보여준 지원을 낱낱이 열거하며, 일본의 협력에 감사하다는 말을 곳곳에서 되풀이했다.

일본 언론들은 김대통령의 이같은 대일 접근 방식을 ‘대일 햇볕 정책’이라고 명명하고, 한·일 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제안하며 김대통령이 던진 공을 일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다시 한국측에 어떻게 돌려주느냐 하는 문제가 앞으로의 과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를 일단락하겠다는 역사적 공동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65년 체제(한·일 기본조약 체제)’ 즉 유착과 반목을 되풀이한 시대에서 곧바로 ‘2002년 체제(월드컵 공동 개최 체제)’ 즉 국민적 협력의 시대로 접어든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보수 우파 “천황 방한은 시기 상조”

우선 일본 지도층 인사들과 일반 국민의 역사 인식이 공동 성명의 역사 인식과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 예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찬미한 영화 <프라이드, 운명의 순간>이 지난봄 버젓이 일본 전국에서 개봉되었고,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은 자위 전쟁이었다’고 외치는 만화 <전쟁론>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일본이다.

역사적 공동 선언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내에는 기회가 오면 자청해서 역사 왜곡 발언을 자행할 ‘망언 예비군’이 우글거리고 있다. 예컨대 오부치 내각의 각료 중 13명이 지난 8월15일 A급 전범을 함께 제사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당당히 참배했다. 따지고 보면 오부치 총리 자신이 얼마 전까지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회장을 맡아 왔다. 또 9일 열린 자민당 총무회에서는 ‘오부치 총리가 사죄를 표명한 대가로 한국측에 반일 교육과 반일적 보도를 삼가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발언이 잇따랐다고 전해진다.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공동 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후퇴시킬 가능성도 있다. 아키히토 방한은 한국의 환영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일본 국내 여론에도 큰 문제가 있는 현안이다. 예컨대 일본의 보수 우파는 한국과의 월드컵 공동 개최를 한사코 반대해 왔다. 공동 개최할 경우 한국에서 열리는 개막식에 공동 개최국의 국가 원수로서 아키히토가 필연적으로 참석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일본의 보수 우파는 그밖에도 한국 언론들이 천황을 일왕으로 표기한다는 사실, 반일 데모대들의 천황 허수아비 화형식, 독도 문제 등을 거론하며 천황 방한은 시기 상조라고 압력을 가해 왔다.

그밖에도 재일동포 지방 참정권 문제, 종군 위안부 국가 보상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경제 협력 진척 여부 등 공동 선언문을 휴지조각처럼 태워 버릴 불씨가 아직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공동 선언이 과거사 문제의 대단원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지적을 곰곰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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