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포기 비용, 한국도 낼 것"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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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부시 '한반도 정책 관련 회담' 내용 긴급 입수

사진설명 "내가 가야 합니다" : 지난 12월19일 회동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부시 당선자에게 자기가 북한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지난 12월19일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이후 처음 만났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날 두 사람은 미국 경제 문제를 둘러싸고 약간 입씨름을 벌이는 등 덕담만 나누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같이 다소 썰렁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이 이 날 한반도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얘기를 전개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물론 자신의 북한 방문이라는 현안이 걸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과거 이런 자리에서 한반도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한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 방문 문제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동북아 정세 및 북·미 관계 해법 등에 대한 견해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 중에는 한국 정부가 주목할 부분도 있다. <시사저널>이 워싱턴 정가 움직임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통해 취합한 주요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부시 당선자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말 북한에 가고자 하는가"라고 물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에 대해 "그렇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어서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이 북한에 가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우선 자기 개인의 외교적 업적을 위해서 방북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 외교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미국 외교가 당면한 과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세계 외교 무대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동북아 정세와 관련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유럽과 달리 중국·일본·러시아 등 지역 강국 간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거기에 한반도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미국이 어떻게 이니셔티브를 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 21세기 미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북한 방문, 그리고 그것을 통한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 정상화야말로 미국이 이같은 외교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열쇠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북한과 손을 잡게 되면 미국은 중국·러시아·일본·한국과의 관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협상 지렛대를 갖게 된다는 지적이다.


양측 고위 측근, 대북 정책 이미 협의

클린턴 대통령은 동북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정세 인식과 더불어 자기가 지금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놓는 것이 결국에는 부시 행정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북한의 핵·미사일·테러 문제 등을 해결할 기회가 온 만큼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특히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비용 분담 문제에 대해서까지 상세하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설명의 요점은 이렇다. 우선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례상 들어가는 최소한의 비용' 외에는 추가 부담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부시 당선자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비용은 일본이 지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지난해 9월 베를린 미사일 회담 이후 공공연하게 언급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한국과 관련한 부분이다. 그동안 미사일 문제에 대한 한국의 비용 부담 문제는 공식으로는 거의 언급된 적이 없다. 또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이미 경수로 공사 비용의 70%를 대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 문제에까지 돈을 낼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런데 이 날 클린턴 대통령은 부시 당선자에게 한국도 일정한 비용을 내게 되리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주목할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와 가진 대화에서 언급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 사람의 회동에 앞서 양측 고위 측근은 현안에 대해 사전 조율을 한 상태였다. 예를 들어 2000년 12월17일에는 웬디 셔먼 북한 정책 조정관과 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특사가, 18·19일에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서 차기 정부의 외교 안보 담당자들에게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따라서 이 날 두 사람의 회동은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한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문제는 2000년 12월23일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었을까. 12월19일 두 사람이 회동하고 난 뒤 잠시 동안 그의 방북이 초읽기에 들어간 듯했다. 그러나 바로 며칠 뒤 미국 행정부가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을 포기했고 북·미 관계 현안을 차기 정부로 넘겼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졌다. 왜 반전되었을까.

우선 미국 행정부가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에 가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측에 전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12월 중순 미국 행정부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와 평양의 제3국 외교공관 두 채널을 통해 '북한이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포기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포기와 관련한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다.


북한, 클린턴 맞을 준비 한창

그러나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워싱턴의 유력한 소식통은 "미국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일 뿐,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잘라 말했다. 2000년 12월23일 현재 정확한 것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미국 행정부의 메시지를 평양에 이미 전하고 평양으로부터 올 회신을 기다리고 있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 소식통에 따르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실무를 담당하는 북한대표부의 분위기는 아직까지 밝다. 클린턴 대통령이 결국 방북할 것으로 보고 준비 작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또 하나 의문은 미국측이 언급한 '북한의 준비'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10월부터 조명록 방미·올브라이트 방북·미사일 협상 등을 거치면서 현안을 놓고 조율해 왔는데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그동안 흘러나온 얘기는,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하기 전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달라는 미국측 주장과, 차기 정부에서도 양측 합의 사항이 지켜질 것이라는 점을 담보하라는 북측 주장 간에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 외에도 의외의 복병이 있을지 모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북·미 접촉 과정을 보면 테러 문제는 이미 조명록 특사 방미 때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및 중·단거리 미사일 수출 문제에 대한 해법도 거의 가닥이 잡힌 상태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현안이면서도 그 동안 표면에 등장하지 않은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노동 미사일을 개발·생산·배치하는 문제다. 노동 미사일은 일본을 겨냥하고 있는데, 일본은 그동안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미사일 분담금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클린턴 대통령이 일본 돈으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또 북한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과 일본에 들러 협상 결과를 설명할 계획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동안 미국측이 수면 아래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 미사일 문제는 북한측으로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1999년 말께 북·미간, 그리고 미·일간 절충 과정에서 일본이 이를 위해 약 50억 달러를 낼 수 있다는 의사를 비쳤지만, 과연 임기를 다한 클린턴 대통령과 이 문제까지 협의해도 괜찮을지에 대해서는 북한측도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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