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배신과 희생양
  • 김은남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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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파문’ 최대 피해자는 팬클럽 회원들…비판 화살 막는 방패 노릇도

가수 유승준씨(26)를 둘러싼 파문의 불똥이 엉뚱한 데로 옮겨 붙었다.
군 입대를 앞둔 유씨가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사실이 지난 1월18일에
알려진 직후부터 이른바 ‘안티 유승준’ 사이트와 유씨 팬클럽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공격을 먼저 개시한 것은 안티 사이트 쪽이었다. 유씨는 본래 안티
사이트가 거의 없기로 정평이 난 가수였다. 독실한 신앙인이면서 생활
태도가 반듯한 ‘아름다운 청년’의 이미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씨를 반대하는 사이트가 순식간에 폭증했다. 스티브
류(유씨의 미국명) 안티 사이트(myhome.naver.com/ fm0004) 등이 그것이다.


안티 사이트 회원은 대부분 남성


이들 사이트는 사이버 세계를 넘어 현실 세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씨의 입국을 허가해서는 안된다는 이들의 압력에 시달린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국은 1월26일 유씨의 입국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전례는 없었지만 국민 정서를 감안해, 병무청 공문을 접수하는
대로 유씨의 입국 규제 여부를 결정하겠다”라는 것이 입국심사과 관계자의
말이다.


이에 맞서 유승준 팬클럽도 움직였다. 공식 팬클럽인 ‘웨스트 사이드’를
비롯해 ‘유승준, 너는 우리가 지킨다’와 같은 이름을 내건 각종 팬클럽은
안티 사이트는 물론 유씨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언론사에도 항의성 메일을
퍼부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팬클럽 회원 대부분이 여성인 데 반해 안티
사이트는 남성 회원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한 안티 사이트 운영자(26·대학생)는
‘10대 고등학생에서 40대 예비역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성이 고루
안티 사이트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유씨 팬에게 ‘유승준을
편드는 여자들을 군대에 보내, 갖은 쇼로 군 복무를 대신하게 하자’와
같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빠순이(팬클럽을 일컫는
비속어)와 개는 출입 금지’라고 써붙인 안티 사이트도 있다.


이른바 ‘군 가산점 논쟁’에 이어 다시 한번 터져 나온 ‘예비역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희생양이 오히려 유씨
팬클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인기 가수의 팬클럽을 이끌고
있는 강 아무개씨에 따르면, 유씨와 팬클럽 사이는 유별나게 돈독했다고
한다.


여러 스타가 뒤엉켜 나오는 방송국 공개 무대에서도 유씨는 늘 팬클럽이
앉아 있는 객석 쪽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인터뷰를 할 때 그는 예의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헌사와 함께 팬클럽에 대한 감사의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 그를 팬들은 ‘아기 예수 승준’이라며 맹목적으로
추종했다. 개중에는 유씨가 다니는 교회에 잠입해 그의 기도를 몰래
녹음해 가는 팬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씨는 이들을 배신했다. ‘서른이 넘어도 나를 사랑해 줄
건가요?’ ‘군대에 다녀와도 나를 기다려 줄 건가요?’ 하고 속삭이던
그는 가장 가까웠던 이들에게조차 단 한마디 언질 없이 미국 시민권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배신감을 곱씹을 새도 없이 유씨의 ‘인간
방패’로 나서야 했다. 오는 2월3일, 안티 사이트는 유승준 팬클럽 사이트를
총공격하는 사이버 시위를 벌이겠다고 공고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간 데 없이, 그를 믿고 따르던 순진한 10대들만 분노의 속죄양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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