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에 감긴 세 가지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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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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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파, 북한 미사일 포기·남한 견제·F15 판매 노려 ‘긴장’ 조성
워싱턴·이창주 (KGF 국제관계연구소장)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 국정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 구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외교 수사로는 지나치게 적대적인, ‘악의 축(axis of evil)’이라는 말로 북한을 규정한 것이다. 당사국인 북한 처지에서는 `‘선전 포고와 다름없는’ 폭력적 언사이다. 한승수 주미대사를 갑자기 경질하는 등 우리 정부도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성 메시지를 미국 내 어떤 세력이 작성했으며 그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워싱턴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대북 발언의 주요 논점과 방향은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그리고 백악관 안보회의 등 세 팀이 주도했다. 그리고 부시 사단이라고 불리는 행정부와 공화당 상층부가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사단’, 연설문 작성에 깊이 개입



소식통에 따르면 중앙정보국은 최근 부시의 국정연설 참고 자료로 북한 관련 `‘타깃 리포트(Target Report)’를 백악관과 의회에 제출했다. 보고서의 주요 골자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이 탄도 미사일 개발과 판매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핵무기 1∼2개를 생산하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에 활용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기술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은 국민을 기아에 허덕이게 하면서 미사일과 대량 살상 무기로 무장한 위험한 국가라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 들어 중앙정보국 북한팀의 대북 공작 방향은 크게 바뀌었다. 북한을 연착륙시키려 했던 클린턴 정부 시절의 공작 방향이 ‘김정일 체제 붕괴’를 유도하는 쪽으로 변한 것이다. 국방부에서는 럼스펠드 장관을 주축으로 한 폴 월포위츠 부장관, 국무부에서는 아미티지 부장관이 개인 자격으로 연두 회견문 내용 결정 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문안을 마지막으로 다듬은 인물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럼스펠드 장관이라는 것이 워싱턴 소식통들의 견해이다.



미국 행정부의 대표적 매파 트리오인 체니 부통령·럼스펠드 국방장관·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그리고 공화당 극우 트리오인 크리스토퍼 콕스 정책위 의장·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제시 헬름스 전 상원 외교위원장 등이 현재 부시 사단에서 한반도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들은 특히 북한의 무장 해제를 유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름하여 부시 행정부의 ‘세계 제패 드림팀’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바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한국의 대북 화해 정책에 찬물을 끼얹어 온 장본인들이다.



부시 대통령의 외교 관련 현안은 콘돌리자 라이스 보좌관이 최종적으로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라이스 보좌관을 추천한 세력은 서부의 대표적 공화당 원로인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이 이끄는 스탠퍼드 대학 팀이다. 스탠퍼드 대학은 공화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이런 세력들에 의해 뒷받침된 라이스 보좌관은 그 내력이나 이념에서 아버지 부시로부터 이어져온 부시 독트린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2년 북·미 관계는 핵사찰 문제를 둘러싸고 격돌 직전 상황까지 간 바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공격까지 염두에 둔 최악의 시나리오를 수립했다. 현 부시 대통령의 뿌리 깊은 북한 불신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는 역할을 라이스 보좌관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행정부 내 또 한 사람의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 딕 체니 국방장관 밑에서 차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1991·1992년 북한 핵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북의 핵 처리 능력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쳐 한반도에 전운을 감돌게 하는 데 한몫 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임기를 마치고 복귀하면서 북한 유엔대표부 이형철 대사는 미국의 대북 강성 기류가 상존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조·미 관계는 잘 풀려 나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당시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잭 프리처드 미국 국무부 한반도평화담당 특사와 송별 오찬을 하며 미국의 구상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프리처드 특사는 새로 부임한 박길연 대사와도 지난 1월10일 뉴욕에서 회담했다. 당시 대표부의 한 인사는 북·미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뉴욕 채널이 가동되고 있음을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에 워싱턴에서는 ‘세계 제패 드림팀’에 의해 대북 문제와 관련한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 문안이 정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중 대외 정책 부분은 국무부가 중심이 되어 작성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번에는 국무부 한반도 담당 팀이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즉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비둘기파의 언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한국에 동조세력 많다’ 판단한 듯



그렇다면 부시 정부가 포용 정책을 펴는 한국 정부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은 한국의 정계와 언론에 자신들의 동조 세력이 많다고 믿는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 의지대로 한국을 요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파악된 바에 따르면, 부시 정권 상층부가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이면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요구해온 것들, 즉 재래식 무기 후방 재배치, 미사일 개발 및 수출 포기, 대량살상무기 개발 중단 등을 더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한 연구원은 “현재의 국방 안보팀이 존재하는 한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어떤 형태로든 수용하지 않는다면 북·미 관계 진전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둘째는, 한국 정부의 북한 접근 정책에 대해 미국이 간섭하고 통제하겠다는 간접 메시지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는 미국 의회 한반도 관련 전문위원은 미국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한국의 대북 접근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견지해온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셋째,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 선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는, 미국이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국에 F15 전투기 대대를 배치했으며,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의 공군력 증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같은 주장은 최근 북한 군사력에 대한 평가가 미국의 필요에 의해 과장되었다는 미국 언론 및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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