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틀러의 ‘새 보수’ ‘헌 보수’ 앞에 쩔쩔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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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보수파에 밀려 ‘제3 특검법안’ 주도 잇단 실수로 ‘불안한 입지’ 자초
합리적 보수 노선을 추구하겠다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강경 노선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7월11일 한나라당이 본회의에 상정키로 한 ‘제3 특검법안’을 주도했다.

제3 특검법안은 ‘1백50억원+α’뿐만 아니라 5억 달러 대북 송금, 북한의 고폭 시험까지 범위에 포함한 법안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이 법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어 향후 정국이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치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너무 일찍 한계 드러내는 것 아니냐”

대표가 된 직후 최대표 주변 참모들은 그에게 ‘이제는 당원보다 국민에게 눈높이를 맞추라’고 조언했다. 이른바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큰 만큼 이제는 민심의 흐름을 따라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대표는 당내 강경 보수 세력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욕을 보였던 보수 개혁 프로그램이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변한 것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새로운 보수’라는 기치를 높이 들었던 그가 너무 일찍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당권을 쥔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그의 입지가 이처럼 좁아진 데는 ‘입’이 한몫을 했다. 대표 경선에 출마했던 이재오 의원은 7월11일 최대표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최대표는 대표가 된 뒤 젊은 후보론, 노무현 대통령 불인정론 등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다. 말을 아끼고 당을 개혁할 수 있는 방안과 경제를 살릴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말’로 곤욕을 치른 노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겠다던 최대표가 오히려 그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의원이 말한 대로 최대표는 현재 ‘붕 떠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원’과 ‘대표’를 넘나드는 그의 언행이 그것을 보여준다. ‘국정 능력이 없는 장관들에 대해서는 해임안을 내겠다’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라는 등 그가 최근 쏟아낸 말들은 평의원이나 원내총무라면 몰라도 대표로서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큰 방향을 제시해야 할 최대표가 각론에 매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최대 황금기를 맞았기 때문인지 최대표는 6월26일 대표에 당선된 직후부터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대표 수락사를 하면서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며 연설을 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최대표 체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가 ‘단독 플레이’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대표가 강한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어 두루 의견을 듣고 사안을 결정하기보다 독선에 흐를 수 있다고 염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경선 초기 최대표는 참모들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지 않았다. 부산 연설회에서 돌출된 ‘이회창 삼고초려론’도 참모들은 전혀 알지 못했던 사항이었다. 이런 식이면 뭐하러 연설문을 쓰느냐며 참모들이 나자빠진 뒤에야 최대표는 원고대로 연설을 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내부에서 이런 저런 구설과 불협화음이 나온 것도 최대표의 입지를 좁혔다. 정치를 담당하는 제1정책조정위원장과 경제를 담당하는 제2정책조정위원장에 경험이 많지 않은 원유철 의원과 김성식 위원장을 임명한 것이나, 애초 초·재선 그룹으로 특보단을 구성하려고 했다가 3선급 중진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젊은 남녀 대변인’이라는 새로운 실험으로 주목되었던 박 진·김영선 의원의 공동 대변인 체제도 삐걱거리고 있다. 애초 김의원은 대표 수행과 관련한 브리핑, 박의원은 당무와 관련한 브리핑을 각각 맡기로 했으나, 고유 업무 영역을 서로 먼저 나서서 브리핑하려는 모습이 드러나는 등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이처럼 최대표 체제가 당내에서 안착하지 못하는 사이 움츠러들었던 당내 보수 그룹과 경쟁자들은 속속 기지개를 켜고 있다. 최대표의 한 측근은 최대표가 ‘1백50억원을 밝히는 것’으로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한 입장을 정했다가 다시 대북 송금 의혹 전반을 조사해야 한다는 강경론으로 돌아선 배경에는 당내 보수파의 압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홍사덕 총무가 ‘1백50억원+α’(제2특검법안)로 한정하는 특검법안을 법사위에서 전격 통과시킨 데 대해 이해구 의원 등 당내 보수파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최대표가 제3 특검법안을 주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7월10일 당 운영위원회에서 김용수 위원장 등 ‘서청원계’ 인사들이 최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예사롭지 않은 흐름이다. 이에 대해 원희룡 기획위원장은 최대표의 실수를 틈타 각 세력이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형준 교수(명지대·정치학)는 “당무 전반을 조정하고 기획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기획력과 경륜이 있는 인사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대표가 참모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듣고 시스템에 의해 당무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표가 보수 세력의 새로운 리더로 자리 잡는 데 실패한다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다른 분화를 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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