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녹색당, 대안 정당에서 집권 세력으로 ...
  • 김은남 (ken@sisapress.com)
  • 승인 200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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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녹색당의 어제와 오늘/변화 주도 위한 ‘현실주의’로 선회
서유럽의 사회운동이 정치 세력화한 상징은 녹색당이다. 1960년대 학생·반전 운동의 동력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환경·반핵·여성·평화·제3세계 운동으로 다양하게 분화했다. 이러한 부문 운동은 좌나 우에 기반을 두었던 이전의 운동과는 모습을 달리했다. 주체와 대상이 범계급적이고 범사회적이었다. 권력 확보보다는 사회적 가치의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좌파든 우파든 기성 정당 체제는 이들 신사회운동이 제시하는 가치를 적극 수용하기에는 너무 비대했거나 굳어져 버렸다. 정치 체제가 시민 사회의 새로운 인식과 운동에 대응할 수 없는 조건에서 다양한 신사회 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를 묶어 정치 세력화한 것이 녹색당이었다. 그래서 녹색당 대두는 전복적이다.

첫째는, 가치 전복이다. 녹색당은 기성 정당이 크게 중요시하지 않던 가치들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 1972년 뉴질랜드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전국적 녹색당인 가치당(values party)은 제로 경제성장이라는 구호로 이미 좌우파 모두에게 익숙한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했고, 동성애·마약 등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를 정당의 주요 입장으로 제시했다. 1980년 독일 녹색당이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채택한 4대 원칙(생태주의·비폭력·사회적 책임·풀뿌리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생태계 보호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원리를 정당 운영에까지 수용하고자 한 생태주의, 국가에 의한 폭력이나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거부한다는 비폭력 등을 정당의 핵심 가치로 삼은 것은 기존 정당의 일반적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둘째는, 방식 전복이다. 녹색당은 권력 획득보다는 정치 운동으로 사회적 가치 변화를 추구했다. 이런 차원에서 녹색당은 정당이 아닌 정당, 대안 정당을 추구했다. 독일 녹색당뿐만 아니라 유럽 녹색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던 페트라 켈리는 선거를 생명을 위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녹색당 출신 장관이 생겨 연방 정부에 입각한다면, 그건 우리가 최초에 기획한 정당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평등주의에 입각해 당의 집행부뿐만 아니라 의원 직위를 당원들이 돌아가며 맡도록 한 것은 기존 정당 체제를 전복한 대표적 사례였다.

기성 정당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새로움은 녹색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실제 정치 역량 이상의 관심을 얻도록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정당 체제 실험은 내부의 끊임없는 불안정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다양한 부문 운동과 좌우파를 망라하는 무지개 연합이라는 성격과 광범위한 토론을 통한 합의라는 원칙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이상적으로 실천하기 보다는 갈등의 요인이 되기 십상이었다. 결국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녹색당 등 유럽의 주요 녹색당은 내부 분란과 이합집산을 거듭해야 했다.

독일·프랑스·핀란드에서 집권

하지만 이런 과정은 새로운 실험을 위한 통과 의례였고, 많은 국가에서 녹색당이 의회에 진입하거나 연립정부 파트너로서 집권당이 되고 있다. 녹색당의 연방 의회 진입은 1980년대 독일 벨기에 스위스 룩셈부르크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1990년대에는 핀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탈리아로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말에 들어서 독일 프랑스 핀란드에서는 녹색당이 집권 세력이 되었다. 독일 녹색당의 경우 1983년 최초로 연방 의회에 진출한 지 15년 만에 이룬 집권이었다.

이들 녹색당의 집권은 출발 때 가졌던 대안 정당 추구라는 ‘근본주의’ 입장에서 기회가 되면 권력을 맡아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현실주의’ 입장으로 전환했음을 뜻한다. 이런 입장과 위상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도 있었지만, 지난 십수 년간의 의회 활동 경험은 이런 변화를 수용하게 하였다. 결국 기성 정당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현실의 제약 속에서도 대안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의 탈 핵에너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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