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풍 맞바람 ‘張風’, 정치권 강타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9.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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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중씨 “DJ 정부 대북 밀사로 활약했다” 법정 진술…여야 공방 가열
드디어 총풍이 ‘장풍’으로 변했다. 총풍 3인의 핵심 인물로 구속된 장석중씨가 법정에서, 자신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 밀사로 활약했다고 증언하면서 상황이 돌변한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목을 조이던 총풍은, 이제 거꾸로 김대중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쟁점은 단순하지만 장씨의 진술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장씨는 지난 12월19일 법정에서 “98년 1월 김순권 박사와 동행해서 방북했을 때 ‘신정부 출범 이후 남북한 직접 대화 채널을 개설해 고위급 회담을 주선하고, 잘되면 정상 회담까지 성사시키자’는 김대중 당선자의 구두 메시지를 임동원 당시 아태재단 사무총장으로부터 전해 듣고, 이를 북한의 안병수 조평통 부위원장에게 전달했다”라면서 자신이 현정부에서 대북 밀사로 활약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장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난해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한 차관급 비료 회담이 성사되었다고 진술했다.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에 비료를 지원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한 대화 채널을 확대한다는 것이 현정부의 계획이라는 얘기이다.

‘북한에 10억 달러 제공설’ 제기…국민회의 반박

장씨는 이밖에 자신의 역할과 관련된 몇 가지 중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97년 대선 과정에서 국민회의가 북측에 북풍을 자제하면 집권 이후 1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순권 박사가 98년 1월 방북 때 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으로부터 천만원, 김대중 당선자로부터 만 달러를 여행 경비로 받았다는 것이다(이 대목은 북한 아태평화위 참사 리철운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음).

장씨의 이와 같은 법정 진술이 알려지자마자 정치권은 즉각 공방전에 돌입했다. 특히 총풍·세풍으로 정신없이 두들겨맞던 한나라당은, 가뭄 끝에 단비라도 만난 듯 여권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안택수 대변인은 성명에서 “현정권이 ‘이회창 비선 조직’으로 몰아 ‘이회창 죽이기’의 단초로 삼으려 했던 장석중씨가 현정권의 대북 밀사였음이 밝혀졌다. 현정권은 장씨의 주장,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 내용, 대북 접촉 내용, 10억 달러 투자 약속 등에 대해 즉각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회 외교통상위에서 끈질기게 이 문제를 제기해 왔던 이신범 의원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장씨는 현정부에서 남북을 오가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밀사로 활약했다. 장씨 등에 대한 총풍 혐의는 안기부가 고문을 통해 각본을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의원은 98년 12월7일 국회에서 “국민회의는 대선 때 실체도 없는 북풍을 막는다는 구실로 북한과 비밀 접촉을 해 왔고 밀약도 했다. 이 접촉은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의 이름을 따서 ‘EM(엄) 프로젝트’로 명명됐다. 밀약 중에는 현대의 금강산 개발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국민회의는 12월24일 당 3역 회의를 열어 장석중씨를 검찰에 고소하기로 결정했다. 이 날 정동영 대변인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원길 의원이 김순권 박사에게 각각 만 달러와 천만원을 주었다는 장씨의 주장은 날조된 것으로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 청와대에서 법적 검토가 끝나는 대로 조처를 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정대변인은 장씨의 법정 진술 직후 비공식 논평을 통해 “장씨의 진술은 전혀 근거가 없는 허무 맹랑하고 황당 무계한 주장이다.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위해 총격 요청 음모를 꾸민 장씨 등이 국민회의를 위해 북측과 거래를 주선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 당착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국민회의의 반박은 장씨가 진술한 내용 중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김대중 후보의 대북 커넥션설’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한마디로 DJ를 낙선시키려고 북측에 총격을 요청한 사람들이, 어떻게 ‘동시에’ 국민회의의 북풍 저지를 위해 북측과 뒷거래를 주선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이다. 총풍 3인의 혐의가 모두 사실이라고 전제했을 때 장씨의 진술에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청와대와 국민회의는 장씨가 현정부에서 대북 밀사로 활약했다는 주장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의 일관된 입장은 ‘현정부는 과거 정부와는 달리 북한과의 대화에서 당국자간 공식·비공식 직접 접촉을 한다는 원칙이다. 절대로 밀사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정부의 대북 밀사였다는 장씨의 주장은 이러한 원칙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은 그동안 대변인실 등을 통해 “김순권 박사와 장씨가 1월 방북하기 전에 아태재단으로 찾아와 만난 적은 있으나,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한 바 없고 오히려 ‘김박사에게 장씨 같은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충고했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청와대와 국민회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이는 장씨가 현정부에서 대북 밀사로 활약했다는 사실을‘처음으로’ 보도한 <시사저널> 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98년 10월 <시사저널>은 두 차례에 걸쳐 장씨가 현정부에서 대북 밀사로 활약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장석중, DJ 정부 대북 비선으로 활약’(10월22일자 <시사저널> 제469호) 기사와 ‘장석중, 4월 비료 회담 막후에서 메신저 역할’(10월29일자 <시사저널> 제470호) 기사이다.

<시사저널>은 위의 두 기사에서 장씨가 현정부 출범 뒤 첫 남북한 차관급 비료 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었고, 특히 김순권 박사와 1차 방북(1월24일부터 2월3일까지)할 때 출범을 앞두고 있던 김대중 정부의 메시지를 북한 안병수 조평통 부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시사저널>은 장씨가 남북 비료 회담의 막후 주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북한 안병수 조평통 부위원장이 ‘모든 통신은 장씨를 통해서 하겠다’라고 못박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내용은, 장씨와 함께 평양 고려호텔에서 안병수를 만났던 김순권 박사도 세 차례의 인터뷰에서 시인했다. 장씨가 법정 진술에서 털어놓은 바로 그 내용들이다.

다만 <시사저널>이 두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것은 김대중 당선자의 구두 메시지 내용과 97년 대선에서 국민회의가 북풍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측과 어떤 접촉을 했는지 등이다. 그러나 장씨는 법정 진술에서 구두 메시지 내용이 ‘(비료 지원을 위한)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고 일이 잘되면 정상 회담까지 추진하자’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현정부에서 수행했던 자신의 역할이 비료 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킨 것뿐만 아니라, 정상 회담이라는 지극히 민감한 사안에까지 개입할 정도로 중요했다는 주장이다.

국민회의의 북풍 저지 ‘EM 프로젝트’도 처음 밝혀

현정부에서 장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시사저널> 보도 내용말고 장씨의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한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이른바 ‘EM 프로젝트’의 존재 여부이다. 장씨는 법정 진술과 변호인 접견 등을 통해 대선 당시 국민회의가 엄삼탁씨를 지휘자로 세워 북풍을 저지하기 위한 ‘EM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이 프로젝트가 집권 이후에는 현정부의 대북 경제 협력 사업 및 남북한 대화 노력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장씨 주장에 따르면, EM 프로젝트에 관련된 핵심 인물은 엄삼탁 국민회의 부총재·장상흥 안성개발 사장 등이다. 그러나 장씨는 당초 EM 프로젝트의 목적이 북풍 저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고만 있을 뿐, 대선 정국에서 구체적으로 추진된 경위와 현정부 들어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정부 출범 후 안성개발이 가장 먼저 대북 경제 협력 사업체 승인을 받았다는 점이다. 안성개발은 북한에 참기름 가공 공장을 설립할 목적으로 98년 3월13일 경협 승인을 받았다. 총풍에 맞선 장풍이 어디까지 번져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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