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마당]김종필 국회 재경위 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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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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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움직임을 오히려 한 박자씩 늦추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이 크게 득을 보지는 못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 비결이다.

한보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도 김총재의 대응은 기민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논평을 내놓지 않다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도 조사받아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치고 나오며 국면을 주도하자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문에 정가에서는 김총재가 한보와 관련해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추측이 나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권에서는 자민련 인사 여러 명이 한보 사태에 연루되어 있다는 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보 사태가 자민련 와해 작전의 대미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자민련과 관련한 이런 저런 설이 증폭되자 지난 2월1일 김총재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관련 인사들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일일이 거론하며 한보와 관련이 없음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나 김총재의 자세가 전반적으로 공격적이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선제 공격을 하기보다는 맞받아치기만 한다는 자세이다. 굳이 따진다면 김총재는 한보 사태로 득을 보기보다는 손해나 보지 말고 넘어가자는 쪽인 것 같다.애꿎은 당사 탓인가. 김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세를 맴돌고, 노동법 파동에 한보 사태까지 겹쳐 여권이 치도곤을 당하고 있는 것도 운세 없는 당사 탓일까.

신한국당은 3~4월께 당사를 마포로 이전할 계획이다.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런데 당사를 옮기는 이유가 재미있다. 역술가의 점괘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의도는 모래땅이어서 기우는 지세(地勢)인 반면, 마포는 솟아오르는 지세이므로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당사를 마포로 옮겨야 한다는 역술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 같다고 몇몇 여권 고위 인사들이 귀띔한다.

물론 겉으로야 다른 이유가 있다. 자기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국민회의 당사가 바로 코앞에 마주하고 있는 점도 영 거슬리고, 대선을 준비하기에 지금의 여의도 당사는 비좁다는 것이다. 입주 건물과 이전 날짜 등 모든 당사 이전 계획은 강삼재 총장을 비롯한 몇몇 핵심 인사들이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만약 신한국당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 당사 이전을 제의한 역술가는 일등 공신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요즘 신한국당이 애타게 찾고 있는 역술가는 당장 한보 사태의 급한 불을 끌 비법을 일러줄 사람이다.

“난 끗발 없어 한보와 무관 재경위 의원들 한목소리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재경위)부터 뒤져라. 한보 사태가 터지자마자 국회와 언론계 주변에 나돌았던 이야기다.

한보 거액 대출을 다룬 소관 상임위가 재경위이기 때문에, 재경위원들이 대출 외압용으로 동원되었거나 단순한 무마용 떡값을 받았거나 간에 어떤 식으로건 ‘한보 문제’와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심지어 이번 15대 국회와 지난 14대 국회는 물론, 한보철강 허가 시점인 13대 국회의 재경위원들까지 구설에 오르내렸다. 재경위 족보에 오른 적이 있으면 일단 언론의 용의선상에 오른 셈이다.

특히 14대에 이어 15대에도 재경위에 몸담은 여야 의원들에게는 중량급 의혹이 쏟아졌다. 한보 문제를 날카롭게 추궁했던 의원은 의원대로, 무디게 넘어갔던 의원은 의원대로,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14대 때 재경위에서 한보 문제를 가장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한 의원은 자신의 과거 발언이 언론에 다시 소개되자, 주변 사람들로부터‘한보가 입막음하느라고 떡값을 단단히 주었겠다’‘그뒤에 정태수 총회장이 돈가방 들고 찾아왔느냐’라는 진땀나는 질문에 시달렸다. 물론 당사자들은 한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재경위 출신 1~2명은 검찰 소환 명단에 반드시 들어가리라는 것이 정치권의 관측이다.

이런 와중에 재경위에 소속된 한 야당 중진 의원은 “1억 정도 자금을 대출받아야 할 일이 있는데 한보 때문에 어느 은행에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딱한 사정을 털어놓기도. 요즈음 재경위 소속 의원들은 자기가 얼마나 ‘끗발’이 없는 의원인가를 강조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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