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대권가도, 걸음마다 걸림돌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5.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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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비난 여론·反DJ 세력 연합’ 극복해야… 총선 실패 때는 치명타
정치권에 새로운 ‘제1 야당’이 등장한다.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추진하는 신당이다. 선거 직후 정치권을 뒤흔든 신당설이 사실로 드러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열흘이었다. 신당을 택한 사람이건 민주당에 잔류한 사람이건 모두 그 무서운 속도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신당의 윤곽이 드러나자, 당혹해진 민주당 이기택 총재의 첫마디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사실 신당 창당 작업은 김이사장의 정치 행태에 비춰보면 너무 전광석화처럼 추진돼 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DJ가 YS의 정면 돌파 방식을 구사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지금까지 김이사장은 조심스럽지만 치밀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정치 형태를 보여 왔다. 동교동의 한 측근 인사는 “분명히 예전의 DJ는 아니다. 97년 대권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김이사장은 7월18일 정계 복귀 선언을 하고 대권을 향한 기나긴 항해의 돛을 올렸다. 그러나 항해가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여론의 거센 풍랑을 만났다. 17일 김이사장이 ‘속도 조절론’을 이유로 창당 일정을 다소 늦춘 것도 이런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동교동계 의원들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라고 내다보았지만 예감이 좋지 않다. 일단 신당호에 몸을 실은 사람들도 걱정스러운 낯빛이다. 왜 그렇게 서둘러서 출항해야 하는지 그들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서 주변의 이해를 구해야 할 처지다. 그들도 빠르게 역류하는 여론의 물살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인천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주변에 자문을 구했지만, 어느 누구로부터도 이렇다할 해답을 듣지 못했다.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 젊은 조직원이 “컴퓨터 통신에 올라온 여론의 동향을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컴퓨터 통신에 올라온 젊은이들의 여론을 보니 긴 말이 필요없었다.

PC 통신에 ‘DJ 비난’ 들끓어

요즘 민주당에서는 젊은 당직자들 사이에 “헷갈리면 컴퓨터 통신을 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20, 30대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컴퓨터 통신에서는 지금 김이사장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육두문자까지 동원한 욕설이 거침없이 올라온다. 대개 자기가 이번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밝히는 사람들의 글인데, 요컨대 ‘DJ가 이뻐서 찍어줬는지 아느냐. 착각하지 말라’는 내용들이다. 20, 30대 젊은이를 포용하는 당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동교동으로서는 곤혹스런 현상이다.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다. 여론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최근 언론기관이 실시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70%가 신당 창당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김이사장의 정계 복귀를 반대하는 여론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선거에서 크게 이긴 멀쩡한 정당을 깨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데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물론 동교동도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알고 있다. 이들은 현재 “예상했던 것보다는 심하지 않다”면서 신당행을 주저하는 민주당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있다. 여론의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여론의 동향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교동계의 한 핵심 측근 의원은 “김이사장은 정계에 복귀해도 욕을 먹고, 복귀하지 않아도 욕을 먹는다. 어차피 맞을 매, 이번에 몰매를 맞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밝힌다.

그러나 세월이 동교동에 약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모른다. 폐허가 된 채 수습되지 않는 민주당의 존재가 내내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존재 자체가 동교동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짐이다. 앞으로 전개될 민주당의 정황은 신당을 차린 김이사장에게 끊임없이 비난 여론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 더구나 민주당 잔류파들은 점차 반DJ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동교동은 김이사장이 정치 전면에 나설 때마다 반사적으로 결집해온 ‘반DJ 세력 연대’라는 악몽에 시달려 왔다. 세 차례에 걸친 대통령 선거에서 DJ가 번번이 고배를 마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종의 ‘징크스’이다.

김이사장이 거센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만든 까닭도 사실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정가에서는, 김이사장의 신당 구상을, 언제나 결정적인 시기에 자신을 무릎 꿇린 구여권 TK 세력을 끌어안으려는 행보라고 받아들인다. 현재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치 세력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암묵적으로 ‘반YS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정치 환경은 김이사장의 구상에 유리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김이사장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등권론을 내세워 반YS 연합전선으로 묶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장차 권력을 분점한다는 전제 위에서 가능한 연합이다. 현재의 정국 구도에서 저마다 ‘딴 마음’을 품고 있는 정치 세력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은 내각제이다. JP는 자민련을 출범시키면서부터 아예 내각제를 당론으로 내세웠다. 뚜렷한 대표 주자가 없는 TK 세력이 다음 정권에서 자기 지분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 역시 내각제뿐이다.

김이사장은 지난 5월 말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제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들의 요구에 화답했다. 신당은 앞으로도 권력 구조 문제를 못박지 않음으로써 지역 연합 가능성을 열어 놓을 공산이 크다. 즉 TK 세력과 JP의 자민련이 최소한 ‘적의 편’으로 돌변하지 않도록 내각제 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이사장의 92년 대권 전략과 97년 대권 전략은 확연하게 다르다. 김이사장은 92년 대선에서는 반호남 보수 대연합 세력에 맞서서, 자기가 야권의 유일한 주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92년 꼬마 민주당에 40%에 이르는 지분을 떼어주어 야권 통합을 이루어냈고, 대통령 선거 와중에는 색깔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전국연합과 정책 연대를 폈던 것이다. 그러나 97년 대권 전략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비호남 야권을 포기해서라도 반 YS 보수 세력을 끌어안자는 생각이다.

지역 감정이 ‘DJ의 희망’ 삼킬 수도

김이사장의 지론대로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내각제가 무산된다면, 김이사장에게 호의적이었던 정치권의 구도는 얼마든지 뒤엎어질 수 있다. 아무리 YS가 궁지에 몰려 있어도 헌법을 바꾸는 대목에서는 YS가 여전히 칼 자루를 쥐고 있다는 것이 동교동계의 시각이다. 97년 대선 때까지 헌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TK 세력과 JP는 DJ의 경쟁자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요즘 동교동계 의원들이 신당을 창당하는 근거로 ‘4자 필승론’ 또는 ‘5자 필승론’을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모든 정치 세력이 대권 전선에 뛰어든다면, 대략 28%에 이른다는 호남 고정표만으로도 집권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각 정치 세력들이 ‘반DJ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 JP가 동교동계 신당 창당과 관련해서 새삼 정치권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신당 창당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던 JP는, 지난 7월15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국민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슬쩍 제동을 걸었다. 정가에서는 이 날 발언을 놓고, 지방 선거에서 DJ와 이심전심 마음이 통했던 JP가 딴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권 항해에 나선 김이사장에게 암초는 또 있다. 내년 4월 총선에서 각 정치 세력은 일대 격전을 벌인다. 그러나 신당이 내년 총선에서 ‘제1 야당’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김이사장의 대권 전략은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김이사장에 대한 지금의 비판 여론 강도를 감안하면, 신당은 내년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신당 추진 세력은 참신한 인물을 대거 영입하고 내년 총선 때까지 정책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함으로써, 이런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한국 정치판에서 지역 감정은 모든 것을 삼킨다. 김이사장은 이번 지방 선거에서 지역등권론을 통해 자신은 더 이상 지역 감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임을 확인했고, 여세를 몰아 신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장 호남 지역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지역 분할 구도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더욱 견고해진 지역 감정이 김이사장의 희망을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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