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 후보 리더십 전략 점검
  • 김종민 기자 ()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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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 강화 등 '이미지 다듬기' 각개약진
차기 대선을 2년여 앞두고 벌써부터 차기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후보가 되어야 한다면서 후보를 쟁취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고,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힌 김근태 최고위원도 경쟁자인 이위원의 발언을 ‘국민과 당원에 대한 협박’이라고 비판하며 차기 경쟁에 가세했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과 박근혜 의원의 정·부통령제 개헌 주장도 차기 대선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11월24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무조건 등원 선언’이다. 이총재가 이처럼 파격적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정쟁에 집착해 온 야당 총재의 ‘고깔’을 벗고 차기 국가 지도자로서 육중한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깔려 있다. 최근의 대여 투쟁이 정부·여당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이총재 개인의 인기가 동반 하락하는 조짐을 보이는 등 차기 가도에 부담을 준 것도 이총재의 결심을 재촉했다.

‘장점 극대화, 취약점 극소화’ 전략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차기 경쟁을 앞두고 여야 주자들이 기선 잡기에 나설 때가 되기는 했지만, 차기 경쟁 분위기에 가속을 붙인 것은 김대중 정권의 난조이다. 이총재로서는 더 이상 김대중 정권과의 힘겨루기에 집착할 필요 없이 차기를 위한 이미지 관리에 나설 여유가 생긴 반면, 여권 차기 주자들의 경우 집권당의 난조로 생긴 공백을 ‘차세대 역할론’으로 메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대중 정권의 난조는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대통령학 전문가인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최근 김대중 정권의 위기를 “사회가 복잡해지고 국회 등 각 분야의 자율성이 높아졌는데도 설득과 대화의 리더십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명령과 통제의 리더십을 고집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함교수는 변화한 현실을 반영해서 차기 지도자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아니라 관리형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도 차기 리더십 문제에 대해 나름의 ‘정견 발표’를 해 왔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 김대통령도 통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했고, 이회창 총재는 최근의 경제 위기를 반영하듯 경제 문제 해결 능력을 제1로 꼽았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남북 관계와 경제에 대한 비전을 누가 잘 통합하느냐에서 차기 대선의 승부가 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전문 킹메이커’ 김윤환 민국당 대표는 지역주의 극복을 차기 대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본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지만, 역시 관건은 2002년 상황에서 민심의 집약된 요구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1992년 대선에서는 민심의 다수가 정권 교체보다 ‘온건 개혁’을 원했기 때문에 YS가 DJ를 제치고 집권할 수 있었고, 1997년 대선에서는 YS의 실패를 경험한 다수의 민심이 정권 교체를 지지했기 때문에 DJ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회창내년부터 펼쳐질 차기 대선의 오픈 게임을 앞두고 있는 예비 주자들이 나름의 전략을 가다듬느라 저마다 바쁘지만, 그 중 야권 후보 0순위를 예약해 놓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진도가 역시 가장 빠른 편이다. 최근 본격적으로 리더십 관리에 들어 간 이총재가 그리는 자화상은 ‘경제를 살리는 깨끗하고 공정한 리더십’이다.

이총재는 지난 11월20일 경제학 교수들이 주축이 된 ‘안민포럼’ 토론회에 참석해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한 정부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총재는 재벌 개혁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재벌 지배 구조를 급격하게 바꾸는 문제보다 경영의 투명성, 상속과 과세 등에서 법 적용을 엄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금융·공공·기업·노동 등 4대 분야 구조 조정 문제에 대해서도 “깨끗하고 정직한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구조 조정을 추진해야 권위가 선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총재는 경제 살리기라는 민심의 요구와 깨끗함·법치주의라는 자신의 상표를 연결해 호소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이러한 전략이 차기 대선을 겨냥한 리더십 만들기의 일환이라면서 “이 전략을 국민들에게 쉽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총재가 이번 국회 파행 사태를 ‘무조건 등원’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로 돌파한 것도 경제를 살리는 생산적 리더십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선발 주자로서 상대적으로 노출이 심했던 이총재는 보완해야 할 취약점도 적지 않다. 특히 포용력·유연성·인간미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총재측은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광폭 정치’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그 구상에는 YS와 허주를 끌어안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김대통령에게 자신이 집권하더라도 호남을 차별하지 않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으며, 그의 통일 정책을 큰 틀에서 계승하겠다는 내용을 제시해 김대통령을 최대한 중립지대로 이끌어낸다는 안도 담겨 있다.

또 3김과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1.5세대라는 점도 이회창 리더십의 취약점이다. 2002년에 68세인 이총재의 나이도 문제려니와 그동안 3김을 상대로 정쟁을 벌이면서 덧씌워진 권위주의·발목 잡기·지역감정 편승 따위 이미지가 차기 지도자로 떠오르려는 이총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인제여당의 유력 후보들은 대개 이회창 총재의 1.5세대 리더십과 선명하게 대립되는 차세대형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 그 중 선두는 이인제 최고위원. 차세대 가운데 선발 주자인 이위원의 리더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강한 돌파력과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이위원은 김영삼 정권 때 노동부장관으로서 강한 인상을 남겼고, 1995년 경기도지사 선거 때는 남들은 피해 가는 당내 경선을 자청해 정면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때 신한국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를 감행한 것이나, 최근 민주당 후보 쟁취를 위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서도 이인제 리더십의 면모가 드러났다. 이위원측은 이러한 특성을 살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강한 리더십’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진취적 리더십’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이위원에게는 경선 불복이라는 ‘주홍글씨’가 항상 따라 다니고 있다. 독선적인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게 퍼져 있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 후보가 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진다”라는 최근의 발언이 ‘내가 후보가 안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식으로 의역된 이유도 이위원이 경선 불복과 탈당이라는 ‘전과(前科)’에 시달릴 수밖에 없음을 증명한다.
노무현이인제 위원을 추격하고 있는 여권의 차세대 주자는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이다. 이회창 총재측도 여권의 잠재적 경쟁자로서 이인제 최고위원 다음으로 노무현 장관을 경계하고 있다. 영남 출신인 노장관이 영남에서 먹히면 오히려 이인제 최고위원보다 더 위협적인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하순 한길리서치가 이총재와 이위원·노장관·고 건 시장을 차례로 대입해 지지도를 물은 결과 이위원과 노장관이 이총재보다 높은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장관은 이총재보다 8% 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지역주의에 맞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노장관은 지역 통합형 리더십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소탈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보통 사람에게 신뢰받는 정치인으로 비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노장관측은 이총재와 이위원이 선발 주자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두 사람을 합쳐도 지지도가 20%대라는 점을 지적하며 아직 개척할 여지가 많다고 보고 있다.

노장관의 가장 큰 취약점은 대통령감으로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여러 차례 낙선으로 비주류·아웃사이더라는 이미지를 떨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장관은 장관으로 일하면서 행정 능력을 보여주고 정치적 무게를 키우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아울러 20∼30대 중심의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 민주당 안팎의 40대 인사들과 각 분야 50대 인사들을 대상으로 관계를 넓혀 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대목은 노장관과 YS의 관계 개선 문제다. 문민 정부 시절 YS의 측근이었던 한 인사는 노장관과 YS를 연결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노장관의 중량감을 보완하는 것이 될지 소신이 퇴색한 것으로 비칠지는 미지수다.
김근태민주당의 차세대 트로이카 가운데 한 사람인 김근태 최고위원도 최근 차기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며 리더십 만들기에 나섰다. 이총재측의 한 인사는 김위원의 도덕성과 개혁성을 거론하며 ‘만일 민주당이 전폭적으로 김근태를 밀면 상당한 강적이 될 것’이라면서 경계 대상에 포함했다. 김위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데, 그동안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경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공을 들여 왔다.

김위원측은 지식층과 젊은층에서의 지지를 바탕으로 가장 큰 취약점인 대중성을 강화하는 것을 당면 과제로 삼고 있다. 재야 민주화운동 지도자로서 쌓은 국제 사회에서의 지명도도 다른 후보보다 비교 우위가 있다고 본다. 남북 관계 개선 과정에서 군축 문제 등이 현안이 되면 이러한 국제적 기반이 김근태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특히 김위원은 그동안 강한 진보 색채와 당내 비주류라는 것이 부담이 되어 신중히 행보해 왔으나,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정 쇄신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는 등 본격적인 대중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김의원측은 “전당대회 때 대중 연설이 기대에 못 미친 것도 따지고 보면 본인의 생각을 소신껏 펼치지 못했던 데 원인이 있었다”라면서, 앞으로는 민주화운동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더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겠다고 예고했다.

한화갑차기와 관련해서 아직은 물밑 행보에 스스로 발을 묶어 놓고 있는 한화갑 최고위원은,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족쇄가 되고 있지만 당내 세력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데는 가장 적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한위원은 최근 군 단위까지 전국 조직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차기 경쟁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무시 못할 변수 ‘지역주의’

그밖에 차기 경쟁에서 다크호스로 볼 수 있는 인물은 정몽준·박근혜·김덕룡 의원과 고 건 서울시장이다. 정의원과 고시장은 각자 월드컵과 서울 시정에 묶여 본격적인 정치적 행보를 못하고 있지만 나름의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어 적절한 시점에 ‘그라운드’에 뛰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보완적 리더십을 평가받고 있는 김덕룡·박근혜 의원은 최근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며 현재의 차기 구도를 합종연횡이 자유로운 정·부통령제 구도로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처럼 여야의 자천타천 차기 주자들이 자신만의 차별화한 리더십을 만들어가기 위해 신발끈을 이미 맸거나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차기 대선에서 각 후보의 리더십이 얼마나 결정적인 요소가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특히 아직은 지역주의가 기세를 꺾일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 상태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차기 대선의 키워드는 리더십이 아니라 지역주의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점에 대한 전망도 후보마다 이해 관계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총재측은 김대중 정권이 결정적으로 몰락하지 않는 한 영남의 반DJ 정서가 다음 대선까지는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역시 지역 문제가 차기 대선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이인제 최고위원은 3김 시대가 종식되는 다음 대선에서는 지역주의가 더 이상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노무현 장관측은 후보 구도에 따라 지역주의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호남에서 비토가 분명한 이회창 총재와 영남 쪽의 비토가 강한 이인제 위원이 대결할 경우 지역주의가 다시 살아날 것이지만, 영남 기반의 이총재와 영남 출신인 노장관이 맞붙을 경우 지역 기반이 겹쳐 지역주의는 약해지리라는 것이다.

일단 현재의 추세를 감안할 때 김대통령의 정국 주도력이 정권 말까지 강하게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반DJ로 강하게 뭉친 영남의 응집력을 어느 정도 이완시키리라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문제는 지역주의가 이완된 틈새를 여야의 차기 주자들이 생산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얼마나 파고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차기 대선은 리더십 선거가 아니라 3김의 마지막 기력이 발휘되는 지역주의 선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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