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장 “행정수도 이전은 자원 낭비”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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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 정구현 소장, 현정부 정책 강력 비판
“동북아 경제를 생각한다면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하나의 경제권이며, 이 좁은 지역 내에서 균형 발전을 이룬다고 수십조원을 쓰는 것은 자원 낭비다.”

삼성경제연구소 정구현 소장이 한나라당 의원들 모임에 참석해 신행정수도 이전 정책 등 현정권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 전망이다.

정소장은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연구 모임인 ‘21세기 비전과 전략 네트워크’(회장 김애실 의원)가 지난 6월21일 오전 7시30분부터 9시까지 국회 의원회관 104호에서 연 첫 번째 세미나에 참석해 ‘2025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연세대 상경대학 학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고, 현재 한국경영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개인 자격’이라고 말했지만 삼성그룹 두뇌집단인 삼성경제연구소장이라는 직책상 그의 발언은 삼성그룹, 나아가 재계의 현재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미나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정소장 발언의 민감성 때문이었다. 이 날 세미나에는 박세일 의원 등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 16명과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 보좌진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정소장은 발제에서 “국가 정책은 과거에 대한 한풀이 차원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 현 집권 세력이 정책을 세우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1980년대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라고 비판했다. 정소장은 그 사례로 네 가지를 거론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도 우리 경제가 폐쇄 경제라는 틀 속에서 경제력 집중 정책을 펴고 있고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은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으며 △평준화라는 잘못된 교육 정책 목표를 펼치고 있고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소장은 특히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닥쳐올 통일 한국을 생각해보면 새로운 수도가 결국은 서울 북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수도 예정지에 대학을 4~5개 만든다면 20만명 가량은 이전할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정책이고 수도권 분산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정부 들어 노사관계가 특히 악화했다는 그는 대안을 전달할 경로가 없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정소장은 또 “예전에는 못사는 사람이 소외되었는데 지금은 잘사는 사람이 소외되고 있다. 기업인들을 만나 봐도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이다. 닫힌 마음을 억지로 열 수 있겠는가? 기업들의 마음을 열려면 햇볕 정책을 써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일부 정책이 분배를 강조하고 부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부유층이 동요하고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정소장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가는 2026년부터는 우리 나라가 높은 경제성장을 하기가 어렵다며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20년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급성장, 북한 체제 변화와 통일, 남한 인구 고령화 등 닥쳐올 세 가지 커다란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서로를 격려하면서 20년 이후를 대비한 비전과 전략을 세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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