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초토화’ 작전 여전히 진행중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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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의, 기다리기 작전으로 선회…검찰 수사 결과·야당 내분 맞춰 재공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있을 때만 해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한 여권 입장은 강경했다. ‘세풍에 이어 총풍까지 관련되었다면 이총재를 더 이상 국정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싸늘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여권의 이른바 ‘이회창 배제론’은 김대통령 귀국을 전후해 쏙 들어갔다.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게 된 것은 김대통령이 국민회의 지도부에 ‘정쟁 자제론’을 전달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은 지난 8월 말 한나라당 총재로 선출된 직후부터 줄곧 세풍·총풍에 시달려 온 이총재를 이쯤에서 풀어 주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o’에 가깝다. 정국이 급속도로 정상화 궤도에 오르는 와중에서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이총재의 등원 결정과 검찰 수사는 별개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달리 말하면 검찰 수사 결과 세풍과 총풍에 이총재가 연관되었다는 증거가 나올 경우 정치적 고려 없이 원칙대로 밀고 가겠다는 얘기다. 김대통령 역시 총풍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 여·야 영수회담 문제 등은 검찰 수사가 끝난 뒤에나 생각해 보자고 미루었다. 한마디로 최근 여·야간 해빙 무드는 ‘무늬만 해빙’인 셈이다.

여권이 이총재를 향해 날리던 직격탄을 잠시 거두어들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회창 배제론이 총풍 사건의 본질을 희석하면서 세간에 ‘이회창 죽이기’만으로 비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국민회의가 이회창 배제론을 처음 공론화한 것은 추석 연휴 기간인 10월5일. 이 날 당 3역 회의를 마친 뒤 정동영 대변인은 “한나라당내 건전 야당을 지향하는 세력과 이회창 총재 및 소수 측근 세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틀 후 동교동계인 설 훈 기조위원장은 본회의 5분 발언에서 “한나라당은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라며 이총재측을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여권이 이총재를 국정 파트너로 삼느냐 마느냐까지 들고 나온 것은 도덕성도 도덕성이지만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인식 때문이다. 국민회의 한 고위 인사는 “이총재는 올바른 정책도 DJ가 한다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자기 잘못은 무조건 오리발부터 내미니 어떻게 정치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라고 이총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여·야 총수들은 격렬하게 정쟁을 벌이면서도 물밑으로는 대화 채널을 가동해 협상할 여지를 남겨 놓았지, DJ와 이총재처럼 퇴로를 막은 채 극단적인 수만 놓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여권의 이회창 배제론은 즉각 이총재측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다. 이총재는 10월8일 “야당 총재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정권을 국정 책임자로 인정할 수 없다”라면서 정권 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이총재측 반발은 총풍이 고문 조작이라는 한나라당 주장과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총풍 자체의 중요성을 반감시키고 있다.

이회창 배제론은 검찰 수사에도 상당한 부담만 안겨 주었다. 게다가 여권이 이총재를 공격한 것은 한나라당내 비주류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밖에서 적이 치고 들어오는 마당에 아무리 비주류라고 해도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을 고대하는 여권 처지에서 보면 작전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판에 김대통령의 자중론이 전해지자 여권의 초강경 기류가 순식간에 수그러든 것이다.

이제 여권은 ‘기다리기 작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총재 동생인 회성씨와 이총재 측근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결국 이총재에게 정치적 타격이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나라당 내부에서 자연스레 이총재 불가론이 제기되리라는 것이 여권 전망이다. 이총재 운명은 결국 검찰 수사 결과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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