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수출국 아픈 굴레 벗자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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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입양 활성화 위해 알선료 등 보조
[이 법만은 고치겠다]

고경화 의원의 입양특례법

“혈통 중심의 낡은 문화와 입양을 바라보는 비뚠 시각을 바로잡아야 해외 입양을 국내 입양으로 전환할 수 있다. 어린이 입양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도 힘겹다는 점에서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10월에는 기념일이 많다. 1일이 국군의날이고, 3일은 개천절, 그리고 9일은 한글날이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여기에 기념일을 하나 더 추가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10월12일을 ‘입양의 날’로 제정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왜 하필 10월12일일까? 서글픈 입양 역사 때문이다. 1955년 미국인 해리 홀트 씨가 전쟁 고아 12명을 처음으로 미국에 보낸 날이 10월12일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외 입양이 시작된 것이다. 홀트 씨는 이 가운데 8명을 양자로 받아들였고, 이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대표적인 어린이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가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은 고아 수출국이었다. 전쟁 고아는 사라졌지만 미혼모가 늘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1958년부터 2004년 6월까지 해외로 입양된 어린이는 15만4천1백42명에 이른다. 미국 이민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부동의 고아 수출국 1위였다. 그러다 2001년에 3위(1천8백70명)로 내려앉았고, 2003년에는 중국·러시아·과테말라에 이어 한국이 4위(1천7백90명)였다. 1위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한국은 고아 수출국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10월12일을 입양의 날로”

이런 오명을 벗고 ‘우리 아이는 우리 손으로 키우자’며 고경화 의원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냈다. 고의원이 낸 개정안에는 입양의날을 제정하고, 입양 알선료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하게 했다. 굳이 입양의날을 제정하는 것은 혈통 중심의 낡은 문화와 입양을 바라보는 비뚠 시각을 바로잡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2003년 국외 입양이 2천2백87명인 반면, 국내 입양은 1천5백64명이었다. 장애인 어린이만 따져보면 여전히 한국의 입양 시계는 1955년 원년에 멈추어 있다. 2003년 해외로 입양된 장애 어린이는 6백49명이었다. 같은 해 국내에 입양된 장애 어린이는 불과 20명이었다. 홀트아동복지회 이현주씨는 “문화도 문화지만,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장애아를 입양하면 1인당 양육보조금으로 50만원을 지원한다. 그런데 치료비만 1천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고의원이 낸 개정안에는 아쉽게도 장애아에 대한 뚜렷한 지원 대책이 따로 없다. 고의원은 “비장애인 어린이마저 국내에서 버림받는 현실부터 바꾸는 것이 시급했다”라고 말했다.

고의원이 보기에 양부모에게 알선료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는 한 방편이다. 현재 입양을 하려면 입양 기관에 알선료 명목으로 최대 2백19만8천원을 내야 한다. 현행법에 입양 기관이 부모로부터 양육비나 인건비를 받게 했기 때문이다. 고의원은 이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게 했다

나아가 고의원은 입양 휴가를 도입하자며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냈다. 산전·산후 휴가처럼, 어린이를 입양한 경우에도 유급으로 90일의 입양 휴가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고의원은 “어린이 입양은 아이를 낳는 것보다 훨씬 더 힘겹다. 맞벌이 여성에게는 당연히 입양 아이와 친해질 기간을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유급’ 입양 휴가 도입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현재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마저 입양 휴가 자체를 낯설어해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된 입양특례법 개정안에는 여야 의원 34명이 서명했다. 홀트아동복지회 등 사회단체도 국회에 청원을 냈다. 통과 가능성이 높아, 달력에 10월12일이 입양의날로 표시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입양특례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인 고경화 의원도 입양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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