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패 신화, 종언 고하는가
  • 차형석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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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과잉·재건축 위축 등으로 ‘거품 붕괴’ 가능성
주택 가격이 급등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5·23 대책’ ‘9·5 대책’ 등 안정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지난 8월 이후 주택 가격은 상승세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은 서울 강남과 행정 수도가 옮겨갈 중부권 일대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부동산 시장이 거품 상황에 이르렀고, 부동산 불패 신화가 허구에 가깝다는 진단에 이어 대통령의 ‘특단론’까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10월2일, LG경제연구원은 <주택 가격 버블 가능성 진단>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파트 가격 상승 속도가 가계소득증가율과 국내총생산증가율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200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명목성장률은 연평균 6.5%에 그친 반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이보다 4배 가까이 높은 연평균 25.2%를 나타냈다.

1998년 12월부터 시작된 이번 대세 상승 국면(가격 상승폭 101.6%)은 1987년 8월부터 1991년 4월까지 3년 8개월 동안 지속된 ‘가격 상승 랠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 가격 상승 폭은 129.3%. 그러나 주택 상황이나 거시 경제 여건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1980년대 말은 3저 호황(원유가·달러 가치·국제 금리 하락)과 내수 경기가 활황세를 보여 연간 경제성장률이 10% 안팎에 이르렀다. 반면 이번 대세 상승 국면은 외환 위기 이후 저성장에 경기가 부진하고, 물가도 3% 안팎에서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거품 붕괴→내수 위축→장기 불황’ 올 수도

또한 주택보급률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 말에는 주택보급률이 70% 안팎이었는데, 현재는 100%를 넘는다. 더구나 최근 3년간 연간 주택 착공 물량이 주택 2백만호 공급 때보다 많기 때문에 착공과 완공 시차를 고려할 때 공급 과잉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파트 전세가와 매매가의 격차가 계속 커지는 것도 거품의 한 징후이다. 올 들어 아파트 매매 가격은 상승세를 타고, 전세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아파트 전세 가격은 실수요자의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매매 가격은 투자 수요의 영향을 받는다. 매매 가격 대비 전세 가격의 비율이 계속 떨어진다는 것은 투자 수요에 의해 거품 가격이 형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비율은 2001년 10월에 64.4%로 정점에 달한 이후 지속해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 8월 현재 52.4%까지 떨어졌고, 최근에는 하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아파트 시장은 마치 4,5년 전 코스닥 투기 열풍과 같은 머니게임을 연상시킨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아파트 가격 상승은 맹목적인 기대 심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실물 경기 등 근본적인 여건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거품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김연구위원은 “거품이 꺼지면 개인의 자산 가격이 하락해 소비가 위축된다. 최근 2∼3년 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급매물을 쏟아내고, 가계 부실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주택을 담보로 한 가계 대출이 최대 60%에 묶여 있어, 대출 한도가 주택 가격 대비 110∼120%까지 이르렀던 1980년대의 일본처럼 버블 붕괴가 심각한 금융기관 부실화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내수가 위축되어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불경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김연구위원은 “투기 세력이 빠진 뒤 막차 탄 지역민이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말고도 ‘부동산 불패 신화는 허구’라는 국정감사 자료집이 나왔다. 지난 9월17일 정동영 의원은 2003년 국정감사 자료집 <부동산 불패 신화는 깨진다>를 발간했다. 정의원은 이 자료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도권 땅은 사두기만 하면 무조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허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정의원은 그 근거로 출산율 감소, 수익성 높은 재건축 불가능, 행정 수도 이전을 들었다. 정의원에 따르면, 출산율 감소로 2020년에는 인구가 줄어 주택 수요의 절대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는 아파트 재건축도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망했다. 아파트의 수익성이 높은 것은 원래 규모보다 크게 짓는 것이 가능해서인데, 현재 짓고 있거나 새로 지을 아파트는 대개 15∼25층 아파트여서 이를 50∼60층으로 재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행정 수도가 지방에 건설되고, 경제 특구에서 외국 교육기관이 활성화하면 수도권 집중 현상이 완화될 것이기 때문에 수도권 부동산 불패 신화는 허구에 그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경기가 과열된 배경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변화와 저금리 시대 유동성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최희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냉·온탕을 오가는 정부 정책이 낳은 부작용이다”라고 말한다. 분양권과 분양가를 규제해 1990년대 주택 시장이 안정기를 맞았는데, 외환 위기 이후 정부가 경기 부양을 이유로 이런 규제를 너무 쉽게 풀어버려 부동산 기대 심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갈 곳이 없는 풍부한 유동 자금 또한 부동산 과열의 중요 원인이다. 현재 유동 자금은 4백조원으로 추산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책임연구원은 “현재 부동산 시장은 강북 뉴타운 개발, 행정 수도 이전 등으로 개발에 대한 기대가 높다. 여기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부동산 시장의 외적 요인이 결합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내년 부동산 가격 예측 불가능”

부동산 거품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자, 정부는 1가구 다주택자 현황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등 부동산 시장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월3일 노무현 대통령은 “투기적 수요를 반드시 막겠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지 하락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김현아 책임연구원은 부동산 가격을 견인했던 대규모 재건축은 종결점에 왔다면서도 “어느 해보다 내년 부동산 시장에 대해 전망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정부가 지금까지는 부동산 시장 내부에 한정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유동 자금을 부동산 시장 밖으로 유인할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갑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시장에 중립적인 정책을 써야 한다”라고 말한다. 재건축 평형을 규제하니까 대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것처럼, 현재는 상승시키는 것만 부풀려 시장이 형성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정 시장을 자극하는 정책을 배제하고, 부동산 자금 대출 제한 등 시장에 중립적인 정책을 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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