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 외자 유치에 잡음이 이는 까닭
  • 崔寧宰 기자 ()
  • 승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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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경합… 지나친 은폐로 투명성·공정성 잡음
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의 통합법인인 (주)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외자 2천억원을 유치하는 협상이 마지막 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최종 결정 시기는 3월 말.

현재 1차 라운드를 끝내고 최종 라운드로 접어든 회사는 록히드마틴(미국)·아에로스파시알(프랑스) 연합팀과 BAE시스템즈(영국), 보잉(미국) 세 곳이다. 하지만 BAE시스템즈와 보잉도 연합해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최종 라운드는 록히드마틴·아에로스파시알 연합팀과 보잉·BAE시스템즈 연합팀 간의 경쟁으로 좁혀질 전망이다.

지금 이 회사들은 투자 대상인 한국항공우주산업(한국항공)을 실사하고 있다. 외국 항공사들이 2월 말까지 이 과정을 끝내고 최종 투자 제안서를 내면 한국항공은 이를 3월 한 달 동안 심사해서 투자 회사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이처럼 여러 외국 항공사가 한국항공에 침을 흘리는 이유는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어서이다. 정부 항공 사업 주계약 업체인 한국항공은 민항기를 국제적으로 공동 개발하는 항공기 부품 사업과 방위산업의 전자 및 유도 무기 사업, 군과 민수 항공기 정비 사업을 하는 회사이다. 한국항공의 여러 사업 가운데 외국 항공사가 눈독을 들이는 영역은 군용 항공기 생산 사업이다. 한국항공은 앞으로 한국군의 군용 항공기를 주도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외국 항공사가 한국항공의 지분을 소유하는 자매 회사가 될 경우, 차세대 전투기 사업처럼 수조원에 이르는 한국군의 항공기 구매 계획에서 우선권을 갖게 된다. F16 전투기 증강 사업으로 국제적 관심을 끌었던 국내 군용 항공기 시장은 기체와 엔진 부문을 합쳐 연간 1조원 규모이다.

한국항공도 외자 유치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항공은 지난해 10월1일 삼성·대우·현대 등 국내 항공 3사가 빅딜로 통합해 만든 회사이다. 지금까지 국내 항공산업은 적자만 내는 산업이었고, 그나마 삼성·대우·현대로 쪼개져 있어 경쟁력이 없던 영역이었다. 한국항공이 탄생한 근거는 여기에 있다. 지난해 7월께 한국항공은 채권단 은행에 사업계획서를 낸 적이 있다. 당시 채권단은 한국항공의 사업계획서를 보아서는 돈을 빌려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빌려준 돈도 회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항공이 외자 유치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항공은 지난해 투자 회사 선정 기준 네 가지를 밝혔다. △2천억원(1억6천만 달러) 현금 투자 여부 △외국 항공사가 외국에서 따낸 생산 물량을 한국항공으로 이전할 수 있는지 여부 △외국 판매망 확보 △기술 이전이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보면 참여를 희망하고 있는 외국 항공사는 제각기 장단점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른 후보는 록히드마틴. 이 회사는 한국 국방부와 오랫동안 거래해 왔다. 지난 10년 동안 국방부는 군용기를 90억 달러어치 수입했는데, 이 가운데 80억 달러 분량이 록히드마틴 제품이었다. 한국 공군의 주력기인 F16도 이 회사 제품이다. 또 주한미군이 이 회사 제품을 많이 쓰고 있어 한·미 연합작전을 펴야 하는 한국군으로서는 이 회사 제품을 쓰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같은 지위 때문인지 록히드마틴은 우리 국방부에 시장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항공기를 판매해 잡음을 일으킨 적이 많다. 율곡 사업에 얽힌 비리도 그렇지만, 최근에는 해군 초계기인 P3 부품을 바가지 씌워 한국에 판매한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양측은 법정에서 이 문제를 갖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으나, 최근 록히드마틴이 이번 투자건 때문에 가격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항공 직원 50% 삼성항공 출신

선정 주체인 한국항공 직원의 50% 가량이 삼성항공 출신인 것도 록히드마틴에는 매우 유리한 점이다. 록히드마틴과 삼성항공은 현재 KF16을 합작해 생산하고 있다. 삼성항공으로서는 현재 갖고 있는 KF16 생산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록히드마틴과 계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최근 경영 실적이 나빠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이번 협상과 관련해서도 현금을 갖고 올 여력이 없어 투자 회사를 끼고 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록히드마틴은 상대적으로 기술 이전 가능성이 낮은 회사이다. 이는 그동안 록히드마틴이 한국과 같이 일한 사업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록히드마틴에 강력한 도전장을 낸 회사는 유럽 최대 군수·방위 산업체인 영국의 BAE 시스템즈. 이 회사는 1992년 한때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한 적도 있으나, 이후 잘 극복해서 최근에는 영업 실적이 가장 우수한 항공 회사로 평가되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30일 세계 5위 군수업체인 미국의 마르코니일렉트로닉시스템을 1백30억 달러(약 15조6천억원) 에 합병해 자금 실력을 과시했다. BAE 시스템즈는 이미 지난해 12월 한국항공에 2천억원 이상을 현금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본력도 자본력이지만 보잉 사와 손잡고 한국에 진출할 계획인 이 회사의 강점은, 항공기를 여러 나라와 합작 생산한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핵심 기술을 전수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이는 이 회사가 영국 회사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국을 빼고 비행기를 단독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제각기 항공기에서 제일 자신 있는 부분만 만들어, 최종 조립장에서 조립하는 형식으로 항공기를 완성한다. 유럽 회사들이 특히 그렇다. BAE 시스템즈가 만든 민간 항공기인 콩코드와 전투기 유러파이터가 모두 이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중요한 선정 과정이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다. 한국항공 외자유치팀 관계자는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와 있다. 우리팀 모두 이에 대한 각서까지 써놓은 상황이다. 협상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라며 모든 취재를 거부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하겠다며 나서는 외국 업체를 서로 경쟁시켜야 하기 때문에 협상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한국에 불리하다고 덧붙였다. 협상 과정을 정부 주무 부서인 산업자원부 자본재산업국까지 모르고 있었다. 산자부 자본재산업국 관계자는 “정부도 답답해서 진행 과정을 몇차례 한국항공에 문의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최소한의 정보마저 주지 않았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바는 아니지만,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는 국민의 감시 기구인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국회 국방위원회 관계자는 “한국항공이 교묘하게 국회 회기 일정을 피해가며 협상 과정을 은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 감사 무렵에 이 사안을 문제 삼으려 했다. 그러나 한국항공은 최종 결정이 12월로 연기되어 자료를 제출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다시 총선 전인 3월에 이 문제를 끝내려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항공은 민간 기업이다. 하지만 국내 항공산업을 독점하기 때문에 막대한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국민 기업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기업체가 특정 외국 항공사와 손을 잡는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국민이 이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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