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 달아오른 MPV 자동차 시장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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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다목적차량인 현대 ‘투싼’ 돌풍…쌍용, ‘로디우스’로 맞불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다목적차량(MPV·Multi Purpose Vehicle)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다목적차량은 다용도로 이용할 수 있는 차를 일컫는다. 레저용 차량(RV·Recreational Vehicle),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Sports Utility Vehicle), 미니밴의 특성을 아우르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지난 몇 년간 자동차 시장을 강타한 SUV 열풍을 MPV가 이어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 관련 세제가 개편되어 지금까지 SUV가 누리던 세제 혜택이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줄어들어 SUV 열풍이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자동차 업체들은 수출 품목을 고부가가치화하는 동시에 다변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등한시했던 신차종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MPV 붐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웰빙 바람과 주5일 근무제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계층이 늘어나는 것과 함께 휴일이 증가하자 스포츠 레저·여가·업무 등 여러 용도에 이용할 차량에 대한 수요도 아울러 커지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팔리는 RV도 소비자 취향 변화에 맞추어 SUV·미니밴·승용차(sedan)를 혼합한 크로스오버(cross-over) 차량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 다목적차량이라고 일컫는 차량은 현대차가 지난 3월 말 출시한 ‘투싼’과 쌍용차가 5월11일 출시할 ‘로디우스’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자사 차량을 다목적차량이라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두 차량은 차종을 구분할 때 기준이 되는 배기량·탑승 인원·가격·마케팅 타깃 등이 각기 다르지만 다목적차량이라는 범주로 한데 묶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차량들과 비교해 엄격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여가와 업무를 모두 중시하는 소비층을 겨냥해 판매 촉진 활동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MPV라고 불리는 투싼은 승용차와 SUV 특성을 혼합한 복합 개념의 5인승 콤팩트 MPV다. 투싼 개발에 든 예산은 총 2천1백억원. 현대차는 내수 4만대와 수출 8만대 등 총 12만대를 올해 판매 목표로 잡았다. 투싼은 내수 판매 못지 않게 수출 증가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에서 불기 시작해 전세계로 번지고 있는 SUV 열풍을 이어 가겠다는 시장 접근 전략이 엿보인다.

투싼은 내수 침체에 허덕이는 자동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3월24일 출시된 지 1주일 만에 8천81대 계약 주문이 몰려들더니, 4월29일 현재 총계약 대수가 2만7백41대나 되었다. 현대차가 올해 내수 판매 목표로 잡은 수치가 4만대인 것을 감안하면 투싼 돌풍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투싼은 또 싼타페·쏘렌토·렉스턴이 삼분하는 SUV 시장을 눈에 띄게 잠식하고 있다.

쌍용차가 출시할 로디우스는 다목적차량이지만 투싼과는 다른 개념의 차종이다. 투싼이 SUV에 가깝다면 로디우스는 미니밴에 가까운 11인승 MPV다. 로디우스는 어찌 보면 국내 자동차 세법의 산물이다. 현재 가격이 1천8백만원대인 EF쏘나타 2.0을 구입하면 처음 3년간 해마다 자동차 세금으로 51만9천2백20원을 내야 한다. 반면 쏘렌토는 차값이 2천5백만원대에 이르지만 세금은 연간 6만5천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같은 자동차 세금 체계가 내년부터 달라져 10인승까지는 승용차로, 11인승부터 승합차로 분류되어 7~9인승 미니밴과 SUV 차량의 세금이 차츰 높아져 2007년에는 승용차 세금과 같아진다.

로디우스 11인승이 세금 부담을 줄이려는 소비자의 욕구와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쌍용차는 판매를 낙관하고 있다. 쌍용차는 출시와 함께 매달 4천대씩은 팔릴 것으로 기대한다. 또 쌍용차는 자체 개발한 2700cc 커먼레일 직접분사 방식 엔진을 장착하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꾸며 비싸게 팔겠다는 계획이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바꾸겠다는 회사 전략의 일환이다. 코란도·무쏘·렉스턴을 생산하는 쌍용차는 로디우스를 출시함으로써 SUV나 MPV 차종에 대한 풀 라인업 체제를 갖추게 된다.
자동차산업 전문가 사이에서는 MPV 붐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자동차 업체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것이다. MPV가 RV·SUV·미니밴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차종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싼타페와 트라제, 기아차 ‘카 3형제(카니발·카렌스·카스타)’와 쏘렌토, 쌍용차 렉스턴을 SUV로 분류하지만 MPV 범주에 집어넣어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차 출시만으로는 극도로 침체한 내수를 살리기 힘들다고 판단한 업체들이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새로운 개념의 차종을 출시하는 것처럼 선전해 제2의 SUV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계산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제품 다변화를 꾀하는 자동차 업체들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수요는 세분화·복합화하고 있다.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에서 자동차 업체들은 고객 취향과 요구에 따라 특정 성능과 디자인을 강조한 차종들을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도 그동안 등한시했던 SUV와 MPV 차종을 개발하고 있다.

그동안 스포츠카 생산만 고집하던 포르셰도 2002년 SUV 차량인 카이엔을 출시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승용·승합·화물이라는 차종 구분의 경계선도 무너지고 있다. 두세 가지 차종의 성능과 편의성을 통합한 크로스오버 현상이 전세계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인 제이디 파워가 발표한 2004 상반기 신차 품질 조사 결과에서 현대차는 102점을 얻어 도요타·BMW·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세계 7위를 차지했다. 국내 자동차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마케팅·제품 다변화·시장 확대 등 시장 경쟁 전략이 기술 개발 못지 않게 중요하게 되었다. 수요 변화에 맞추어 시장을 쪼개고 그에 맞게 다양한 제품을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MPV 도입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으로 질적 변화를 꾀하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양적 성장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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