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평] 금융기관 개방태세 아직 멀었다
  • 洪甲秀 (삼성생명 이사·경제학 박사) ()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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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태국에 출장갈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 비하면 국민소득이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국가인데도, 외국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응대할 번호가 따로 있는가 하면, 길거리에는 영어로 된 간판과 길 표지판이 많았다.

홍콩·싱가포르의 경우에도 금융기관에 외국인이 근무하는 예가 허다한데 그 중에는 한국 사람도 많다. 사실 아시아에서 영어로 대화하기를 기피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특히 한국에서 외국인이 금융기관에 고용된 사례는 손꼽을 정도이다.

한국은 이제 금융 개방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금리자유화 확대,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 채권시장 부분 개방 등 개방전략을 단계적으로 펼치고 있다. 결국 3~4년 후면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자유화될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인 개방정책 덕분으로 그동안 금융기관은 시장 개방에 대비하여 시스템을 개발하고 나름대로 금융 인력도 양성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은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을 뿐 증권·투신·보험·단자·리스 등으로 가면 그 강도가 매우 약한 실정이다. 은행마저도 정보망 구축과 선진 노하우 습득은 세계에서 금융 비효율성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이다.

선진 금융기법 도입 서둘러야 한다

21세기라고 해야 앞으로 기껏 5년도 안남았다. 그때까지 한국 금융계에 다양한 지각 변동이 있으리라는 점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계 개편, 남북통일 등 굵직한 경제외적 요인도 작용하겠지만 개방과 자유화라는 금융 환경의 변화가 큰 변수가 될 것이다. 혹자는 예기치 못한 금융 공황까지 우려하기도 한다.

우선 대내적으로 주식 및 채권 시장의 개방 정도가 커지고 금융선물이 도입되면서 개방·국제화 단계가 앞으로 2~3년이면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게 된다. 한편 외국 증권사·투자회사의 국내 진출도 활발해질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시장은 냉엄한 ‘프로’의 세계에 진입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그동안 선진 금융기법 도입에 소홀한 국내 금융기관은 경쟁 면에서 상당히 열세에 놓일 것이 명약관화하다.

대외적으로는 금년부터 가동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내년에 가입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통해 한국은 선진국, 특히 미국의 개방 압력을 더욱 크게 받을 것이다. 자의에 반한 시장 개방은 주가·환율·금리의 변동 폭을 확대시키면서 금융 자산 운용의 위험도를 높이고 국민 경제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격변의 미래 대처할 조직 재정비 시급

21세기가 오면 전반적인 사회 환경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와 문화를 지배해 왔던 획일주의는 무너지고 개인의 개성이 존중된다. 사회적 관심은 환경을 우선하는 ‘녹색혁명’ 쪽으로 옮겨갈 것이며, 지식·정보화 시대가 될 것이다. 사회적 가치가 존중되고 창의성·유연성·예측성이 중시될 것이다. 업무의 분화·효율성·다양성·전문화와 함께 세계 속의 국가·회사·자아가 추구될 것이다. 더욱이 국경 없는 무한 경쟁 속에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후발 경제권이 세계 시장을 거세게 파고듦에 따라 그동안 저가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한국 상품의 경쟁력은 점차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 한국은 노령화, 고소득, 남북 자유 왕래, 주5일 근무, 금융·보험 분야의 재택 근무, 삶의 질 존중, 지자제 실시에 따른 지역 평준화 등 다방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 예상된다.

21세기에는 금융산업도 다양화·종합화하여 시장경제 이론에 입각한 적자생존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즉, 부실한 금융기관은 다른 금융기관에 인수되거나 전환 또는 합병 과정을 거치는 등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명확해질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정부는 최근에 예금자 보호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각 금융기관은 낙오하지 않고 경쟁 원리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조직의 효율화와 투자·분석 기법 선진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미 상당수의 금융기관이 나름대로 조직을 다양하게 진단하기는 했다. 그러나 각기 내부 조직이 조직 진단을 실시함에 따라 서로의 이해가 달라 객관성 있는 결론을 얻지 못해, 몇년 못가 조직을 재정비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선진국의 경영 컨설팅이라든지 국내 전문 기관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이를 전적으로 수용해 곧바로 실행하는 과단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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