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선제골에 KTF 맹추격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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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광고, 거리 응원 무임승차로 ‘재미 톡톡’



월드컵에는 ‘공식 우승 후보’들이 방심하다 복병에게 덜미를 잡히는 이변이 종종 발생한다. 월드컵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공식 후원사들이 다른 기업의 편법 마케팅에 뒤통수를 맞는다. ‘월드컵’이나 ‘피파’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교묘히 공식 후원사와 진배없는 판촉 행사를 벌이기 때문이다. 이런 숨바꼭질 마케팅을 ‘앰부시(매복)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어김없이 앰부시 마케팅이 판치고 있다. 특히 거리 응원에 편승하는 새로운 기법이 선보이고 있다.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던 6월14일, 서울시청 앞 수십만 군중 사이에서 앰부시 마케팅이 활개를 쳤다.


단연 돋보인 것은 행사 주최자인 SK텔레콤이다. 이날 시청앞은 ‘스피드 011 광장’ 같았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악마들 티셔츠에는 ‘비 더 레즈’와 함께 Speed 011이라는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이 회사의 월드컵 마케팅팀은 전원이 현장 행사 준비에 투입되었다. 프로모션팀 우태혁 대리는 “월드컵 직전 조사에서 ‘월드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로 SK텔레콤이 1위에 올랐다”라고 자랑했다. 수천억원을 내고 공식 후원사가 된 다른 업체가 들으면 기가 찰 노릇이다.


SK텔레콤이 얻은 첫 번째 행운은 공식 후원한 붉은악마 응원이 범국민적 축제로 확산된 것이다. SK텔레콤은 지금의 ‘대∼한민국’ 구호, ‘필승 코리아’ 노래가 자신들의 프로모션을 타고 번졌다고 본다. 티셔츠 마케팅도 성공작이었다. 붉은악마 티셔츠를 그동안 5만장 배포했다. 우씨는 “티셔츠 문의 전화만 하루에 3백통 넘게 온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행운은 시청앞 응원 행사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 미국대사관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입장과 기업의 요구가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세종문화회관앞 도로 한 켠에서 벌이던 SK텔레콤 응원전은 시청앞으로 ‘영전’해 규모가 커졌다. 내외신 보도에 단골 인용되면서 공짜로 매스컴을 탔다. SK텔레콤은 월드컵 마케팅에 1백50억원을 책정했는데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50억원 정도가 응원전에 쓰였다. SK텔레콤 홍보실 유은희 대리는 “앰부시 마케팅에 대해 국제축구연맹에서 특별한 제지는 없었다. 팩스가 한 장 왔지만 경고라기보다는 안내문에 가까웠다”라고 말했다.


10일 미국전과 14일 포르투갈전 때는 광화문과 시청앞 곳곳에서 콜라를 무료로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건영식품이 815콜라 홍보 활동을 벌인 것이다. 이 회사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3만병을 무료로 배포했다. 경기 시작 5시간 전부터 시청과 광화문을 돌아다니며 815콜라를 무료로 배포한 류성준 홍보팀장은 “아직 815콜라가 죽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 이벤트에 건영식품은 5천만원 가량을 썼다. 공식 후원사인 코카콜라의 모습을 시청앞과 광화문에서 찾기는 힘들었다.


시청 옆 을지로 입구에서는 삼성카드 홍보팀이 시민들에게 생수를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히딩크 그림이 들어간 엽서와 A1 크기 히딩크 브로마이드를 뿌렸다. 브로마이드에는 물론 삼성카드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삼성카드는 ‘국민적 영웅’ 히딩크를 일찌감치 모델로 기용해 재미를 보고 있다. 간절한 목소리로 ‘히딩크,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고 말하는 광고가 유명하다. 홍보팀 고영호 차장은 “히딩크와의 계약이 6월 말로 끝나는데 재계약이 될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콜라·생수에 히딩크 브로마이드까지


방심 때문에 초기에 ‘거리 응원 마케팅’을 놓친 공식 후원사들도 뒤늦게 가세했다. 14일 저녁 서울 대학로에서는 교통이 통제되고 대형 스크린을 통한 응원전이 열렸다. 그동안 응원 이벤트를 소홀히 했던 KTF가 이 곳에서 SK텔레콤에 대한 반격 의지를 다진 것이다. 장애인 70여명을 초청해 맨 앞 일곱 줄을 채운 것은 보기 좋은 차별화 전략이었다. 이날 인기 가수 장나라의 공연도 있었다. KTF는 장나라를 CF 모델로 내세웠는데, 우연히 장나라가 이름을 부른 네 선수 중 세 선수가 골을 넣어 화제가 되었다.


KTF 오영호 차장은 “공식 후원사로서 KTF가 거둔 홍보 효과가 6월9일까지 국내 2천5백억원, 해외 5천억원이라고 계산했다. 그러나 폴란드전 이후 지금은 각각 1조원 가량 되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SK텔레콤처럼 티셔츠를 나누어 주지는 않았지만 응원용 막대 풍선을 뿌렸다. 한 KTF 관계자는 “SK텔레콤의 주장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공식 후원사도 아닌데 월드컵 브랜드 인지도에서 1위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KTF가 인지도 1위다”라면서 경쟁 의식을 보였다.


앰부시 마케팅 업자들은 왜 응원전을 이용하는 것일까? 인파가 모이는 거리 응원의 광고 효과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법적인 제약에서 벗어나기 좋다는 것도 이유다. 제아무리 국제축구연맹이라도 조국을 응원한다는 구실에는 트집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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