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두둑한데 생각은 ‘왼쪽’
  • 신호철 (eco@sisapress.com)
  • 승인 2003.10.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대생 설문조사 답변 ‘극과 극’…여학생 성경험자 비율은 가장 높아
가장 돈을 쉽게 버는 학생들이지만 경제관은 가장 좌파적이고, 성적으로 가장 개방적이지만 성경험은 가장 낮은 학생들. 바로 서울대생들이다.
최근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2건의 결과가 잇달아 나왔다. 하나는 서울 지역 8개 대학(서울대 경희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학보사가 학부생 2천2백22명을 조사해 10월6일 발표한 ‘대학생 경제생활 및 의식 설문 조사’다.

또 하나는 전국 6개 대학(서울대 동아대 경희대 전북대 국민대 서울시립대) 사회학과 실습팀이 학부생 1천5백42명을 조사한 ‘2003년도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 연구’다. 서울대 홍두승 교수 등이 지도교수로 참여한 조사팀은 2003년 1학기를 통틀어 조사를 진행한 뒤 지난 10월8일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에 발표된 이들 설문조사 내용은 ‘늘 그랬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보수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각 일간지가 뽑은 테마다. 심지어 이라크 전투병 파병에 대해 70%가 넘는 대학생이 찬성한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사실상 오보였다(하단 박스 기사 참조).

두 조사에서 겹치는 대학은 서울대와 경희대인데, 그 중 서울대생들의 답변이 극과 극을 달리고 있어 흥미를 끈다. 여러 항목에서 서울대생의 답변은 다른 대학과 비교해 가장 적거나, 가장 많거나, 가장 높거나, 가장 낮았다.

가령 경제 생활을 살펴보면, 서울대생 가운데 월수입이 76만원 이상인 학생은 21.7%에 달한다.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같은 항목에서 연세대가 13%, 성균관대가 8.9%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이 설문에서 76만원 이상에 대해서는 상한선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고액 수입자 현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의대와 법대 재학생 중에서 100만원 이상 고액 수입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서울대 의대 1학년인 김호영씨(가명)는 “지난 1학기에 한 달 평균 1백30만원을 벌었다. 1주일에 두 번, 2시간씩 고등학생을 가르치고 60만∼70만 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친구 가운데는 한달에 1백90만원 버는 사람도 있다. 번 돈은 여자 친구에게 쓰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번 돈 여자 친구한테 쓴다”

서울대생들이 고액 과외 교습을 하는 대상은 대부분 강남 지역 부유층 자녀이며, 법에 정해진 세금을 내는 학생은 거의 없다. 사실 서울대 재학생 스스로 강남 지역 출신인 경우도 많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10월8일 “서울 지역 출신 서울대생이 40%인데, 이들의 강남 대 강북 출신 비율은 10 대 1이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서울 강남의 부유층을 물질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서울대생들의 경제관은 ‘왼쪽’으로 가 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을 묻는 항목에서 서울대생은 단연 1순위로 빈부 격차를 꼽았다(36.5%). 강남 부자들을 자주 접촉하다 보니 빈부 격차를 몸으로 실감해서일까. 어느 대학도 서울대생처럼 빈부 격차를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다(평균 28.4%). 서울대생들은 또 재벌을 중시하는 경제 시스템(15.1%), 취약한 복지제도(8%)를 우리 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는데, 각 항목 모두 다른 대학보다 지적한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노사 갈등을 지적한 학생의 비율은 가장 낮았다. 반면 연세대생과 성균관대생 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점으로 ‘국제 경쟁력 부족’을 제일 많이 꼽았다.

서울대생들은 또 ‘경제가 잘된다는 의미’를 ‘정의로운 분배와 빈부 격차 해소’로 이해했는데(44.6%), 이는 대학생 평균(34.2%)과는 큰 차이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국민 소득 향상 및 경제 성장’(40%)을 1순위로 꼽았다. 또 한국의 경제 주체를 ‘대기업’이라고 응답한 서울대생은 15.8%로, 조사 대학 중 가장 낮았다.

김민수씨(서울대 사회학 22)는 “서울대생들의 경제적 수입이 많다는 것과 경제 의식이 분배중심적이라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본다. 다른 대학 학생들은 집에서 용돈을 타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도 과외비로 매달 70만원씩 벌고 있지만 생활비를 대기에 급급하다”라고 말했다. 한 서울대생은 “다른 대학에 비해 취직 준비를 적게 하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대학 분위기 때문에 진보적으로 흐르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대생 가운데 취직 준비를 하는 학생은 17%로, 조사 대학 중 가장 낮다.

조사 결과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서울대생들의 성의식이었다. 사회학과 조사에서 서울대 여학생들의 성경험자 비율은 11.2%로 비교 대학 중 가장 높았다(전체 평균 7.4%). 반면 서울대 남학생 가운데 성경험자 비율은 27.1%로 꼴찌였다(전체 평균 32.8%).
왜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일까? 서울대 심리학과 4학년 고건혁씨(23)는 “남학생 성경험이 낮은 것은 매매춘 기피 때문이다. 학교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다른 대학과 교류가 적고, 문화도 다르다”라고 분석했다.

학교 다닐 때는 돈을 잘 번다는 서울대생들이지만, 막상 취업 첫 해에 받을 것으로 예상한 연봉은 1천5백만원 가량으로, 비교 대학(약 2천만원)에 비해 오히려 낮은 편이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