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 비리 앞에 ''양심''은 금물?
  • 權銀重 기자 ()
  • 승인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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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내부 고발자 철저히 짓밟아…지만원·이남용 박사 강제 퇴직당해
1973년부터 30년 가깝게 밀실에서 방위력 증강 사업을 추진해온 군에도 ‘휘슬 블로어’, 즉 내부 고발자는 있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수뇌부에 맞서 ‘사업이 잘못 되었다’고 직언하면 군은 철저히 응징했다. 군사 기밀을 누설했다고 징계하고, 그것도 모자라 결국 옷을 벗겼다. 이들의 합리적 지적은 무시되었고 군은 사업을 계속 밀어붙였다.

지만원 박사(58)와 이남용 박사(45)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지만원 박사는 1986년 MCR C(master control and reporting center:군 방공망자동화시스템)사업 실패 원인을 규명하다가 해직을 강요받아 결국 1987년 예편했다. 이남용 박사는 린다 김 덕분에 유명해진 백두사업의 결함을 지적하다가 1999년 9월 직권 면직되었다. 특히 이박사는 자신이 연구부장으로 몸 담고 있었던 국방연구소(국방연) 산하 국방정보체계연구소가 군 수뇌부에 의해 해체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군이 키운 전문 연구 인력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박사는 미국 해군재단대학원(NPS)에서 시스템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박사는 미시시피 주립대학에서 경영정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박사는 국방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국방 전략의 시스템화를 연구했고, 이박사는 전쟁지휘본부시스템·국방 전자상거래 시스템 등을 구축해 국방 정보 전산화에 공헌했다.

조악한 계약서 보고 놀라 자빠질 뻔

해당 분야 전문가인 두 사람은 전공 지식에 기초해 국방부 사업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놓았으나 군은 오히려 이들을 해직시켰다. 해직된 지금도 이 두 사람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백두사업과 MCRC사업은 잘못되었고, 제2·제3의 똑같은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백두사업은 우리 군이 과학·기술 군으로 가기 위해 진행한 최초의 소프트웨어 중심 획득사업이다. 하지만 1991년 예산을 잡을 때부터 백두·금강 사업에 참가했던 이남용 박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6년 군 수뇌부가 린다 김이라는 여자 로비스트에게 휘둘리면서 상대적으로 조건이 열악한 미국 E시스템이 사업권을 따낸 것도 놀라웠지만, 정보 처리 시스템 계약을 마치 탱크나 포탄 계약하듯이 처리하는 군의 무성의한 태도에 더욱 경악했다.

특히 계약 문서는 터무니없이 조악했다. 국가간 거래 방식인 해외무기판매(FMS) 조건으로 계약하면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미국 국방부 표준 양식(MIL-STD-598)에 의거한 작업기술서(SOW)가 아예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박사는 “계약서가 설계도라면 작업기술서(SOW)는 시공계획서에 해당하는데, 이를 제시하지 않았다면 미국측이 도대체 무얼 보고 시스템을 만들었겠느냐”라고 말했다. 시스템 전문가와 계약 전문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로비스트의 ‘치맛바람’에 휘둘려 계약하다 보니 사업 자체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박사가 1998년 7월 군 특별조사팀으로 직접 참여해 시스템을 조사한 결과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이박사는 2천억원이 투입된 백두사업에 대규모 추가 비용 발생이 확실하고 기대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당시 천용택 국방부장관과 획득책임자에게 보고했다. 직언을 한 후 그는 국방부 획득책임자에게 불려가 적지 않은 수모를 겪었다. 국방부 산하 연구소가 어떻게 국방부가 하는 일을 비판하느냐며 심한 질책을 받았다.

그러다 그는 1999년 11월10일 날벼락 같은 인사 명령을 받았다. 1989년 군사 정보 통합을 위해 운영해온 국방정보체계연구소를 해체해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으로 통합하니 대전으로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이박사는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가 군 연구 인력 감축은 불가피했지만 연구소를 통째로 없애버린 것은 납득할 수 없다”라며 의아해 했다.

이박사는 1999년 9월 숭실대학교로부터 전산학과 교수가 되어 달라는 제의를 받고 20년 간의 군 생활을 끝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군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퇴직금과 연금도 제대로 안줘

군의 돈으로 유학을 가면 유학 기간의 두 배를 근무해야 하는 의무복무조항(국방연 내규 22조1항)을 어겼고, 퇴직일인 9월16일 이전인 9월1일부터 숭실대학교 교수에 임용되었기 때문에 겸직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직권 면직시킨 것이다. 직권 면직을 당하면 퇴직금과 연금이 정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는 기가 막혔다. 자신이 다니던 국방정보체계연구소가 군 수뇌부에 의해 해체되었고, 국과연 인사 담당 간부가 하드웨어 중심인 연구소에는 경영학·산업공학 전공자가 필요없다며 퇴직을 강요했다. 또 퇴직하겠다고 말했던 8월 중순, 행정 담당자가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일정상 9월16일에야 퇴직하게 되었는데 보름간 겸직했다고 해고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박사는 국과연을 상대로 직권 면직 무효소송을 제기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만원 박사의 경험도 기가 막히다. 국방연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던 1985년 지박사는 율곡사업 10년사를 평가하라는 프로젝트를 지시받았다. 전두환 대통령 명령으로 진행되던 프로젝트여서 지박사는 국방부에 있는 자료는 무엇이든지 볼 수 있는 ‘끗발’이 있었다. 각종 획득사업 자료와 방위예산 자료 등을 쭉 훑다가 그는 1979년부터 진행된 공군 MCRC사업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공군본부가 발주한 이 사업은 당시 2억5천만 달러, 총 국방 예산의 8%가 투입된 대규모 사업이었다. 이 사업의 골자는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운용되던 공군 18개 방공 레이더 기지와 육군 24개 방공포대 레이더 기지를 통합해 운용한다는 것이다.

지박사는 특검단과 보안사의 협조로 내사 자료를 검토한 결과 당시 계약사인 공군이 얼마나 엉성하게 사업을 추진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 1985년 통합 운영되기 시작한 공군 방공망을 보란 듯이 뚫고 중공 비행기들이 잇달아 국내로 들어오자 군 내부에서조차 공군 방공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86년 9월 그는 합참 공청회장에서 공군의 방공망이 단돈 25 달러 가치도 없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비판에 직면하자 합참은 작전국장 주도로 자체 조사팀을 만들었다. 지박사는 ‘아무 문제 없다’는 말만 반복하는 합참 조사팀에 대응하기 위해 현장 실험을 제안했다. 조사팀은 실험을 위해 대구 ○○공군기지에서 팔공산 동쪽에 헬기 4대를 띄웠다. 그러자 MCRC에는 팔공산 서쪽에 적기 80여대가 출현했다는 표시가 나타났다. 그러나 군 조사팀은 어쨌든 비행기가 잡혔으니까 ‘문제 없다’고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지박사는 “레이더가 모든 반사 전파를 비행기로 표시하지는 않지만, 지역 레이더가 통합되었을 경우 전파의 상호 간섭 부분을 비행기로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오류를 보정해야 하는데 공군이 이를 휴즈 사에 주문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지박사는 휴즈 사의 담당자를 만나 시스템 오류를 잡아달라고 요청했고, 휴즈측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공군측이 ‘아무 문제없다’고 휴즈의 기술진을 되돌려보내는 희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후 지박사는 조사를 위해 방문한 오산 통합방공망기지 문앞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고, 군이 공군을 감싸는 태도를 보이자 절망했다.

곧 군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국방연은 1986년 9월 그에게 군사 기밀 누설을 이유로 시말서를 쓰라고 했다. 공청회에서 MCRC가 비행기를 잡지 못한다고 발표해 군사 기밀을 누출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굴욕을 참으면서 시말서를 썼다. 그러다 황관영 국방부 기획실장 지시로 1986년 10월에는 국방대학원으로 전출되었다가 황실장이 대학원장으로 온 1987년 1월에 ‘무조건 옷 벗으라’는 말을 듣고 미련 없이 대령으로 예편했다.

이들은 애써 키운 내부의 소수 전문가마저 말살하는 군의 풍토를 개탄한다. 그리고 군이 개혁되려면 내부 전문가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남용 박사는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율곡은 군인이 아니었다. 군 출신이 국방의 모든 것을 흔드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지만원 박사는 “1961년 포드 자동차의 맥나마라 회장이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한 후 미군이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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