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 16기 미스테리 …JP, 공군 망치려고 작정했나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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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투성이 KF 16 전투기 추가 생산 ‘독단적’ 결정… 군 요구 일축, 로비 의혹도
JP, 공군 망치려고 작심했나
약점투성이 KF 16 전투기 추가 생산 ‘독단적’ 결정… 군 요구 일축, 로비 의혹도

지난 4월22일 9시15분 국무총리실에서 90년 구성된 이후 두 번째로 소집되는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김종필 총리가 주재한 이 회의에는 주요 부처 장관들을 포함해 13명이 참석했다. 얼핏 국무회의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근호 항공우주연구소장과 홍창선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가 참석한 것을 보면 국무회의는 아니었다.

제2차 항공우주산업 개발 정책 심의회. 이 회의 공식 명칭이다.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 이 심의회에는 몇 가지 심의 안건과 한 가지 보고 안건이 올라왔다. 산업자원부는 심의 안건으로 △항공우주산업개발기본계획 △통합 법인 설립 추진 현황 △정부 지원 대책을 제안했고, 국방부는 한국형 고등훈련기사업(KTX-2) 추진 현황을 보고했다.

KF16, 북한 미사일 기지 공격 불가능

이 회의는 항공산업의 미래에 영향을 크게 미칠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시사저널>은 이 심의회 결과를 담은 회의록을 입수했다. 이 회의록은 공군과 항공업계에 파문을 일으킨 KF 16 추가 생산 결정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고, 공군 숙원 사업인 차세대전투기 도입(FX) 사업이 왜 연기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은 가까운 시일에 추진하기 힘들어졌다. 미국 공군 주력기인 F 15와 비슷한 성능을 갖춘 최첨단 전투기를 도입하고자 했던 이 사업은 지난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무기한 연기되었다. 올해 들어 눈에 띄게 경제가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자 국방부는 차기 전투기 사업을 다시 추진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국방부와 공군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걸림돌이 불거졌다. 그동안 KF 16을 생산하던 삼성항공이 KF 16을 더 만들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삼성항공은 공군이 주문한 KF 16 생산이 마무리된데다 몇 년은 지나야 기종이 결정되는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을 기다리다가는 그동안 축적한 항공 기술이 사장될 우려가 있고, 항공 기술자 3천명이 실업자가 된다고 주장했다. 산업자원부는 삼성항공을 지원했다.

하지만 공군은 KF 16 기종이 가진 성능이 한국 군 전략에 적합한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KF 16과 그 원조 격인 F 16 전투기가 추락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엔진이나 날개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또 KF 16은 한번 이륙한 뒤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50여 분이다. 최고 속도를 내거나 공중전이 벌어지면 그 시간은 더 짧아진다.

이같은 KF 16의 단점은 한국군이 공중 방어 체계를 갖추는 데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북한 미사일 기지가 주로 평양 이북에 자리잡고 있어 KF 16으로는 이를 공격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공군이 F 15나 유로파이터 같은 최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군사 전략 전문가들은 KF 16 추가 생산이 경제 운용에는 득이 될지 모르지만 군사 전략 면에서는 들이는 비용에 비해 얻는 효과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단호하게 KF 16을 추가 생산하기로 결정한 이는 김종필 총리였다. 심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김총리는 “한국형 전투기 사업(KFP)을 통해 상당 수준 기술을 축적했는데 이대로 종료되어서는 곤란하며, 후속 기종 선택은 수년이 걸릴 것이므로 현재의 기종(KF 16)을 활용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국내 항공기산업은 오래 전에 출발했으나 시행 착오를 많이 겪는 바람에 발전이 더디었다. 80년 이후 시행된 국책 사업이 자주 끊기면서 기술이 축적되지 않았고 전문 인력도 유지하지 못했다. 이같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생산 물량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 따라서 김총리의 이 발언만 따로 떼어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

하지만 말은 문맥에 따라 의미와 뉘앙스가 달라진다. 당시 김총리가 천용택 국방부장관과 주고받은 전체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천용택 장관은 “KF 16 추가 생산을 내부 검토한 결과 20대 수준(1개 대대)이 필요하며 예산 8천억여 원이 소요된다”라고 보고했다. 그 보고를 듣던 김총리는 “KF 16을 추가로 생산하는 규모는 약 40대가 좋다고 생각한다. 이 달 (4월) 내로 마무리짓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전투기 수요자인 국방부가 20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특별한 설명 없이 40대로 늘어나 버린 것이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 물 건너갔다”

KF 16을 사용해야 하는 공군은 추가 배치를 꺼리는데도 한사코 KF 16을 쓰라고 하면서, 그것도 주무 부처가 자체 평가해서 필요하다고 제시한 물량의 2배나 되는 전투기를 떠안긴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한 무기거래상은 “군은 가능하면 많은 무기를 확보하려 하고 정부는 줄이려고 하는 것이 보통인데, KF 16 추가 생산 결정은 군과 정부의 입장이 뒤바뀌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지금 국방 예산으로는 KF 16 20대를 추가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천장관은 이 날 심의회에서 “KF 16 20대를 추가 생산하는 데 드는 예산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김총리는 예산을 마련할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예산만 2배로 늘려버린 것이다. 1조6천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KF 16을 추가 생산하는 데 들어간다면, 차기 전투기 사업은 사실상 물 건너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그와 같은 결정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내려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무기거래상의 말이다. 한 외국 항공기 업체 관계자는 “전투기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무기 거래에는 로비가 치열하다. 결국 삼성항공과 록히드마틴이 로비전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정부가 KF 16을 추가 생산키로 잠정 결정하자, 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대우항공의 통합 법인인 ‘한국우주항공산업(KAI·가칭)’이 벌이는 외자 유치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통합항공법인에 투자 의사를 내비친 기업은 6∼7개. 보잉·브리티시에어로스페이스·록히드마틴·다사·닷소 같은 업체가 여기에 속한다. 삼성항공에 KF 16을 생산할 수 있게 라이선스를 준 록히드마틴을 제외한 외국 업체들은, KF 16을 추가 생산하겠다는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투자 의향을 밝힌 한 유럽 항공업체 중역은 “KF 16 추가 생산 결정에 실망했다. 처음 투자 계획을 세울 때와 전혀 다른 변수가 나타났으니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통합 법인이 성공적으로 출범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생산 물량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KF 16 추가 생산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국 항공기 업체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한 외국 항공 업체의 마케팅 이사는 “투자 의사를 밝힌 외국 항공업체들은 모두 한국 항공 기술자의 실업을 방지할 수 있는 생산 물량을 제공하겠다는 제의서를 냈다. 당장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항공기 날개나 동체·엔진·미사일을 생산하면서 관련 기술을 한국에 이전하겠다고 제의했다”라고 말했다.

항공기산업이 발전하려면 핵심 부품 기술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어차피 항공기의 모든 부품을 만들 수는 없다. 덩지를 키워가고 있는 외국 항공기 제작업체와 나란히 경쟁할 만한 항공기 조립 생산 능력을 갖추기 힘들다면 핵심 부품에 대한 기술 수준을 높여가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항공기산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정부는 방향타 구실을 한다. 한국 항공기산업처럼 시장·기술·자본이 부족한 경우 정부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고 시장 규모를 확대하면서 국내 업체가 선진 업체와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세계 유수의 항공기 업체와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고 핵심 부품을 생산한다면, 선진 항공기 업체에 주요 부품을 수출할 길도 열 수 있다. 더욱이 한국은 기계와 전자를 비롯해 주변 산업의 기술 기반이 갖추어져 있다.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고 국내 역량을 결집해 체계적으로 항공우주산업을 발전시킨다면, 세계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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