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는 왜 춤에 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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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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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전용 ‘록 바’ 성업…“자유로워지고 싶어 춤춘다”
얼마 전 회사원 박 아무개씨는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아들에게‘장래 희망이 무어냐’고 물었다가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학교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속도 별로 썩이지 않는 아들 녀석 입에서 나온 장래 희망은 다름 아닌‘백댄서’. 머리에 빨갛고 노란 물을 들이고 방송국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불량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박씨에게 아들이 백댄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댄스 음악 열풍이 불면서 춤에 대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이 전혀 낯선 것은 아니다.

대학생들도 춤에 빠져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웬만한 학생들에게 힙합 춤은 전공 필수는 아니더라도 전공 선택쯤은 충분히 된다. 서울예전 랩 댄스 동아리‘제니스’의 현재 회원은 약 20명 정도. 이들의 주요 활동 공간은 학교보다는 외부 무대인 경우가 많다. 댄스 페스티벌이나 각종 이벤트에서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현란한 율동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외부 행사에 초청될 때마다 10만원 안팎의 부수입도 챙긴다. 이런 인기 덕분에 다른 동아리와는 달리 ‘제니스’에는 10대1에 이르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가입할 수 있다. ‘제니스’출신들 중에는 방송사 안무 기획자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장 이현주씨(광고창작과 1)는 “춤에 몰입하면서 뭔가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춤에 빠져드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표현 방법을 잃어버린 신세대들이 꺾고 돌리는 힙합 동작은 춤 동작만큼이나 비틀리고 꼬인 현실에 대한 그들 나름의 표현 방식인 셈이다.

신촌과 강남 일대에는 얼마 전부터‘록 바’라는 새로운 형태의 춤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촌의‘1004’나‘블루 몽키스’,‘벤츄리’등에는 그야말로‘춤’만을 즐기려는 10대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몇년 전 크게 유행했던 록 카페와 형태는 비슷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도 춤을 즐긴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입장료 5천원만 내고 들어가거나 4천원짜리 콜라 한 잔 시켜 놓으면 몇 시간이고 춤을 출 수가 있다. 그렇다고 이들 10대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록 바를 찾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기서 추는 춤은 나이트클럽처럼 리듬에 맞춰 가볍게 흔드는 춤이 아니라 유승준이나 엄정화, 아니면 H.O.T. 등 인기 절정의 댄스 가수들을 그대로 흉내낸, 프로 수준의 춤들이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보다는 이들 동작을 연습하려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일 법하지만 10대들에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춤에 빠진 10대들은 밥 안 먹고는 살 수 있어도 춤 안 추고는 살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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