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댐 건설하면 물난리 없다고?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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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교부 “임진강댐 등 건설해 경기 북부 홍수 조절”…지형 특성·근본 대책 외면한 탁상 행정
댐이 또다시 문제다. 단순화해 말하자면 경기 북부, 특히 연천·파주 지역 주민은 연천댐이 이번 물난리를 일으킨 원흉이라고 생각한다. 96년 물난리 때 오른쪽 날개가 무너진 뒤 3년이 지나도록 완전 복구되지 않은 연천댐이 이번에 또 무너지면서 연천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홍수 방지 대책은 더 큰 댐을 새로 건설해 이 지역 물난리를 막겠다는 것이다.

건교부가 제안한 최선안은 임진강 상류에 대규모 다목적 댐(가칭 ‘임진강댐’)을 짓는 것이다. 문제는 임진강 전체 유역 면적 중 3분의 2(63%)는 북한 땅이라는 것. 따라서 국제 하천이나 다름없는 임진강 유역에 댐을 지으려면 입지 선정에서부터 수몰 지역 주민들에 대한 보상, 군사 시설 이전, 수계 관리, 수문 개폐 시점 결정에 이르기까지 치수(治水)·유수(流水) 모든 과정에서 남북 간에 철저한 공동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조원철 교수(연세대·토목공학)의 지적이다.

이처럼 복잡한 현실 여건을 감안해 건교부가 차선책으로 구상하는 것이 임진강 남쪽이나 한탄강 유역에 중소 규모 댐을 짓는 것이다. 실제로 96년 건교부로부터 용역을 의뢰받은 한국수자원공사는 2년간 임진강 유역 댐 건설 예비 타당성 조사를 벌인 데 이어 98∼99년 본격적인 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 결과는 연말께 발표할 예정이지만, 임진강·한탄강 유역 5개 구역 정도를 댐 건설 최적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건교부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또 임진강댐 건설이 좌절되면 중소 규모 댐을 2개쯤 동시에 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먼저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연천댐으로 눈을 돌려 보자. 연천댐이 홍수 조절용 댐이 아닌 소수력 발전용 댐이라는 지적은 옳다. 연천군 전체 필요 전력량의 30% 가량을 생산하는 연천댐은 웬만한 대형 저수지보다 저수량이 적은 소규모 댐이다(저수량 1천3백만t). 따라서 이번처럼 하루 평균 2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 연천댐은 순식간에 만수위에 도달한다.

그러나 현재 주민들이 요구하는 대로, 흉물스러운 연천댐을 철거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김이현 교수(경복대·토목설계)는 우선 연천댐이 서 있는 한탄강 유역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탄강 양변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곧 한탄강 유역은 보통 ‘V’자형 단면을 가진 일반 계곡과 달리 ‘U’자형 계곡이다. 따라서 조금만 비가 내려도 한탄강 수위는 급격하게 높아진다.

더욱이 한탄강이나 임진강은 상류쪽 경사도가 0.9∼1%인 데 반해 하류쪽 경사도는 겨우 0.2%이다. 따라서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가면서 유속이 급작스럽게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강 바닥이 계속 높아지는데, 이는 홍수 피해를 키우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이같은 지형 특성을 감안한다면 연천댐 붕괴는 결코 이번 물난리의 직접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김교수의 지적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이같은 지형 특성은 또 다른 결론과 잇닿아 있다. 이 지역에서는 댐으로 홍수를 조절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결론이 그것이다. 이강일 교수(대진대·토목공학)는 경기 북부 지역의 지반 특성 때문에도 댐 건설은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임진강·한탄강 유역 지반이 대부분 상당 기간 풍화가 진행된 풍화암이라는 것이 이교수의 지적이다.

댐과 같은 구조물은 단단한 기반암(bed-rock) 위에 놓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연천댐은 애초부터 단단하지 못한 암석 위에 쌓은데다 96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지반이 충격을 받아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그라우딩이나 접합 처리에 획기적인 신기술이 도입되지 않는 한 연천댐을 철거하는 편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임진강댐 지어도 의정부·양주 등은 물바다

그런데도 남북이 합의해 임진강 본류에 댐을 건설할 수 있다면 경기 북부 홍수 방재에 상당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단 임진강댐이 들어선다 해도 한탄강 지류를 끼고 있는 지역, 곧 의정부·양주·동두천 등지는 이로 인한 홍수 방지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김이현 교수의 말이다. 발원지나 물 흐르는 방향이 다른 만큼 임진강 본류가 관통하는 지역(철원·연천·파주)과 이들 지역에는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난리 직후 건교부가 임진강댐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 안창희 사무국장은 96년 물난리 때부터 임진강댐을 거론했던 건교부가 이번에도 똑같은 레퍼토리로 여론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생태계의 보고인 민통선 일대에 댐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를 용납하기 어려울 뿐더러, 성사 자체가 불투명한 계획을 내세워 중앙 정부가 방재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이 들끓자 건교부는 임진강댐 건설 계획을 유보하는 대신 하천 바닥을 대대적으로 준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보일 뿐 포기는 아니다. 홍수 조절뿐 아니라 90년대 들어 급격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기 북부 지역의 생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임진강댐을 포함한 댐 건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건교부의 상황 인식이다.

문제는 이같이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중앙 정부가 다시금 댐 건설 같은 ‘한 방에 끝내기’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사실상 최근 몇 년간 물난리 피해를 가중시킨 원인으로 지적된 무분별한 도시화 문제, 곧 아스팔트 면적 확대, 하천 직강화, 유수지·펌프 시설 부족 따위 문제는 신도시 설계 과정에서부터 배태되어 있었다는 것이 최주영 교수(대진대·도시공학)의 지적이다. ‘35만 인구가 살 신도시를 5년 만에 뚝딱 만들어 내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도시 계획 과정에서 방재 개념은 애당초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기 북부 지역 물난리를 막으려면 댐 건설에 앞서 임진강·한탄강 유역 전반의 지형·유량·하수면 특성 따위를 조사하고, 치수 전문가를 참여시켜 도시 계획을 새로 짜는, 전면적이고도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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