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한 미사일 협상, 북한의 노림수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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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한 2차 미사일 협상 재개…한국 볼모로 식량 등 실속 챙기기 속셈
지난해 9월 강릉 해상으로 침투한 북한 잠수함 사건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던 미국과 북한 간의 2차 미사일 협상이 6월11일부터 미국에서 열리고 있다. 이 협상이 재개된 배경은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 협상이 관심을 끄는 것은 93년 6월 뉴욕 회담을 시작으로 94년 10월 제네바에서 타결될 때까지 무려 1년 4개월을 끈 미·북한 핵 협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북한의 강석주 외교 부부장과 미국의 갈루치 차관보가 대좌한 그때의 핵 협상은, 북한의 일방적인 판정승으로 끝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제네바 협약은 90년쯤 미국의 첩보 위성이 북한 영변의 실험용 원자로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행동을 감지함으로써 표면화한 북한 핵 위기의 결과물이다. 93년 3월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 위기감을 고조시킨 북한은 그 해 5월 노동1호를 동해로 시험 발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한국 미국 일본 등 관련 국가를 경악시켰다.

이때 미국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는 최근 박 근 전 유엔대사(한양대 교수)가 한·미 우호협회 주최 세미나에서 밝힌 자료에 잘 나와 있다. ‘93년쯤 미국은 한·미 연합 공군이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하는 것이 차라리 후환을 없애는 길이라며, 우리 정부에 북한 공습 작전을 제의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던 문민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이처럼 북한 핵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북한 간의 핵 협상이 시작되었다.

미·북한 핵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북한은 불장난을 계속했다. 대표적인 예가 94년 3월 판문점에서 북한의 박영수가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을 한 것이다. 이는 훗날 한국을 볼모 삼아 미국에 압박을 가하려고 한 위협으로 정확히 해석되었지만, 당시 한국민은 크게 동요했다. 그해 여름 북한은 또다시 노동 1호를 시험 발사하겠다고 발표해 우리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북한, 핵무기 대신 화학·생물 탄두 장착

이에 대해 미국은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보내 김일성을 만나게 하는 등 북한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잘 나가던 북한의 대미 자주 외교는 그 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함으로써 급변했다. 해양전략연구소 이춘근 박사는 “김일성이 사망해 내부 사정이 복잡해졌기 때문에 북한이 그 해 10월 제네바에서 협상을 마무리해 준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네바 협상에 따라 북한은 국제원자력위원회(IAEA)로부터 핵사찰을 받게 되었으나, 한·미·일을 주축으로 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로부터 경수로 2기와 함께, 이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 미국으로부터 중유를 공급받게 되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개발하지도 않은 핵무기를 내세워 한국과 미국을 농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노동 1호를 시험 발사한 데서 알 수 있듯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존재가 불분명한 핵무기를 놓고 열린 것이 핵 협상이었다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 것이 미·북한간 미사일 협상이다.

북한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 생산에 관한 한 선진국이다. 80년대에 북한은 옛 소련의 스커드B 미사일(사정거리 3백㎞)을 모방해 사정거리를 약간 늘린 스커드B 모방 미사일(사정거리 3백40㎞)을 독자 생산하는 데 성공해 87년에 백여 기를 이란에 수출했다. 90년에는 이 미사일을 토대로 사정거리가 5백㎞인 스커드C 미사일을 생산해 이듬해 시리아와 이란에 수출했다. 93년 시험 발사한 노동 1호는 스커드C를 다시 개량한 것으로, 5백㎏짜리 탄두를 달고 천㎞를 비행할 수 있다고 한다. 노동 1호의 탄두가 5백㎏이라는 것은 곧 재처리해 만든 핵탄두(무게 5백㎏)를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천㎞를 비행한다는 것은 일본을 때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후 북한은 이란에 노동 1호를 공급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93년 이스라엘은 북한이 중동 국가에 미사일을 수출하지 않으면 농업과 경제 원조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며 북한과 협상을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은 이스라엘과 북한의 접촉이 커넥션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북한 핵 위기가 높아지면서 이 접촉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중남미 국가들도 북한제 미사일 구입에 관심을 보였다. 국방정보본부가 입수한 미국 정보에 따르면, 에콰도르와 국경 분쟁을 겪은 페루는 북한제 스커드C 미사일을 5천2백50만달러에 도입키 위해 95년 5월부터 10월 사이에 북한 관리와 접촉했다고 한다. 북한은 94년 중국 기술을 토대로 사정거리가 각각 2천㎞와 3천5백㎞인 대포동 1호와 대포동 2호를 개발하겠다며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 미사일이 개발되면 오키나와 주둔 미국 해병대도 사정권에 들게 된다.

이러한 북한의 미사일 공세는 94년 10월의 제네바 핵 협상 타결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것이면서 동시에 독자성을 갖는 것이었다. 핵 협상이 타결된 뒤 미국은 96년 4월 북한 대표를 베를린으로 불러내 최초로 미사일 협상을 벌였다. 미국은 이 회담에서 장거리 미사일 수출을 제한하는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를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사일 개발과 수출은 자위권 행사이다.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미·북한 간에 평화협정을 먼저 체결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등 정치 공세로 맞서 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미·북한간 2차 미사일 회담은 작년 8∼9월쯤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6월 북한과 이란이 미사일 거래를 본격화하는 군사의정서를 교환한 사실이 밝혀져 1차 연기되었고, 9월 북한 잠수함 강릉 침투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무기 연기되었다. 잠수함 침투 무장 공비 소탕작전이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북한은 다시 노동 1호 시험 발사설을 흘리며 정치 공세를 폈다.

지난 5월 초 일본 언론들은 미국의 군사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노동 1호 탄두를 경량화하고 사정거리를 1천3백㎞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북한은 도쿄 시내를 가격할 수 있게 되었다(사정 거리 천㎞ 미사일은 도쿄 외곽에 떨어진다). 화학 무기나 생물 무기 탄두는 핵무기 탄두보다 훨씬 가볍다. 따라서 북한이 노동1호의 탄두를 경량화했다는 것은 미·북한 간 핵 협상에 따라 사용하기 어려워진 핵무기 대신 화학·생물 탄두를 장착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내부 사정이 극도로 취약한 북한으로서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으로 미사일 협상을 일괄 타결 쪽으로 끌고 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을 수출하지 않는 대신 상당 기간 국제 사회에 식량·경제 원조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동시에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할 전망이다. 이러한 주장을 토대로 북한은 제2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미·북한간 미사일 협상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북한이 한국만을 공격할 수 있는 프로그 미사일을 보유했을 때는 미국이 가만 있다가, 일본을 때릴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자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또 북한 미사일이 중동에 수출됨으로써 이스라엘과 일부 나토 국가가 북한제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가자 미국이 본격 개입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보다는 일본·이스라엘·나토 국가를 우선한다는 냉엄한 국제 현실을 보여준다.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도발 시도할 듯

핵 협상 당시 갖가지 공갈로 위협했듯이 북한은 앞으로 이어질 미사일 협상에서 한국을 볼모 삼아 유사한 협박을 되풀이할 전망이다. 이 협박에는 미사일 시험 발사와 지난 6월4일 일어난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북한 해군의 함포 사격 같은 도발이 포함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러한 위협에 편승해 한국으로 하여금 패트리어트로 대표되는 방공 미사일을 도입케 하는 상황을 만들려 할 것이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전역미사일 방어체계(TMD)에도 한국을 참여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북한간 미사일 협상이 우리 국익과 직접 연결되는 만큼 미국에 대해 우리 주장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추적해온 하경근 의원(민주당)은 “정부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같은 기구를 또 만들자는 미국의 요구를 덜컥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또 서울을 가격할 목적으로 전방에 배치된 북한의 방사포와 프로그 미사일을 북한 후방으로 빼야만 미·북한간 협상 타결에 동의하고 한국도 북한 식량 지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식으로 미국을 압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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