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지옥 해결사 ‘인공지능’ 신호등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5.12.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로 상황 맞춰 알아서 신호 조정, 내년 서울부터 시행…‘혼잡 비용’ 2천2백억 절감 기대
서울시 교통 신호등의 ‘지능지수’가 바뀐다. 지금까지 신호등은 상황에 따라 길이야 막히든 말든 입력된 신호 주기에 따라 일정하게 변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교통량의 증감에 따라 신호등이 스스로 신호 주기를 조정하지 못할 경우 켜져 있더라도 ‘꺼진 불’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게 된다.

서울시는 입력한 대로 신호 주기가 바뀌는 현 교통 신호 체계를 96년부터 2003년까지 8차에 걸쳐 ‘실시간(實時間) 교통 신호 제어 시스템(신신호 시스템)’으로 교체해 나가기로 했다. 이 시스템은 차량 폭증에 따른 교통난을 개선하기 위해 도로교통안전협회와 교통개발연구원이 91년부터 3년간 공동 개발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진행된 현장 종합 실험에서 ‘합격’ 판정을 받고 내년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선진국의 예와 현장 종합 실험 결과에 비추어 서울시는 신신호 시스템 도입으로 도로 소통률이 12∼16% 증가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에 따른 ‘혼잡 비용’ 절감 효과는 서울시 전역에서 연간 2천2백억원에 달한다. 시행 첫해인 내년에 투입할 예산이 약 50억원이고 서울시 전역에 약 8백억원을 투입할 계획임을 감안할 때 신신호 시스템의 효율성은 꽤 높은 편이다.

서울시 도로 40%가 ‘불구’

혼잡 비용은 정체된 도로에서 낭비되는 유류비·차량 감가상각비에 시간당 인건비 등을 합쳐 계산한다. 지난해 교통개발연구원이 조사 발표한 ‘93년 교통 혼잡 비용 실태’를 보면 전국적으로 8조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혼잡 비용이 발생했다. 88년 이후 폭증한 차량으로 5년간 혼잡 비용이 11배나 늘었다. 서울시만 해도 약 2조4천억원이라는 비용이 정체된 도로 때문에 발생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사정이 훨씬 더 악화됐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 시스템은 크게 나누어 중앙 컴퓨터·지역 컴퓨터·현장 제어기로 구성된다. 교차로나 직선로 등 각 도로에 설치된 전자감응식 감지기를 통해 파악된 교통량은 주기 별로, 또는 이상 상태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 제어기를 통해 각 지역 컴퓨터로 통보된다. 지역 컴퓨터는 다시 중앙 컴퓨터로 모든 정보를 보낸다. 이렇게 지역 별로 모은 정보를 토대로 계산한 적절한 신호 주기를 중앙 컴퓨터가 지역 컴퓨터와 현장 제어기로 다시 내려보내 ‘똑똑한’ 신호등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똑똑한 신호등이 ‘만능’은 아니다. 서울시 교통기획과 송두석 주임은 “프랑스가 이와 유사한 시리우스 시스템을 채택해 소통량이 20% 증가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큼 차량도 늘어 얼마 못가 교통 체증이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는 도심 주차료 인상·차고 증명제·통행료 부과 등 인위적 규제로 교통량을 줄이는 ‘교통 수요 관리(TDM)’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관리과 전자신호반장 권진용 경위는 인위적인 소통 제한보다 이면 도로 정비를 강조했다. 첨단 신호 체계가 성공하려면 사장돼 있는 이면 도로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에서 도로가 전체 면적의 19.6%를 차지하는데 그 가운데 40%가 ‘못쓰는 도로’이다. 그 대부분이 바로 이면 도로라는 것이다.

한국의 시가지는 구획과 구획 간격이 넓어 간선도로와 소로를 연결해 주는 이면 도로가 부실한 것이 큰 문제이다. 이승환 교수(아주대·교통공학과)에 따르면, 한국의 시가지는 ‘넓은 도로 - 중간 도로 - 좁은 도로’ 순으로 위계가 서 있지 않은 불균형 도로 형태를 띠고 있다. 소로에서 간선 도로로 바로 이어지는 꼴이다. 이교수는 “이는 도로를 분산할 생각을 하지 않고 70년대부터 간선도로만 확장해온 전시 행정의 결과이다”라고 말했다. 편도 차선만 해도 4차선· 5차선, 심지어 10차선으로까지 넓히다 보니 횡단보도만 길어진다. 그만큼 신호 주기의 여유가 부족해져 새 시스템을 운용할 때도 신호의 융통성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중앙일보> 음성직 교통 전문위원은 “횡단보도나 버스 정류장의 위치 변경, 좌회전을 없애고 U턴을 활성화해 버스 노선을 직선화하는 교차로 운용 방법 개선 등 도로 운용을 과학적으로 하면 별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혼잡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교통 신호 체계가 1세대 체계로 너무 낡았다며, 신신호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신신호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할 교통 정책의 과학화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