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세금 도둑 또 나타났다
  • 김창룡 인천 주재기자 ()
  • 승인 1996.08.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득세·법인세 관련 수뢰로 줄줄이 쇠고랑… ‘세금 조작 쉽다’ 입증
 
세도(稅盜) 망령이 다시 인천에 나타났다. 그것도 94년 세무 비리가 전국을 뒤흔든 바로 그 지역(인천 북구)이다. 북구청(현 부평구청) 세무 비리가 지방세에 한정되어 저질러졌다면, 이번에는 믿었던 ‘국세’에 구멍이 뚫렸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법무사 대신 세무사를 중간 고리로 하여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간 국세청은 세무 비리가 터질 때마다 “국세는 지방세와 달리 징세 시스템이 완전 전산화되어 있기 때문에 세금을 도둑질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해 왔다. 이같은 주장은 이번 사건으로 정면 격파된 셈이다. 검찰은 이번 기회에 ‘세무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듯 이례적으로 강경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지난 7월22일 인천지검 특수부(박상옥 부장검사)는 5년 전인 91년 북인천세무서에 근무한 세무 공무원들이 납세자들로부터 수천만원대 뇌물을 받고 세액을 조작해 부과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라 7월25일 현재 8명이 구속되었고, 행방을 감춘 10여 명도 검거 대상에 올라 있다.

구속된 전·현직 세무 공무원은 이재암(42, 부천세무서), 현강열(40, 부천세무서), 이낙주(42, 인천세무서), 이광성(37, 93년 의원 면직), 하영청(45, 남동세무서), 김광한(39, 남인천세무서), 최경민(40, 국세청 전산실), 김영세(32, 현 수원세무서) 씨이다. 검찰이 국세청 산하 세무 공무원의 부정·비리에 대해 무더기 구속하며 강력한 전면 수사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 세금 도둑들은 종합소득세·양도소득세·법인세 등 국세를 산출하는 방법이 일반인이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세액 또한 미리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이 주로 사용한 수법은 △부과세액을 줄여주거나 △납세자를 부당하게 감면 대상에 포함하거나 △실사를 벌인 것처럼 조사 복명서를 작성해 세액을 줄이는 방법 등이었다. 이들은 그 대가로 세무사 사무실 직원들로부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받고 납세자와 결탁해 압류를 고의로 늦춰 주는 것도 이들이 즐겨 사용한 편법이었다.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된 안재식 북인천세무서장은 “인천 북구청 세무 비리처럼 세금을 도둑질한 것으로 몰아붙이면 곤란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뇌물을 받고 세금을 조작한 것이니 ‘수뢰’라고 표현해야 정확하다”라며, 일부 언론이 이번 사건을 세금 도둑질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거부 반응을 보였다. 안씨는 또 “우리 기관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시민들에게 할 말이 없다”라고 하면서도, 90∼91년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지금 있는 직원들마저 여기 연루됐거나 또는 그런 범주의 사람인 것처럼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서류가 일부 직원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검찰의 수사 내용에 대해, 안서장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자기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일부 잘못된 직원이 있을 수 있으나 대다수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마녀 사냥 식으로 몰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인천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북구 동아아파트에 사는 한 교사는 “왜 세금 비리가 터졌다 하면 인천인지, 인천이 마치 세금 도둑들만 모여 있는 곳 같아 너무 속상하다”라고 불만을 떠뜨렸다. 이 상황에서 누가 국가를 믿고 세금을 내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인천시 공무원들도 “창피하지만 왜 인천에서만 이런 문제가 늘 먼저, 또 대규모로 터지는지 모르겠다”라고 의아해 했다.

이에 대해 북인천세무서 한 간부는 “인천지검이 활동을 ‘너무’ 많이 해서든, 지역 사회에 대한 연고성이 약한 인천의 특성에서든 세무 비리가 인천에서 많이 터져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몇몇 개인의 문제일 뿐 인천에 특별히 나쁜 사람이 많이 산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라면서 지역적인 분석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적당히 챙겼으면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사실 이번 국세 비리 사건은 5∼6년 전 노태우 정권 시절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드러나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발단과 내용을 알면 국세 비리가 인천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이번 사건은 인천의 이 아무개 세무사 사무실에 근무하던 김철규 사무장(구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사무장은 90년 8월∼91년 7월 임 아무개 등 납세자 8명으로부터 종합소득세 9천여만원을 절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김사무장은 당시 북인천세무서에서 소득세를 담당하고 있던 이광성씨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 이같은 부탁을 전달했다. 사례비로 1천8백25만원을 받은 이씨는 종합소득세를 무려 5천30만원이나 감면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납세자가 김사무장에게 세금을 냈는데 또다시 세금 고지서가 발부되자 다툼이 벌어졌고, 이 때문에 김사무장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 아무개 세무사는 이들 납세자의 항의를 김사무장 대신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말썽을 없애기 위해 세금을 일부 갚아주는 과정에서 이세무사는 김사무장이 너무 많이 해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무장을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송에서 패한 김사무장은 집까지 날렸다. 그러자 악에 바친 김사무장이 동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김사무장이 그렇게까지 ‘크게 해먹지’ 않았다면, 그래서 법정 소송까지 가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은 표면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검찰과 세무서 사이의 자존심 대결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세무서에 각종 자료를 요청했는데 세무 당국이 검찰의 요구를 거의 묵살하다시피 하는 고자세를 보였다고 분노한다. 반면 북인천세무서는 “한꺼번에 91∼94년 자료를 모두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필요한 특정 세목을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고 했을 뿐인데 같은 국가 기관으로서 너무 심하게 군다”라고 말했다.

북인천세무서의 한 직원은 “서로 결탁해서 눈감아 줬다면 일이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과표에 따라 제대로 세금이 고지되자 납세자가 반발하게 된 것이다. 관리자가 결재해 주지 않으면 그런 비리는 있을 수 없다. 이번 일은 오히려 공무원들이 열심히, 엄격하게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라고 강조했다.

언론들, 국세 비리 보도 일제히 중단

이번 사건은 국세나 지방세 모두 세리들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천 지역에 한정된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세를 도둑질한 인천 북구청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방식이다. 북구청 사건에서는 세리들이 부과된 세금을 징수하는 과정에서 이를 국고에 넣지 않고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번 사건에서는 세금이 부과되기 전 세무사와 미리 짜고 과표를 조작해 그 차액을 나누어 가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북구청 사건 당시 일부 법무사가 비리의 중간 고리 역할을 했는데 이번에는 세무사가 그 역할을 했다는 점도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그러나 그밖에 세금을 착복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윗사람에게 상납하는 방식, 검찰이 수사에 착수함과 동시에 일단 ‘튀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공무원들의 자세 등은 한결같이 닮아 있다.

안세무서장은 세금 도둑질이 아니라 수뢰라고 해석해야 한다지만, 인천 시민들은 ‘이렇게 도둑질하나 저렇게 도둑질하나 도둑은 도둑’이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세청이 자체 감사를 강화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일선 세무서는 인천의 세도 망령이 어느 곳에 다시 출몰할지 전전긍긍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무더기 구속 3일 만인 7월25일 중앙 언론은 물론 지방 언론들조차도 대부분 약속이나 한듯 국세 비리 보도를 돌연 중단했다. 취재 기자들은 “아무리 취재해 봐야 이제 기사 나오기는 틀렸다. 국세청이 세무 조사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워 각 언론사 사장단에 보도 자제 요청을 한 것으로 안다. 역시 국세청은 센 곳이다”라고 분개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도, 언론의 보도도 국세 비리에 관한 한 ‘성역은 있다’는 신화를 인정한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