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 오토바이 · 단속 순찰차 동승 취재
  • 고재열 기자(scoop@e-sisa.co.kr) ()
  • 승인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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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깊어지면서 도심을 질주하는 폭주족의 굉음 또한 커지고 있다. 요즘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은 열대야를 피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자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렵사리 단잠에 들었다가도 소음기를 떼어낸 오토바이 엔진 소리에 소스라치기 일쑤이다. 사람들의 단잠을 깨우고 운전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도시의 불청객 폭주족, 그들이 왜 오토바이를 그렇게 모는지 알기 위해 그들의 폭주에 끼어 보았다. 그리고 폭주족을 단속하는 일선 경찰의 고충을 체험해 보기 위해 경찰 순찰차에도 동승했다.

7월 27일 0시30분, 신길동파 폭주족 리더 민철(가명·21)을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잔디밭에서 만났다. 신길동파는 지난해에 '주유소 습격 사건'을 벌인 것으로 유명해진 폭주족이다. 다른 아이들은 왜 안 오느냐고 묻자, 그는 경찰의 단속 때문에 근처에 오토바이를 '짱 박아 놓고'(숨겨놓고) 오느라고 늦는다고 대답했다.

10분 후 그들이 모임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한강관리사무소 옆 계단으로 장소를 옮겼다. 곧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아이들이 10여명 나타났다. 민철이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것이 신길동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신길동파로 오인되어 염창동파에게 얻어맞은 아이도 머리가 노란색이어서 그랬다고 설명했다. 직접 본 실길동파 아이들은 주유소 습격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악명에 어울리지 않게 어리숙해 보였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몸집이 작은 그들의 모습에서 도시의 습격자다운 야성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얻어 타려고 쫓아온 여자 아이들까지 합쳐, 숫자가 금세 20명 정도로 불었다. 그들에게 준비한 설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껏 해보라고 주문했다.
'왜 달리나?'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모두 똑같았다. '그냥 좋아서'. 그들은 자기들이 달리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사고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 '여러 번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 때문에 오토바이 타는 것이 겁난다고는 하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통해 여자를 '꼬셔본'(유혹한)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만나서 '셀 수 없을 만큼' 성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그들은 어른들에게 '어른이 잘하면 우리도 잘한다'고 말하며 '제발 간섭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설문지를 작성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도로 한쪽으로 뛰어갔다. 사고였다. 단속 경찰을 피하던 오류동파 폭주 오토바이 1대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승용차와 부딪쳤다. 운전하던 아이는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져 심하게 다쳤고, 뒤에 탔던 아이는 100m쯤 도망치다 경차에 붙들렸다.

8·15 기념 대폭주 계획

민철이는 이제 경찰이 '껀수'를 올렸으니 곧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사고를 수습한 경찰은 단속 장비들을 거두고 금세 철수했다. 민철이는 아이들에게 오토바이를 가지고 대방동의 한 주유소로 모이라고 지시했다. 숨겨 놓은 오토바이를 가지러 아이들이 아파트 건물 사이로 뿔뿔이 흩어졌다.

민철이는 기자에게 정민(가명·19세)의 오토바이에 타라고 권했다. 다른 오토바이처럼 개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덜 위험하다는 것이다.

절대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반드시 신호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정민이는 일단 달리기를 시작하자 이리저리 '와리가리'(오토바이를 이쪽저쪽으로 움직이며 타는 것)를 하고 달리며 신호까지 무시했다. 여의도도 채 벗어나지 못해 순찰차 한 대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대방 지하차도로 여의도를 빠져나가자 순찰차는 이내 방향을 돌려 여의도로 되돌아갔다(경찰의 단속은 특별 단속기간이 아니면 관할 구역에서 폭주족을 몰아내는것으로 그친다).
정민이와 기자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고 2~3분 후 '똥부'(씨그널)을 요란하게 치장한 신길동파 아이들의 오토바이들이 몰려왔다. 소음기를 떼어 낸 오토바이들이어서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리더 민철이가 도착하자 드디어 폭주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대방동에서 시흥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달렸다. 교통 신호는 전혀 지키지 않았다. 도중에 사거리가 나오면 클랙슨을 마구 누르며 '마가리'(길 양쪽을 막고 차가 못 달리게 하는 것)를 하고 질주를 계속했다. 그들에게 신호등이나 차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교통 신호는 철저히 무시했지만 유일하게 그들이 따르는 신호가 있었다. 바로 리더 민철이의 손 신호였다. 그들은 리더의 손짓에 따라 멈추고 달리고 꺾었다. 시흥까지 내달리는 동안 순찰차가 서너 대 보였지만 경찰은 못 본 척 그냥 지나쳤다. 그날 밤 곧게 뻗은 시흥대로는 완전히 신길동 아이들의 차지였다.

그들에게 오토바이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오토바이를 타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한다. 그들이 사고를 당할 대 오토바이를 놓지 못하고 같이 구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철이와 정민이는 요즘 8·15 대폭주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다. 그동안 폭주다운 폭주가 없었는데, 그날 한번 제대로 놀아 보자며 잔뜩 벼르고 있다. 지난해 8·15 연대 폭주에는 오토바이가 1백50여대 동원되고 폭주족 3백여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폭카족'(차량을 이용한 폭주족)까지 참여해 '혼합 폭주'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여느때처럼 이번에도 전부 태극기를 매달고 달릴 것이다(폭주족은 대체로 국경일과 같은 특별한 날이면 태극기를 달고 달린다. IMF 이후 태극기를 다는것이 폭주족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서울시경 관계자는 폭주족 단속과 관련해 머지 않아 일본처럼 '고무 그늘'을 사용해 대대적인 소탕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폭주에 나서는 폭주족과 대대적인 소탕에 나서는 경찰, 8·15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다.

이튿날인 7월278일 새벽, 여의도 한강 둔치를 다시 찾았다. 교통 경찰이 폭주족을 단속하고 있었다. 경찰은 도로가에 서 있다가 폭주 오토바이가 나타나면 허리띠를 풀어 폭주족을 향해 휘둘렀다. 사고날 위험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맨손으로 폭주족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사복을 압고 숨었다가 폭주족이 나타나면 진압봉으로 때려 잡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폭주족 단속은 경찰과 폭주족 모두에게 위험했다.
"버린 자식이니 내버려 두세요"

오전 3시 30분, 폭주족 단속반이 철수한 후, 여의도공원 파출소를 찾아 한강 둔치를 도는 순찰차에 동승했다. 파출소 바깥에는 압수한 폭주족 오토바이 10여대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폭주족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와 애를 먹는다고 단속 경찰관은 하소연했다. 1년 전부터 대학로에 몰려있던 폭주족이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그것은 폭주족 리더 이철민(26) 때문이었다. 가장 지명도가 높은 폭주족리더인 이철민이 아이들을 여의도로 끌어모았다(이철민은 인터넷에 팬클럽이 있을 만큼 폭주족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대규모 연대 폭주가 있을 경우 대부분 그가 리더를 맡았다).

단속 경찰관은 일선에서 폭주족을 단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제대로 하려면 폭주족을 단속하는 경찰관에게 면책특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관할 지역에서 내쫓는 일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폭주족이 오토바이를 위험하게 몰기는 하지만 대부분 순진한 편이라고 말했다. 주로 낮에 중국 음식이나 간식, 피자를 배달하는 아이들인데, 대부분 편부 편모 슬하의 결손가정 아이들이라고 설명했다. 간혹 부모에게 연락하면 부모가 '버린 자식이니까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여의도 한강 둔치 야외 무대에는 여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앳된 얼굴이었지만 대부분 짙게 화장하고 있었다. 순찰 경찰관은 그들이 새벽까지 있으면서 폭주족이나 폭카족과 어울린다고 말했다.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폭주족 오토바이 한 대가 앞에 나타났다. 순찰차가 바로 뒤쫓아갔다. 멈추라고 계속 말했지만 무시하고 폭주 오토바이는 이리저리 피하며 결국 도망쳐버렸다. 뒤이어 폭주족이 나타났다는 무전 연락이 계속 왔다. 그러나 순찰차만 가지고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리저리 날렵하게 움직이는 폭주족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저 폭주족이 움직이는 대로 장단만 맞추어 주면서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폭주족을 바라보는 시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들은 단속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폭주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폭주족이 생겨난 원인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내면을 살피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폭주족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폭주족은 청소년들의 단순한 일탈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폭주족은 대부분 무면허 부모험이어서 사고가 나도 피해자에게 제대로 보상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유독 폭주족 문제에 대해서는 비둘기파보다 매파가 많다. 지난해에 민주당 김홍일 의원이 내놓은 폭주족대책도 '검거 경찰에게 면책권을 주어야 한다' '집결 장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등 단속 일변도였다.
일본에서는 전용 경주장 만들어 줘

지난 한 해, 경찰은 폭주족 단속에 주력했다. 하룻밤에 6천1백69명을 적발하고 4백72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그리고 폭주족에 대해 도로교통법상의 '공동 위험행위 금지'와 '불법 개조 등의 금지' 조항을 적용하던 것을 바꾸어 형법상 '교통방해죄'를 적용해 처벌을 강화했다. 올해 들어서는 '교통 기동 타격대'를 만들어 폭주족을 단속할 체계도 세웠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찰의 폭주족 대책은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관할 구역에서 폭주족을 쫓아내는 데만 신경을 쓴다. 이러한 몰아내기식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 고무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한쪽이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노는 장소만 옮겨다닐 뿐 폭주족 자체는 줄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폭주족 집결지였던 대학로나 화양리는 지속적인 단속으로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단속이 소홀한 수유리나 화곡동 변두리 지역에서 폭주족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폭주족을 양성화하자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폭주족 전용 연습장을 만들어 그들을 모터사이클 선수로 양성하자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 폭주족 문제로 골치를 앓았던 일본의 경우, 대대적인 단속을 멀이면서 전용 경주장을 만들어 폭주족이 마음껏 내달릴 수 있게 해 주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의 경우도 강온 양면 정책을 펴서 폭주족 문제를 해결했다. 폭주족 단속에는 당근과 채찍이 함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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