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남용이 죽음을 부른다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7.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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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오·남용 탓에 ‘내성균’ 급증…멸균 안돼 가벼운 병에도 사망
지난 5월18일 서울시내 대형 종합병원인 ㄷ병원 응급실에는 술에 취해 쓰러진 40대 남자 환자가 실려 왔다. 당직 의사들은 응급 조처를 취한 뒤 증상을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 각종 검사를 했다. 이튿날 검사 결과는 급성 폐렴으로 나왔다. 의료진은 보호자들에게 ‘별 걱정 안해도 된다’고 위로한 뒤 입원 수속을 밟도록 했다. 현대 의학으로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흔한 질환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치료에 들어간 의료진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성 폐렴균을 퇴치할 페니실린 제제를 투약했으나 균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기세 등등하게 환자의 폐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시급히 다음 단계로 세 가지 이상 치료약제를 병합해 투여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결국 입원 3주 만에 이 환자는 사망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다른 종합병원인 ㅅ병원 중환자실에도 복통으로 쓰러진 40대 남자가 실려 들어왔다. 급성 맹장염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고, 환자는 곧바로 맹장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후 안정과 예후 경과를 체크하기 위해 입원해 있던 이 환자에게 심한 복통이 찾아왔다. 정밀 검사 결과 복강내 수술 부위에 고름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후유증을 막기 위해 수술 환자에게 다양한 항생제를 투여하는 관행에 따라 수술 전후로 항생제를 투여해 왔던 의료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급히 재수술에 들어가 고름을 떼어내 배양시키고 보니 그 속에서 녹농균이 나왔다. 녹농균은 지금까지 나온 항생제로는 박멸할 수 없는 내성균이다. 결국 이 환자는 원인균과 병명을 다 아는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1928년 영국 의학자 플레밍이 실험실에서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중 우연히 날아든 푸른곰팡이가 균을 녹인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항생제 시대는 개막되었다. 그동안 항생제는 인류의 숙명으로 여겨지던 질환을 단숨에 제압했다. 폐렴과 매독·결핵·각종 염증은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날이 개발되는 새로운 항생제 덕분에 인류를 괴롭히는 악성 세균이 완전 퇴치되리라는 기대는 서서히 무너지게 되었다. 이른바 ‘내성균’이 출현한 것이다. 내성균이란 특정 항생제의 공격으로 완전 박멸이 가능했던 세균이 차츰 자기 생존을 위해 몸의 일부를 변형시켜, 항생제에는 끄떡 않게 되는 새로운 균을 말한다.

한국은 세계 제1의 내성균 보유국

항생제 내성균이 급증하자 세계 의학계는 인류가 항생제 개발 이전 시대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그런 대재앙은 언제, 어디서부터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이 세계 최고의 위험 지대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 제1의 항생제 내성균 보유국’이다.

인체를 질병으로 몰아넣는 원인은 세균·바이러스·기생충 등 다양하지만 가장 빠른 속도로 인간의 목숨을 갉아먹는 것은 세균이다. 항생제 효능이 통하지 않는 대표적인 균들로는 포도상구균·폐렴구균·장구균이 꼽힌다. 이들 중 황색포도상구균(MRSA)은 패혈증·뇌막염·심장병·피부병 등을 일으키는 균인데, 40년대에는 페니실린으로 백% 치료 효과를 보았지만 지금은 균 가운데 2~3%만 죽는다. 이런 사태에 직면한 의학계는 페니실린을 대신해 메치실린이라는 새로운 항생제를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내성균에 무릎을 꿇었다. 메치실린에 내성을 보이는 황색포도상구균은 한국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보유한 내성균의 70%를 차지한다. 외국의 경우 많아야 20~40%라는 점에 비하면 세계 최고라 할 만하다.
이에 따라 해마다 병원 내에서 이 균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복지부가 조사해 발표한 병원균 감염 발생률 실태를 보면, 국내 대형 병원 입원 환자 백명 중 4명이 병원 내에서 병균을 얻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색포도상구균이 국내 종합병원 입원실을 휩쓸자 의료계에서는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를 남용하기 시작했다. 90년대에 보급된 반코마이신은 인류가 개발한 마지막 항생제라는 별칭을 얻은 ‘기적의 약’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코마이신에까지 내성을 보이는 균이 출현해 세계 의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97년 5월 일본에서 발견되어 VRSA라고 명명된 이 내성균에 감염된 사람은 불치병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세계 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환자들에게서도 반코마이신 내성균을 가진 환자들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반코마이신 내성균 장염 환자가 발견되었으며, 고려대 구로병원 소화기 내과에서도 최근 환자 2명으로부터 반코마이신 내성균을 분리해 냈다.

폐렴구균은 한국에 항생제 내성균이 많기로 소문난 병균이다. 이 균은 폐렴의 주범이지만 뇌막염(수막염)·중이염·축농증의 원인균이기도 하다. 40년대 페니실린에 의해 백% 박멸되던 이 균의 내성균은 67년 호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 이후 급속히 내성균이 증가했는데 현재 한국은 내성균 비율 80%로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40쪽 표 참조).

“새로운 항생제 개발 안되면 속수무책”

특히 페니실린 내성 폐렴균주에 의해 수막염이 생기면 죽음을 피할 도리가 없다. 지난 5월 내원 환자 1백50명을 대상으로 폐렴구균 내성률을 조사한 결과 내성률이 80%대에 이른다고 발표한 서울대병원 소아과 이환종 교수는 “우리는 페니실린 내성균에 마지막 카드를 써보고 있지만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을 경우 속수무책이다”라고 말한다.

한국에 세계 최고 내성균 보유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겨 주고 있는 세 번째 병균은 장구균이다. 어떤 단일 항생제로도 근절되지 않는 장구균은 감염 후 만성 요로 감염·패혈증·심내막염·신우염 등을 일으킨다. 일단 이 균에 감염된 환자에게는 반코마이신 또는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아미노배당체에 결합해 투약하는 치료법을 쓰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아미노배당체라는 약에 고도의 내성을 가진 장구균이 번져 수많은 환자가 ‘합병증’이라는 이름으로 사망하고 있다. 그 내성률은 60%로서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각종 항생제 내성균은 항생제를 남용한 사람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내성균을 가진 환자가 타인에게 균을 전파하면 그 사람은 항생제를 전혀 복용하지 않았더라도 궁극적으로 남용자와 똑같은 내성균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내성균은 환자 개개인에게 각각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간, 그리고 국가간 장벽을 넘어 급속도로 번진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의료원 송재훈 감염내과장(40)은 이렇게 말한다. “전국의 각 종합병원에서 발견되는 페니실린 내성 폐렴구균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은 내성균이 병원 간에 전파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지난 4월 항생제 내성 감시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를 조직해 14개국이 모였는데 한국·일본·대만·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각국의 페니실린 내성균주는 유전적 상관성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이는 여행 자유화로 국가 간에 오가는 사람이 늘면서 균주가 전파되었음을 보여준다.” 송과장은 이 내성균은 사람의 목(인두)에 서식하는데 국가간 왕래가 잦아지면서 기침으로 전파되었다고 추정한다.

비극 부른 항생제에 대한 ‘무지와 오해’

그러면 유독 한국이 세계 제1의 항생제 내성균 보유국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이면에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항생제 오·남용 국가라는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민의 항생제 오·남용 실태는 1차적으로 항생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지’와 ‘오해’가 빚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궁극적 문제는 병원·약국 같은 전문기관의 무차별적 항생제 투여 관행으로 귀결된다.

한국전쟁 때 미군을 따라 들어와, 전투 부상병과 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민간인들의 고통을 덜어준 항생제는 국민에게 ‘마이신’이라는 이름으로 만병 통치약처럼 자리잡았다. 이후 대다수 국민은 항생제에 관한 한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손에 조그만 상처가 나거나 기침만 나도 찾는 ‘생활 필수품’으로 애용했다.

감기 등 가벼운 질환을 앓는 국민이 흔히 찾는 곳은 약국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약국에서는 항생제를 소비자의 ‘요구’대로 내주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서울 대흥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김보성씨는 “하루 평균 50여 명이 항생제를 찾는데 무턱대고 ‘마이신 얼마짜리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부작용 등을 의식해 아픈 곳을 상담하려고 하면 ‘달라는 대로 주지 왜 비싼 약 팔아먹으려고 그러느냐’는 식으로 핀잔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한다.
서울 충정로에서 30년째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박 아무개씨 역시 항생제에 대해서는 환자의 주문이 너무 확고하다고 털어놓는다. “항생제를 찾는 환자는 대부분 무턱대고 마이신 얼마짜리, 또는 마이신 몇 mg짜리 식으로 요구한다. 그래서 한두 알 주면 요새 항생제는 잘 안들어서 문제라며 네 다섯 알을 한꺼번에 먹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가령 목감기에 걸렸을 때 독시사이클론계 백mg짜리 한 알은 효능·효과 면에서 테트라사이클론계 5백mg 두 알보다 뛰어난데 무조건 센 것이 잘 듣는다며 5백mg 두 알을 달라고 해 복용하는 식이다.”

시중 약국 약사들은 이런 현상이 언론 매체를 통한 의약품 광고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물론 약사들도 문제는 있다. 취재에 응한 약사 4명은 모두 환자가 찾아오면 현재의 질환은 물론 그로 인해 새로 생길지 모르는 2차 감염을 추정해 예방 항생제를 투여한다고 말했다.

입원 환자, 퇴원 때까지 항생제 맞아

여기에 좀더 심한 질환으로 병원을 찾게 되면 항생제 투여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국내 병·의원에서는 어린이나 성인을 가리지 않고 주사용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이 치료의 필수 과정처럼 자리잡고 있다. 외래 환자의 경우는 원인균을 분리해 거기에 맞는 항생제 성분과 용량을 구하기 이전에 시간 제약을 이유로 경험칙에 입각해 일단 항생제 주사부터 놓는 것이 관행이다. 입원 환자는 입원부터 퇴원 때까지 항생제 주사를 끊임없이 맞는다. 특히 수술 환자의 경우 고농도 항생제의 늪 속에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의 항생제 남용 문제에 대해 서울대병원 이환종 교수는 “일반인들이 약국을 통해 항생제를 오·남용하고 있다면, 병원 환자들은 의사들이 제대로 쓰기는 하지만 과다 투여 받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의료계는 환자 증상에 맞는 항생제를 최소 한도로 쓰는 외국 의료계와 달리 감염 가능성이 1%만 있어도 곧바로 항생제를 투여한다”라고 비판한다.

이래저래 한국이 세계 제1의 항생제 내성균 보유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감염 예방 의학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강력한 병균으로 인한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시중에 항생제가 함부로 나도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병원도 항생제 사용을 조절하고 통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재훈 과장은 “국민 대부분이 항생제를 오·남용해온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 이런 제도를 마련하더라도 항생제 내성률을 세계 평균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3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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