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 군수 맞붙은 "남해 지자제"
  • 남해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1995.11.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방 언론 원색 비판에 군수는 기자실 폐쇄‥‥다른 자치단체도 갈등 내연
경상남도 남해군은 인구 6만9천명, 재정 자립도 14.7%에 불과한 소규모 자치단체이다. 그런 남해군의 김두관 군수(37)가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부산 · 경남 지역 각 일간지의 남해발 기사는 으레 '잇단 독선 행정으로 물의를 빚어온'같은, 김군수를 겨냥한 표현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주재 기자들의 이같은 집중 포화 속에서도 김군수 언론의 '주문'을 외면한 채 오히려 정면 결을 선언하고 있다. 그것도 싸움의 상대가 주재기자단이 아니라 '언론 악습' 이라고 호언한다.

6 · 27 지방 선거 직후 김군수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언론은 그를 화려하게 조명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도 '코 앞'에서 야당 출신인 30대 인사가 무소속으로 나서 당선된 것부터 기삿거리였다. 13대 총선 '민중의 당' 출마, 농민운동가, 마을 이장 등이 그의 경력이다. 지역 주간 신문인 <남해신문>을 발행하며 직접 배달에 나서기도 했다. 그를 다룬 기사에는 '전국 최연소 단체장 당선자'라는 기록말고도 '참신한 개혁 인사'라는 평이 따라붙었다.

지방 언론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때는 취임 2개월 후였다. 8월25일과 26일, 남해군에 주재기자를 두고 있는 지방지(경남도 6개, 부산시 3개)9개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김군수가 비서직으로 특별 임용한 측근 박 아무개씨(31)를 민원직소실(군수 면담자 대기실)에 배치한 것을 '따로 사무실을 내줘 특별대우를 했다'고 비판하는 기사였다. 9월부터는 '남해군 직제 개편안' '2000 기획단 구성' '계 · 과장급 인사 이동' '한강 거북선 인수 추진' 등이 계속 공격을 당했다. 그러나 감군수는 "기자들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극히 일부분을 침소봉대했다"고 반박했다.

대립이 계속되자 각 신문의 시사 만화 · 만평 · 가십란 · 기자수첩이 온통 김군수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졌다. 사설까지 가세했다. ㅅ신문은 9월17일자 사설에서 기구개편안의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민선 군수가 일개 계장하고 같이 노는 꼴' '부군수를 바지저고리로 취급하는'등으로 김군수를 깎아 내렸다. ㄷ신문은 '잘한다 잘한다 하니 요강 닦아 찬장에 넣는다'고 원색적인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와중에 '기자실 폐쇄 사건'이 터졌다. 9월13일 김군수가 주재기자단에 "월말까지 기자실을 정리 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청사가 너무 비좁고, 기자단에 전용 공간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자단은 이를 비판 기사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고 '군사 독재 시절에도 없었던 언론 탄압'이라고 성토했으나, 지난 10월4일 결국 '기자실'과 '남해 기자구락부'라는 명패가 내려졌다.

"관례성 '봉투'생략한 뒤 비판 기사 나왔다"

이제 양측의 대립은 감정 싸움 양상으로까지 번지면서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동안 각 지방지의 보도가 공정성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기자실 폐쇄'만 해도, 보도 내용과는 차이가 난다. 김군수는 정리 방침을 통보하면서 문화공보실과 기자실 사이의 벽을 헐어내는 대신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4시 정례 브리핑제를 도입해 기자단에 군정 현황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한 줄이라도 기사화한 신문은 없었다. 김군수는 지금도 기자실을 '폐쇄"한 것이 아니라 "개방"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2000 기획단'과 기구 개편안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2000 기획단'은 김군수가 선거 당시 지역 발전 방안 연구를 위해 구성하겠다고 공약한 민간 주도 단체이다. 김군수가 선거 당시 지역 발전 방안 연구를 위해 구성하겠다고 공약한 민간 주도 단체이다. 김군수가 기획단을 '30대 중심으로'인선할 계획임을 밝히자 ㅅ신문은 '40대 이상은 가라'는 제목으로 비판 기사를 실었다.
또 각 지방지는 9월15일께 ''남해군이 지난 5일 일부 계(係)를 군수 직속으로 두는 조직 개편을 추진하다 경남도와 일부 실 · 과장들이 반발하자 13일 다시 정책감사실을 신설하는 수정안을 재추진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해군이 8월24일 경남도에 조직개편안 검토를 요청해 28일자로 "군수 직속계 설치는 부적합하며 특정 실 · 과 설치는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은 지 2주일 후였다. 경남도는 회신에서 도의 경우 도지사 직속으로 공보관실, 행정 부지사 직속으로 감사실을 두고 있다는 참고 사항도 제시했다.

협의를 거쳐 도의 권유를 수용하고 2주일 만에 수립된 수정안이, ㄷ신문에는 ''경남도의 강력한 반대''로 ''느닷없이 하루 만에'' 번복된 것으로 보도됐다. 조직개편안이 내무과장 등 과 · 계장급 공무원 5명으로 구성된 ''조직진단반''이 검토하여 나왔다는 사실은 보도 되지 않았다.

''군수가 나이가 적고 행정 경험이 부족해 실 · 과장들을 장악하기 어려우니까 특별 임용한 별정 6급 박 아무개씨(31)를 정책개발계장에 앉혀 옥상옥 행정을 수행하려 한다''라는 기사도 논리적 허점을 안고 있다. 37세인 군수가 장악하지 못하는 실 · 과장을 31세인 별정 6급이 장악하기는 더더욱 발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군수는 "최근 일련의 보도가 나가기 전 자기에게 취재하러 온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남해군이 군의회에 상정한 직제개편안과 2000 기획단 설치 조례는 만장일치로 의결 보류돼 김군수에게 판정패를 안겼다. 그러나 김군수는 "당초 통과를 약속한 의회가 기자단의 압력에 굴복한 결과"라고 단정하고 있다. 군의회의 한 의원도 "의회 회기 시작 이틀 전 한 주재 기자 부인이 운영하는 ㄴ음식점에서 양측이 회합을 가졌다. 기자단에서 4명이 참석해 부결 쪽으로 설득했다"고 전했다.

김군수는 자신이 맞고 있는 현 상황을, 주재기자단의 병폐를 잘 아는 자신의 개혁 의지에 대한 선제 공격이라고 규정한다. 김군수는 그 근거로 몇 가지 ''심증''을 제시했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때 ''관례''라는 간부 직원들의 말대로 기자실에 백만원을 ''촌지''를 전달한 뒤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 ''기자 간담회''라는 이름의 회식 자리나 ''봉투''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측근인 박씨를 보좌직에 임용한 8월11일께부터 인물 동정 난에서 김군수의 사진이 눈에 띄게 줄고, 이어서 ''별정직 특별 대우''기사가 나왔다는 것이 김군수의 분석이다. 김군수는 전체 직원 조회에서 ''선물 안 주고 안 받기''를 강조하고 선물 없이 추석을 넘겼다.

공· 사석에서 몇 차례 "불필요한 신문 구독을 줄여 나가겠다"고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이 그의 짐작이다. 남해군은 이른바 ''국정 홍보지''로 들어오는 서울의 ㅅ신문을 비롯해 ''군정 홍보지''로 경남 지역 신문 6종 5백부, 부산에서 발행되는 3개지 각 85부 등 매일 천부 가까운 신문을 받고 있다. 연간 구독료는 8천5백만원에 달한다. 물론 이 중 상당수를 이장 · 새마을 지도자 · 영농 후계자에게 보내고 있지만, 곧바로 폐지가 되는 숫자도 적지 않다. 같은 신문이 10부씩 배달되는 군수실의 경우만 해도, 7~8부는 그대로 쌓여 ''구문''이 되고 만다.

물론 이 지역 신문의 일련의 보도가 전적으로 ''개혁 의지''에 대한 반발인지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폐쇄''든 ''개방''이든 미묘한 시기에 행한 기자실 정리가 감정적 대응이었을 수도 있다. ''현재의 브리핑장은 공무원이 알게 되면 곤란한 취재상 보안이 불가능해 사실상 기자실 폐쇄에 해당한다''는 기자단의 주장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김군수가 기자실의 병폐와 함께 주재 기자 제도의 구조적 비리 요인을 문제화하기 시작해, 이번 전쟁의 공격과 수비가 바뀔 가능성은 한층 더 커졌다.

사실 지역 언론사의 시 · 군 주재 기자 제도는 지역 일간지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자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다. 경영 측면에서 주재 기자의 역할은 ''언론 전사''에 가깝다. ㅂ지 · ㄱ지 등 유력지를 제외한 경남도내 시 · 군 주재 기자의 초임은 50만원 안팎이다. 3~4년이 지나야 60만원대. 부장급 주재 기자도 80만원대를 넘지 않는다. 이같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지방지는 이들에게 광고 · 판매까지 떠맡기고 있다.

언론 치부 드러내기로 번질 조짐

부산 인근 지역의 한 주재 기자는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유가지 ○백부, 매월 광고 ○백만원''식의 할당을 수락해야 한다"며, 자신이 할당 받은 부수(8백부)를 기준하면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낮은 지역도 5백부 이상씩은 안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자는 "관공서나 기업체 등에서 ''기본''을 확보하지 못하면 월급에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주머니 돈을 얹어 본사에 납부할 수밖에 없다. 광고가 모자라면 ''대뽀''(광고주의 요청 없이 내는 광고)를 내보낸 후 수금에 나서기도 한다"고 실토하고 "이런 제도 아래서는 ''사이비 기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해군의 한 건설업자도 "허가가 나오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일부 주재 기자들이다. 약점이 없어도 건축 입지에 따라 ''경관 훼손''등을 문제삼을 수도 있으므로 그때마다 돈을 건넸다"고 증언했다.

기자실 운영 개선을 시도하다 힘에 부쳐 물러섰다는 충남 ㄴ군, 경북 ㄱ시, 경남 ㅊ시 등 여러 곳에서 수시로 남해군에 상황 확인 전화를 하는 등 다른 자치단체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것은, 이번 시비의 성격을 시사해 준다. 이번 싸움은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던 언론의 치부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김두관 죽이기''의 결과에 관계없이 의미있는 한판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