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보험 사기꾼 천국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9.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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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 이후 보험금 노리는 범죄 폭증… 관련 업계, 적발 어려워 전전긍긍
보험금은 ‘마지막 식량’인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보험금을 노린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98년 한해 동안 검찰과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형사 처벌을 받은 보험 범죄자가 5백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편취한 보험금은 수백억원대. 지난해 보험금을 노려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비정한 아버지 사건과, 보험금 20억원과 자신의 두 발목을 바꾸려 한 정 아무개씨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두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보험금 때문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했고, 보험 범죄의 잔혹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건처럼 경제적 궁핍에 허덕이다가 작심하고 일으킨 범죄보다 일상화한 보험 범죄 조직이 활개를 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보험금 타내기를 직업으로 삼다시피 한 사기꾼들이 득시글한 것이다. 가령 서울지검 북부지청이 98년 7월 교통 사고를 위장해 무려 22억원의 보험금을 편취한 보험 사기단 5개파를 적발한 사건을 보자. 구속자만 95명에 이르는 등 조직 보험 범죄로는 최대 규모였던 이 사건은 보험금을 둘러싸고 사기꾼들과 병원, 정비 업소 등이 어떻게 검은 먹이 사슬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험 사기, 초콜릿 훔치기보다 더 쉬워

주범인 ㅈ씨와 ㅊ씨는 각각 전직 보험 설계사와 병원 사무장 출신인 보험 브로커로서 보험 상품 내용과 지급 과정, 병원의 생리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92년부터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대상자 물색에 나섰다. 설계사를 포섭하고 가해자·피해자를 미리 정하는 것은 보험 사기의 1단계에 해당한다. 택시 기사, 유흥업소 종업원, 카바레에서 만난 가정 주부 등이 주로 포섭되었는데, 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 역할을 번갈아 했다.

대상이 정해지면 이른바 ‘사연 만들기’로 불리는 사고를 계획적으로 일으킨다. 한건 할 때마다 가해자들은 30만∼50만 원을 받았다. 보험금을 타낼 피해자들은 선수금 5백만원을 두 사람에게 바쳤다. 피해자들은 사고 2∼6개월 전에 입원 보상 금액이 많은 보험에 10건 이상씩 가입했다.

사연을 만든 뒤 가짜 피해자들은 대개 3개월쯤 입원했다. 아예 다치지 않거나 경미한 부상이지만, 이들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추간판 탈출증(디스크)’‘경·요추부 염좌’라는 진단을 받아냈다. 이들은 대개 한 보험사에서 하루에 3만원씩, 10개 보험사에서 총 30만원을 받으므로 석 달쯤 입원하면 병원비를 주고도 2천만원 정도는 순수입으로 챙길 수 있었다. 병원 관계자들의 묵인 혹은 공모가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모든 보험사가 이런 ‘나이롱 환자’와 ‘문제 병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손해보험협회가 98년 8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총 점검 환자 5천5백13명 가운데 입원 환자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병상을 수시로 비우고 생업에 종사하는 가짜 환자가 12%(6백61명)에 달했다. 병·의원의 허위 청구 사례도 자못 심각하다. 98년 5∼6월 서울 지역 36개 문제 병원의 교통 사고 환자 진료비 청구 내역을 심사한 결과 허위 청구된 보험금이 5천3백만원(19.4%)에 달했다. 전국의 16만개 병·의원을 조사한다면 허위 청구액은 크게 늘어날 것이다.

‘보험금을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사취한 행위’인 보험 범죄(혹은 보험 사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험 제도가 생긴 순간부터 보험 범죄가 일어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든 97년께부터 사건이 폭증하고 있는 데다가 죄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에는 보험금을 좀더 타내려는 단순 사기 사건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1∼2년 동안의 보험 범죄 사건은 치밀한 계획 아래 조직적·지능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직 폭력배와 자해 공갈단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살인과 자해 같은 폭력 행위와, 방화 같은 고의적 재산 파괴 행위도 동반된다.

손가락·발목 절단 사건 외에도 △부인이 보험을 여럿 들어 20억원의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만든 다음 남편이 부인을 청부 살해한 사건 △노숙자를 불태워 죽이고 숯이 된 시신을 자기 시신으로 위장해 사망 보험금을 타내려고 한 사건 △경영난이 심해지자 자신이 경영하던 가구 공장에 불을 질러 거액의 보험금을 챙긴 이른바 ‘숯장사’도 있었다. 사채 업자들이 채무자를 5억원의 사망 보험에 가입시킨 뒤 자살을 교사한 신종 수법도 등장했다.

드러난 보험 범죄를 보면 일정한 유형이 있다. 우선 여러 보험사에 많은 보험을 가입해 고액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해놓고, 기회를 노려 사고를 고의로 유발하거나 남에게 교사한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발생한 것처럼 날조·위장하거나, 사고 경위와 시기를 거짓 진술하는 수법도 애용된다. 모든 보험 범죄에는 사망·상해·질병·입원 급부금을 받아내기 위해 비슷한 조작·과장·연장·은닉 방법이 동원된다.

보험사들은 이런 범죄를 막기 위해 고액 중복 보험 사고 조사와 정보 교환 제도(생보), 장기 손해 보험 불량 계약 조회 시스템(손보) 같은 여러 안전 장치를 가동하고 있지만, 생보와 손보 사이에 정보 교환이 안되는 등 허점이 적지 않다. 보험사들이 겨우 두 발로 걷는 수준이라면 보험 사기꾼들은 생보와 손보를 넘나들며 날아다니는 형국인 것이다. 보험 감독 차원에서도 보험 범죄를 들여다보는 조직이 없었다. 99년 1월 출범한 통합 금융감독원에 보험 범죄를 전담하는 조직인 조사3국(16명 정원)이 생겨 상황이 다소 나아졌지만, 지금까지는 보험 사기꾼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허술한 틈을 타고 보험 범죄가 폭증하고 있다. 돈을 벌기에 이보다 더 좋은 종목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가게에서 초콜릿을 훔치는 것보다 쉽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다른 범죄에 비해 범행하기가 쉽다. ‘우연히 일어나는 미래의 사고에 대비한다’는 보험 제도의 목적 자체도 범죄의 표적이 된다. 사고가 일어난 때와 그로 인한 손해 정도가 불확실한, 그야말로 우연성을 악용해 사고를 조작하려 드는 것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발각될 가능성도 다른 범죄에 비해 적다.
98년 4~9월에만 2천6백건 발생

설사 발각되더라도 보험금을 받지 못할 뿐 이렇다 할 처벌을 받지 않는다. 물론 살인이나 방화 등을 동반하지 않고 보험금만을 노린 범죄에는 10년 이하 징역 혹은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사기죄(형법 제347조)가 적용되지만, 법원에서 법대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1심 재판 전에 보험금을 돌려주면 합의로 풀려난다.

보험금을 노린 범죄자들이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보험금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 인식이 그저 보험사 돈이라고 생각하지, 많은 보험 가입자들이 낸 남의 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보험 사기단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 북부지청의 김영종 검사는 “이 사기단의 두목은 ‘있는 놈(보험사) 돈을 좀 빼앗는 게 무슨 문제냐. 나는 의적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뚤어진 행태를 보였다”라고 말한다.

보험 범죄는 적발되지 않은 사건이 많아 이른바 암수율이 매우 높은 범죄로 불린다.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 옛 보험감독원이 김민석 의원(국민회의)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98년 1~8월 생명보험사의 보험 사기 사건은 2백99건(68억원)이며 손해보험사의 경우는 1천4백31건(백11억원)에 이른다. 손해보험협회가 자체 조사한 자료를 보면 훨씬 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협회는 98년 4~9월 2천6백11건의 사기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98 회계 연도(98년 4월∼99년 3월)에는 97 회계 연도(5천백건, 3백25억원)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수치조차도 과소 평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보험사들이 공신력 실추를 걱정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된 명백한 사기 사건도 협회에 알리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험사를 감쪽같이 속여 성공한 사건이 누락되어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보험사들도 속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보험사에는 보험금 청구 조사 업무를 맡은 ‘보험 수사관’들이 있다. 삼성생명보험은 아예 ‘삼성서비스’라는 별도 법인을 갖고 있고, 대한생명·교보생명·삼성화재보험·현대해상화재보험 같은 큰 보험사일수록 대규모 보상 조직을 갖고 있다. 손해보험사들은 백 명이 넘는 전직 형사들까지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보험사들이 사기를 입증하는 일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한 보험사의 보상 업무 관계자는 “현장 조사를 나가 보지만 사기를 치려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비협조적이며 ,심지어 이들로부터 신변의 위협도 받는다”라며, 의심이 가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금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또 한 보험사의 관계자는 “보험 사기가 갈수록 지능적으로 변하고 있다. 고도의 머리 싸움인데 보험 사기가 일어날 길목에 서서 지키지 않는 한 판판이 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전담 수사기구 설치 서둘러야

보험사들은 사기 혐의가 짙은 청구 건은 검·경에 의뢰하고 있다. 발목 절단 사건 때도 보험사들이 보험 가입 상황을 근거로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찰에 귀띔했다. 지난해 적발된 보험 사기 사건은 대부분 보험사들의 제보로 진상이 밝혀졌다. 또 보험사들은 수사 당국에 보험 범죄 전담 조직 신설과 정부에 검찰·경찰·보험업계 인사로 구성된 ‘보험범죄방지대책협의회’ 구성을 요청해 놓고 있으나 아직 정부의 대답이 없는 상태다.

억대 보험금을 노려 자신의 도금 공장과 가구 공장에 불을 지른 사건을 수사한 의정부지청의 이진우 검사는 “방화나 살인 사건 같은 보험 범죄는 증거를 매우 찾기 어려워, 수사 능력과 보험에 대한 전문성이 두루 필요하다. 범죄가 일어날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전담 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선진국에서는 사법 당국이 보험사와 연계해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 조사 활동을 통해 보험 사기를 척결한다. 미국 뉴욕 주의 보험사기국(IFB)과 전미보험범죄방지국(NICB), 일본의 손해보험방법대책협의회, 프랑스의 보험사기방지기구 같은 조직이 좋은 예다.

조해균 교수(한양대·보험학)는 “사기꾼들이 손해 사정 업무가 허술한 보험사를 노린다는 점에서 이 업무를 강화해야 하지만 사전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지적한다. 과다 중복 가입자라는 위험 물건을 아예 받지 말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보험사들이 보험 범죄에 고통을 받는 데에는 자업 자득 측면도 있다. 무조건 가입자를 늘리려는 외형 경쟁을 일삼아 왔기 때문이다. 손해보험협회 내남정 부장은 3공 체제 확립을 주장한다. 보험 범죄를 예방·척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 체제, 보험사 간의 정보 공유 체제, 수사 당국과 보험사간의 공조 체제가 이루어질 때 보험 범죄를 뿌리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가지 말아야 할 돈을 사기꾼에게 빼앗기는 것이 보험 범죄다. ‘1인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1인을 위해’라는 보험 정신을 뿌리째 흔드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사기꾼들의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를 다스리지 못하면 선의의 보험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피해를 본다. 보험사들이 사기당할 금액을 예상해 보험료를 높게 책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억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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